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C03010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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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천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호동 |
“어릴 적에 조부, 조모, 증조모까지 함께 이 집에서 살았죠. 할머니는 80살 정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면사무소 다니다가 나오셔서 사설 우체국한다고 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그것을 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죠.
누나 셋, 동생 있고. 할아버지 모시고 살아야 할 처지에 삼촌들은 외지에 가 있어서……. 중학교 나와 할 만한 일이 없으니 농사 지어 생활할 수밖에 없었죠. 등 지게로 지고 날라야 했죠. 여기서 농사지으면서 자급자족해야만 했죠.
울릉도에서 새마을 사업이 이곳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습니다. 새마을 사업하면서 도로를 만들었는데, 모두 인력으로 닦았죠. 박정희 대통령의 표창도 받았을 정도였죠.
농토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배불리 먹고 살았지. 여기 토지를 팔고 대구 가면 집 몇 채를 살 정도 였으니……. 지금은 모두 팔아도 집 살 엄두도 못 낼 형편이 되었으니, 이곳을 떠날 수도 없죠.
교육 문제 등으로 애들 육지에 내보내고 나이 많은 사람들만 이곳에 남았죠. 제 경우는 88년도에 교통사고를 당해 몇 년간 어려웠죠. 그때 큰 애, 육학년 초에 서울로 내보냈고, 지금은 숭실대학교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어요. 작은 애, 고등학교 때 육지로 나갔고 연세대 다녀요. 상당히 힘들지, 일 해 애들 뒷바라지해야 하니. 살아온 과정은 그냥 큰 계획 없이 살 수밖에. 농토에서 나오는 게 별반 안 되니…….
결혼은 천부에 사는 사람과 결혼했어요. 교회에서 만나 한 칠팔 년 연애했죠. 이곳에서는 당시에 주변에서 혼인상대를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육지로 나가지 않는 한. 지금 교회 장로로 있어요. 교회가 울릉도에 처음 생겼는데 강원도 부호감리교회에서 나리동에 와서 처음 교회 열었어요. 부호감리교회를 찾을려고 했지만 알 수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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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토는 2,3천 평밖에 안 됩니다. 이곳 인력이 부족해서 한 가정에 한 두 사람……. 많이 있어도 할 수 없고……. 더덕 밖에 할 수 없어요. 인력이 있으면 취나물 등 나물을 하면 소득이 약간 낫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