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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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業 |
영어의미역 | Forestry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봉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나무를 재배하고 벌채하고 목재를 생산하는 산업.
[변천]
1. 고려 시대
울릉군의 임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일찍이 찾아 볼 수가 있다. 『고려사(高麗史)』 1141년(인종 19) 기사에 명주도(溟州道) 감창사(監倉使)로 임명된 이양실(李陽實)이 사람을 울릉도로 보내 사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그가 가져온 것 중 본토 내에서는 볼 수 없는 과핵(果核)과 목엽(木葉)이 있어 왕에게 헌납케 했다고 한다. 1243년(고종 30)에 당시 집권자 최이(崔怡)가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하여 조사케 했는데, 진목(珍木)과 해산물이 많이 난다는 보고를 받았다.
같은 책 1273년(원종 14) 2월 기록에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인 허공(許珙)을 울릉도 작목사(斫木使)로 임명하여 이추(李樞)와 함께 가게하고, 국왕은 원의 황제에게 울릉도의 나무 베는 일을 폐지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즉 원 간섭기에 원나라가 일본을 공격하기 위한 선박 건조를 위하여 울릉도의 재질 좋은 나무를 베어오게 했는데, 이것이 고려 백성에게 힘이 드는 고역이기 때문에 고려 국왕이 원 황제에게 이를 폐지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2.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도 울릉도의 재목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1412년(태종 12) 울릉도 사람 백가물(百加勿)이 와서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큰 서까래와 같고 해착(海錯)과 과목(果木)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또 월송만호와 섬척영장을 교대로 임명하여 2년에 한 번씩 울릉도에 대한 수토(搜討)를 하게 했는데, 이들이 파견될 때마다 울릉도의 토산물이라며 황죽(篁竹)·향목(香木)·청죽(靑竹) 등을 조정에 진상하였다. 그리고 당시 월송만호의 보고에는 울릉도의 수목으로 향나무·잣나무·황벽나무·노송나무·뽕나무·개암나무가 있다고 하였다.
1881년(고종 18)에 고종은 울릉도에 설읍할 계획을 밝히면서 이규원(李奎遠)을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로 삼아 울릉도의 실정을 보고하게 하였다. 보고 내용에는 정기적인 수토 정책에도 불구하고 목재와 대나무 때문에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그곳에 체류하고 있으며, 울릉도에 체류하고 있던 조선인 중 대부분이 이곳에서 배를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3. 근대
1882년(고종 19)에 개척령을 반포하고 주민 이주를 장려하였으나 일본인들이 울릉도의 나무를 몰래 베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1900년 3월 당시 울릉도 도감(島監) 배계주의 보고에 의하면, 1899년 7·8월간에 일본인이 도벌한 재목이 1천여 주에 달하며, 불법으로 규목(槻木)을 대량 도벌하면서 이를 저지하려는 도감을 위협했다고 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도벌이 매우 심각했다.
한일병합 이후 일본 정부는 무분별한 도벌로 황폐화하는 울릉도의 수목을 보호하기 위하여 울릉도의 도벌을 금지하기 시작했으며, 새로 울릉도에 해송(海松)을 심기 시작하였다. 한편 1919년 조선총독부에서는 울릉도 삼림보호구(森林保護區)를 설치하여 울릉도 삼림 보호와 묘목 사업을 주관하였다.
해방이 되자 도벌에 대한 엄금이 풀리면서 다시 무차별적인 벌목이 실시되어 한때 황폐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육지로부터 연탄과 같은 새로운 난방 재료를 도입하고 묘목을 가져와 조림을 실시하여 현재와 같은 숲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황]
1. 소유자별 임야 면적
울릉군의 임야 면적은 2009년 12월 현재 총 6,121㏊이며, 이 중 국유림이 2,610㏊, 공유림이 1,387㏊, 사유림이 2,124㏊이다. 연도별로 파악해 보면, 1975년 총 5,494㏊에서 조금씩 증가하여 10년 뒤인 1985년에는 6,010㏊, 1990년에는 6,040㏊까지 넓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하여 1998년 6,028㏊까지 내려갔다가 2000년 이후에 소폭 상승하였다.
임야의 소유자별 추이를 보면 1975년에 국유림이 2,421㏊, 공유림이 1,395㏊, 사유림이 1,678㏊로 전체 임야에 대한 구성비는 각각 44%, 25.2%, 30.8%였다. 이후 2009년까지 전체적으로 627㏊가 늘었는데, 이 중 국유림은 189㏊, 공유림은 8㏊, 사유림은 446㏊가 증가하였다. 2009년 소유자별 구성비는 각각 42.6%, 22.7%, 34.7%로 나타나고 있다. 소유자별로 보았을 때 사유림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한편 국유림의 경우 대부분을 산림청이 소관하고 있는데, 전체 국유림 2,610㏊ 중 98%인 2,557㏊가 현재 산림청 소관으로 되어 있다. 공유림의 경우 대부분이 군유림으로 소관되어 오다가 2001년부터 도 소관의 임야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9년 12월 현재 전체 공유림 중 0.4%인 6㏊가 도유림이며, 나머지는 공유림은 모두 군유림으로 되어 있다.
2. 임상별 임야 면적
임야는 임상에 따라 임목지와 무임목지로 구별할 수 있다. 울릉군의 임상별 비율은 2007년 기준으로 6,122㏊ 중 임목지가 4,857㏊로 79.3%이며, 무임목지는 1,265㏊로 20.7%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임목지는 임상에 따라 침엽수림·활엽수림·혼효림 등으로 세분되는데, 이 중 침엽수는 593㏊, 활엽수는 3,580㏊, 혼효림은 688㏊이다. 입목 축적량을 보면, 총 768,712㎡ 중 침엽수는 107,965㎡, 활엽수는 577,497㎡, 혼효림은 83,250㎡이다.
무임목지의 경우 미임목지·황폐지·개간지 등으로 세분할 수 있는데, 2007년 현재 총 1,261㏊ 중 미입목지 151㏊, 황폐지 6㏊, 기타 1,014㏊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무임목지가 화전으로 이용되는 등 그 비율이 일정하지 않았으나 1985년 이후 대체로 현재와 비슷한 구성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3. 조림 사업
조림 사업은 산림 자원과 수자원의 확보를 위하여 실시되는 산림 개발의 기본 사업으로, 울릉군의 경우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197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1980년대 이후에는 조림 사업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1990년대에는 1991년에 1㏊에 걸쳐 조림 사업이 이루어진 것만 확인된다.
4. 임산물
울릉군 임야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은 아주 다양한데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많이 생산되던 것은 연료였다. 장작·땔감·자엽 등이 연료용으로 임야에서 생산되었는데, 연료가 연탄·기름·가스 등으로 바뀌면서 1975년 한때 14,060M/T에 달하던 연료 임산물 생산이 10년 뒤에는 3,295M/T로 급감하게 되고, 현대화가 대부분 이루어진 2000년 이후에는 연료 임산물 생산이 정지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 소득과 관련된 임산물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였다. 각종 용재·죽재·밤·대추 등의 야생종실, 약초와 같은 약용 식물, 산나물, 토석류·퇴비원료·사료와 같은 농용자재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농가 인구의 감소와 소득의 불확실성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생산되는 임산물의 수와 종류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 현재 임산물 생산량은 산나물이 3,071,490㎏으로 대부분을 점하고, 농용자재가 10,800㎏, 약용이 6,100㎏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