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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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는 산. 한반도 최남단 땅끝에 위치한 산이다. 갈두산(葛頭山)[156m]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수관에 따르면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호남정맥의 한줄기인 땅끝기맥의 끝이다. 호남정맥 마루금인 화순 국사봉 바람재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땅끝기맥이라고 한다. 국사봉에서 시작하는 기맥은 월출산, 월각산, 흑석산, 서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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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에 설치되었던 수군진. 갈두진(葛頭鎭)은 한반도의 최남단에 설치된 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관방은 지리적으로 취약하였으며 제주도민의 진휼(賑恤)을 위한 목적이 강하였다. 당시 제주도민 진휼곡은 나주의 제민창에 보관하였다가 제주도 해산물과 바꾸어 가도록 하였으나 뱃길이 멀어 가까운 갈두로 변경하였던 것이다. 갈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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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갈산포(葛山浦)는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땅끝송호해변 끝에 있었던 갈산마을의 남쪽 해안에 있었다. 갈산포는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였다. 갈산포에는 뱃사람들이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당집이 있었다. 당집은 풍선으로 항해하던 시기에 빠른 물살로 뱃길이 험한 명량해협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원했던 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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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수령 200년~450년의 감나무 3그루. 감나무는 한반도 경기도 이남을 비롯하여 대만,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이다. 높이 7~14m까지 자란다. 감나무 나무껍질은 코르크화되며, 잘게 갈라지고 흑회색으로 일년생 가지에 갈색 털이 있다. 잎은 호생하며 두껍고 타원상 달걀형이고 긴난형 또는 역난형이며 점첨두이고 넓은 예형 또는 원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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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겨울철 감태의 성장 정도를 보고 이듬해 농사의 풍흉을 점쳐 보는 풍습. 감태(甘苔)는 우리나라 남해안 및 제주도 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다시마과의 여러해살이 해조류로, 주로 겨울철에 생산된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어촌에서는 겨울철 바다 갯벌에서 자라는 감태를 보고 이듬해 농사가 잘될 것인지를 점치는 풍습이 전하고 있다. 이를 감태점이라 한다.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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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있었던 조선 전기 포구. 조선 초기 어란(於蘭)은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 인근이다. 수군의 병선이 옮겨가자 삼촌포의 어란은 고어란(古於蘭)이 되었다. 고어란에는 병선들이 배치되어 해상에서 근무하였으므로 육지부에서 유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구룡포들에서 청자편과 백자편이 출토된다. 1988년 고천암방조제 준공으로 바닷물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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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관두산에 있는 봉수 모양이 사람이 상투를 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관머리산이라고 부르다가 마을이 산의 동쪽에 있다 하여 관동(館東)이라 불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 표기가 관동(關東)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조리, 무학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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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와 무학리에 걸쳐 있는 산. 관두산(館頭山)[177m]은 해남군 화산면 해안가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봉수가 있다. 두륜산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봉수 조에 의하면 관두산의 봉수는 서쪽으로는 진도의 여귀산(女貴山) 봉수로 신호를 보내고, 남쪽으로의 영암의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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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신죽리에 있는 국토교통부 익산지방국토관리청 광주국토관리사무소 산하 출장소. 광주국토관리사무소 해남출장소는 해남, 강진, 완도, 진도 지역의 국도 및 국도상의 도로시설물의 보전과 관리, 시설 개량, 재해예방 및 복구, 안전 시설물 설치 및 개선 등을 목적으로 개소되었다. 광주국토관리사무소 해남출장소는 1949년 6월 이리지방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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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금강산에 있던 조선시대 간선 봉수. 금강 봉수(錦江烽燧)는 1437년 해진군(海珍郡)에서 해남현이 진도군과 분리되어 현재의 해남읍으로 옮겨 와 설치된 간선 봉수[직봉 사이에 중간의 신호불통을 우려하여 직봉으로 전달되는 작은 갈래의 봉수]이다. 화산면 관두산 봉수와 해남현 관문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여 해남현에서 관두로 신호를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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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남식(金南植)[1919~1989]은 1919년 12월 30일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에 거주하며 항일 활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남식은 제주도로 이주하여 서귀포천주교회의 아일랜드인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항일 의식을 키워 나갔다. 당시 제주 지역 천주교의 항일운동은 패트릭 도슨(Pat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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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이 국토 순례 1번지가 되기까지의 변화 과정. 