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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에서 시작하여 대 수산업가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D03020004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태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저도 배를 처음에 3명 타는 0.5톤 되는 하나 하다가, 그 다음에 5톤 되는 배를 하다가, 그것도 해보니 한이 안 차가 그 다음에 30톤짜리를 지었다고. 작업을 해보니 울릉도에는 정박할 때가 없는 거라. 지금은 항구가 잘 되어 있지만, 그때는 드갈 자리가 없는 기라. 그래가 그 배를 타고 포항가가 작업을 하다가. 30톤 그거 가지고도 울릉도 왔다갔다 하다 보니, 파도에 막……. 기상을 늘 체크해야 되고 아주 애로가 많아요. 울릉도 한 번씩 올라고 하면 제사도 지내고 이리 왔다갔다 하는데……. 이래가 안 되겠다 해가, 동해안에 내 마음대로 댕기는 배를 한 번 지어봐야겠다. 이래가지고, 그때 정부에서 계획조선이라 하는 거, 왜놈들이 50~60톤짜리 배가 와가 우리 영내에서 전부 작업을 해가고 하니깐. 국가에서 100톤짜리로, 처음에는 60~70톤 하다가 100톤짜리를 지었는데, 그때 내가 과감하게 뛰어들어가가 80톤짜리 철선을 지어가지고, 울릉도에서는 운영이 안 되니, 묵호에서 근거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울릉도 왔다갔다 하면서, 고기 많이 잡으면, 울릉도 풀고, 저쪽에서도 풀고. 이래 작업을 하다가, 그것도 적어서 안 되겠어요. 동해안 파도에는……. 그 다음에는 120톤짜리 지어가 운영하다가, 그때 내가 배를 3대를 연거푸 지었어요. 그것도 묵호에서 하니 안 되가, 부산 내려가가지고 한 대 더 뿔아가(보태어) 4대를 운영하다가, 부산에서 운영해보니, 울릉도 촌놈이라고 해가 괄세도 많이 받고 그랬는데……. 수산업에 대해서는 도시사람 뺨칠 정도로 안 압니까. 그때 부산에서 해도 전부다 해안 대화태 여 올라와가 오징어 잡았는데. 우리는 여 와가 오징어 잡고, 울릉도와가 풀었부고, 다시 부산 나가고. 늘 이런 식으로 하다가, IMF때 배를 전부 다 처분했어요. 나는 그때 아파가 울릉도 들어오고, 나머지는 아들이 경영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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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씨가 지은 80톤 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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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씨가 지은 150톤 철선

배를 4척 하니.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기라. 바다 나가있으면 내 신경 쓰이고. 그때 배 하나에 33명 탔는데, 배가 4척이니 120명이라요. 처음에는 뱃놈들이 배가지고 있으니깐, 만나면 “사장님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도 하고 그러다가, 뱃사람이 점점 줄어드니까는 그들의 권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그 뒤에는 이리 지나가면 꾸뻑 인사하고는, 뒤에서 “저 새끼 저거 창성호 선주다” 하면서…….

처음 80톤 철선 지을 때 그때 일차 오일쇼크 전에 지었거든요. 한 천만 원에 지었지. 그때 쌀 한 가마가 2만원 갔나. 그래 지었는데. 그 배 지어 내리고는 딱 두 배 올랐다고. 천이백에 지었는데, 이천오백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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