디지털울릉문화대전 > 울릉의 마을 이야기 > 천부마을 > 천부(天府) 사람들 > 천부 개척 역사의 생생한 증인 정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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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한테 들었는데 김해에서 살았는데, 우리 증조부가 다 그거 했어요. 벼슬을 했는데, 우리 할아버지 때는 거 살다가……. 결혼을 해가지고, 애 둘 낳고 살았죠. 그러다 가선이 점점 기울어 고생스레 지냈답니다. 그러던 차에 그때 생각에 울릉도 가면 자기가 개간한 땅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하기에 들어가기로 생각한 모양이에요. 전라도 나선이 삼도에서 울릉도로 다니던 그게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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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여 안 살고. 산 데가 여기서 한 3㎞정도 될 기라. 산중이라. 아들 4형제 고모가 4명 우리 아부지 형제가 8남매지 그래가 십몇 년 되니 연락선도 다니고. 내 13살 때 아부지 47살 때 그때도 저 산중에 살았었지. 삼촌이 부산에서 약국을 했는데, 비자가 들어간 탕약을 지어가 온 것을 아부지가 잡수시고 그길로 설사가 나는 기라. 그래가 이웃집의 아편을 잡수셨어. 그게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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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고 중학교가 창설되었는데, 거 학교 가고 싶어가, 집에서는 월사금 뭐 이런 거 낼 형편이 안 돼가, 몰래 가가 합격통지 받았어. 입학금이 300원, 월사금이 50원이었어요. 그것도 못해갔고 외삼촌네 갔더니 학교 월사금은 대주겠다 해가 학교 다녔는데, 죽을 먹고. 도동에서 학교 기숙사에 있었는데, 그때 집이 하도 어려워 집에 왔다 가라해가 왔는데, 형님이 아라비아에서 전염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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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해군 망루가 있었고, 보루산 하는 데, 보루산이라는 보루가 일본말이거든요. 보루라는 말이 그때 생긴 것은 아니고 러일전쟁 때 거 망루가 있었는데 그것을 보루보루 해가(보루보루라 불러) 저 산 이름이 보루산이 되었어요. 그리고 독도에도 보루가 있었어요. 군 제대하고 오니까, 내가 발파공 그걸 내가 했는데, 그래가 독도 배대는 곳, 천장굴 거 비석굴이 있는데. 러일전쟁 때 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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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어 놓으면 감자 강냉이가 주식인데, 콩은 전부 공출해갔어. 그리고 식량 대두박이 있어요. 콩기름 짜고 남은 찌꺼기인데, 그게 콩이라서 괜찮은 것 같았는데, 안 그렇데요. 그걸 묵었는데, 그걸 이틀이나 사흘 먹었는데……. 학교 가기 전에 항상 풀 비러 갔는데, 그때 풀 비 놓고 쉰다는 게 자버렸어요. 학교 갈 때, 아가(아들이) 안 오니 엄마가 와가 깨워보니 (영양실조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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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헌병사령부 있었어요. 내가 처음 헌병사령부 갔을 때는 육해공 헌병 총사령부라고 있었어요. 총사령부에 가서도 내가 일 년 동안은 여 뭐하는데인지도 몰랐어요. 일 년 되가 알았는데, 그때 원용복 준장이 총사령관으로 있었어. 유령단체라. 이게 군편제가 없는 기라. 이박사가 만든 거라. 이게 중앙정보부처럼 보급도 없고, 예산도 없고, 그랬어요. 그래가 전부 얻어가 잘 묵고 잘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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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결혼 했는데, 결혼할 형편도 안됐는데, 그래서 살다가, 결혼은 뭐 요만치도 생각지도 안했는데, 형님하고 어머니하고 택일 해가……. 요새는 세월 좋아요. 옛날에는 하라면 하고……. 아내는 열여덟 살에 시집왔어요. 옛날에 열여덟 살이면 신랑이 어떤지도 몰라요. 신랑 오면 달러가고(달아나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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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그거는 말로 다 못 합니다. 어렵게 살아와가 배 사업도 조금 하고 농사도 짓고 그랬어요. 배 사업도 잘 안 되데요. 많이 어려웠어요. 굶기도 많이 굶었고. 지금은 자식들이 잘 살고 고리고리(골고루) 흩어져 있어가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 큰아는 한 달에 70만원씩 보내줍니다. 농사해서 일 년에 오~육백 벌어가 내 마음대로 쓰고. 빚 없이 산지가 한 10년 되나 몰라. 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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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은 농한기에 갑니다. 농사 없을 때 갔다 오죠. 전국 관광은 다섯 여섯 번 다녀왔어요. 할머니와는 같이 다니기도 하고 따로 다니고. 그리고 같이는 하와이 효도관광 다녀왔는데 갈 곳이 못 되더라고. 거 안내원이 말하데요 '섬 사람이 여 섬에 와 왔어요?' 하더라고요. 실지로 가보니 아무 것도 아니데요. 자연도 뭐 볼 거 뭐 있어요? 좋다고 갔지. (웃음) 그런데 가는 데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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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먹은 사람들이 많으니 경로당이 문화생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천부 주민의 95%가 교회 다니고, 그 다음으로 성당, 불교사원 다니니 일주일은 교회에 매달리고, 일년은 농한기 때 나들이 꿈에 산다. 시간나면 경로당 가서 고스톱도 치고, 밥하면 밥도 얻어먹고, 윷도 놀고, 뭐, 그러죠. 저는 성당 다닙니다. 사람 별루 없습니다. 나 묵은 사람이 많다보니 운영이 안 되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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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힘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한 번은 더 갔다 와야 되는데, 일본에 한번 가봐야 되는데, 갔다와야 할 책임이 있어. 우리 막내삼촌이 총각 때 일본 들어가 살았는데, 거서 한국 사람하고 결혼해가 육남매를 낳았죠. 소식이 끊어진 지가 30년이라. 삼촌은 세상을 베렸고, 숙모도 그럴 끼고, 소식이 완전히 끊겼어. 몇 년 전에 가정족보를 하나 해놓았는데, 그 걸 전해줘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