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령 전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후손을 만나고 싶었지만, 그들의 후손이라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6년 가을 관광계장 김기백의 안내로 현포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는 이춘태를 만났다. 그의 고조부 이진화가 환갑 되는 해인 1881년경에 일곱 살 난 아들 이용언을 데리고 울릉도에 들어와 천부에 정착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천부면사무소에 들러 재적부등본을 떼어보았지만...
“고조부(이진화)께서 1821년에 경주 입실에서 태어나셨답니다. 그 분이 회갑 때 아들 용언을 데리고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1881년경에 울릉도에 들어왔을 겁니다. 저희 고조부께서 회갑 때 울릉도에 들어오셨다고 누차 들었으니 분명 1883년 이전에 들어온 것만은 분명합니다. 흔히들 울릉도 개척을 말할 때 1883년 16호 54명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고 개척사를 말합니...
“재적등본을 떼어보면 고조부에 관한 기록은 안 나옵니다만, 증조부 이래 5대째 천부리 485번지 지번을 갖고 있어요. 고조부가 들어와 처음 정착한 곳은 전 알 수 없습니다만, 이 집은 90년이 넘어요. 1910년대에 만든 집이죠. 그때 그 집에 지금껏 살아오고 있어요. 내 아이들도 지금 육지에 나가 있지만 여기서 태어났죠. 물론 처음 고조부께서 만들었을 적에는 울릉도의 전통가옥인...
“어릴 적에 조부, 조모, 증조모까지 함께 이 집에서 살았죠. 할머니는 80살 정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면사무소 다니다가 나오셔서 사설 우체국한다고 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그것을 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죠. 누나 셋, 동생 있고. 할아버지 모시고 살아야 할 처지에 삼촌들은 외지에 가 있어서……. 중학교 나와 할 만한 일이...
“그 옛날에 소를 집집이 다 먹였어요. 풀을 베서 철사에 묶어 아래로 내려 보냈어요. 강철로 만들었어. 몇 군데 있는데 있었어. 찻길이 없으니 일일이 지고 올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