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울릉문화대전 > 울릉의 마을 이야기 > 도동마을 > 도동마을 사람들 > 도동의 터줏대감, 근·현대사의 산 증인 최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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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 이리 와서, 4학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거기 졸업하고 2년제 학교를 또 갔지요. 그 일본 학교가 요새로 하면 중학교이죠. 졸업 후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죠. 그래가 지원병으로 일본 군대에 갔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대동아전쟁 무르익는데 겁나서 누가 갈 수가 있어야죠. 하지만, 지방의 유지라면 일본 사람들이 자꾸 권하거든요. 그 당시 아버지가 도 평위원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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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주한 사람들은 육지에서 많이 왔기 때문에 농사밖에 몰랐죠. 그래서 울릉도 제일 처음에 오면 ‘깍치댕이’라고 했습니다. 섬의 제일 높은 곳, 북면도 그렇고 서면도 그렇고, 최고 높은 데로 올라가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거기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어요. 여름에는 여기에 ‘깍새’라는 새가 많았는데, 높은데 올라가서 불을 피우고 연기를 피우면 새가 막 몰려들어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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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모집한다고 해서 응시해 합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할 일이 없으니까, 경찰관 모집한다 하니 와~ 몰려가서 시험을 봤는데, 합격할 사람은 하고, 단체로 훈련하는데 제가 교관이 되어서 훈련을 지도했어요. 무기는 일제한테 받아 놓은 거라서, 일본 거 그대로 다 썼거든요. 저는 군대에서 일본식 훈련을 받아와서 일본식으로 가르쳤죠. 몇 년 후에 미군이 주둔하고 M1이다 M2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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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도에 경비반장을 했기 때문에 경비정 가지고 독도에 내(자주) 들어갔지. 한 5톤짜리 조그마한 목선, 그때는 경비선이죠. 그거 작은 거 타고 가보니, 독도에 어민들이 가서 미역채취하고 고기도 잡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와서 자기 나라 꺼다고 말목을 박아 놨어요. 일본 사람이 들어와 상륙해서, 시마네현 오끼군 고리무라 다케시마라고 적혀있고, 일본 나라 수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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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주 모량서 났어요. 건천학교 3학년 때 울릉도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천주교, 28세에 영세를 했습니다. 50년째죠. 울릉도 종교, 여는 점쟁이들도 있고, 예수교가 많이 있고, 불교도 있고, 시민불교, 천태종 뭐 다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개신교는 교회 수가 많아도 천주교는 신자수가 많습니다. 천주교 입교 동기는요, 중학교 음악선생님이 있었는데, 천주교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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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들어와 보니 울릉도의 생활상이 뭐, 경주하고 똑 같았어요. 비슷했죠. 지금은 사실 경주보다 울릉도가 더 발전됐어요. 지금의 경주 모량은 내가 클 때 하고 똑 같아요. 요즘 애들 공부시킨다고 육지로 내 보내는데요. 포항, 경주로 보내는 것은 극히 일부고요. 거의 서울로 보냅니다. 서울로 제일 많이 보내요. 그러니 서울 영향을 많이 받죠. 국민학교 선생님들 발령받아서 오면, 울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