해남 땅끝마을이 한반도의 남쪽 땅끝이라는 사실은 몇몇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만국경위도에는 우리나라의 남쪽 기점을 땅끝 해남현으로, 북쪽 기점을 함경북도 온성부로 잡고 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를 천 리, 서울에서 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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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현산면, 북평면에 걸쳐 있는 달마산에 둘레길이 만들어진 과정과 4개 코스를 걸으며 만나는 풍경. 달마산은 백두대간에서 시작한 호남정맥이 한반도 최남단 땅끝으로 가기 전 일구어 놓은 산이다. 달마산의 능선은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 솟아있으며, 능선을 따라 오르면 아름다운 완도와 진도의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조망되고, 날씨가 좋은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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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달량진(達梁鎭)은 완도의 관문에 해당하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동쪽 해변에 위치한다. 달량진은 해남군과 완도군 달도(達島) 사이의 물목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의 수군진으로 전라우수영에 편성되었다. 관련 기록은 조선 건국 후인 1406년(태종 6)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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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해남에서 일어났던 달량진왜변과 임진왜란의 극복 과정. 해남의 역사를 조명할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는 수군제도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쾌거이다. 전자는 16세기 중반 제승방략제라는 전쟁 방어 체제의 배경이 된 1555년[을묘년]의 달량진왜변이고, 후자는 정유재란의 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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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송지면 서정리와 북평면 서홍리에 걸쳐 있는 산. 달마산(達磨山)[470m]은 호남정맥에서 뻗는 기맥이 한반도 최남단으로 가기 전 해남군 남단에서 암릉(巖陵)으로 솟은 산이며, 송지천의 발원지이다. 달마산에 관한 최초의 지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영암군 산천조이다. 달마산은 이미 고려시대 이전에도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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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해남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해남현(海南縣)」 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04~1866]가 1861년(철종 12) 22첩으로 나누어 만든 목판본 조선 지도 중 해남현 부분이다. 1864년에는 일부분을 수정하여 재판하였으며, 목판의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숭실대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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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펼쳐진 차를 중심으로 한 초의, 추사, 소치 등의 교유. 조선 중기 이래로 일부의 선승(禪僧)과 문인들에 의해 겨우 계승되고 있던 음다풍은 19세기에 이르러 해남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성행하게 된다. 조선 후기의 차는 호남을 중심으로 융성하였다. 호남은 다승(茶僧)인 초의(草衣) 의순(意恂)[1786~1866]의 생(生)[무안군 삼향면]과 사(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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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철물 제작 기술을 보유·전승하고 있는 장인. 대장장이는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쇠를 달구어 각장 도구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역사 발전 과정에서 철기 문명이 무기에서 생활 도구, 노동 도구 등으로 확장됨에 따라 대장장이의 역할도 커져 갔으나, 근대 서양식 산업기술, 기계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장장이는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해남군에서는 농수산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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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인 대흥사의 산내 암자. 대흥사 일지암(大興寺一枝庵)은 초의선사가 39세인 1824년(순조 24)에 중건하였으며, 1866년(고종 3)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지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초의선사는 완호의 법맥을 이은 대흥사 13대 종사로, 1840년 55세 때에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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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 특수지역의 하나인 마봉소(馬峰所)가 있던 지역이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영암군에 속한 지역으로, 옛 영암군 남 60리[약 23.56㎞]에 마봉소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영암군 송지종면 지역이었으며, 마장(馬場) 밑에 마을이 있다 하여 마봉(馬峰)이라 하였다. 마봉은 말[馬]과 관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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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말을 방목하기 기르기 위하여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한 장소. 조선 초기에 중앙 정부는 말을 길러 국용을 조달하고 동시에 중국과 말 무역을 하였다. 전라도는 겨울철에도 춥지 않아서 목마용 풀을 얻기에 용이하였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다 제주도와 인접하여 전라도는 일찍부터 목장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특히 진도와 같이 물과 풀이 풍부한 섬과 바닷가 연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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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현감을 역임한 무신. 변협(邊協)[1528~1590]은 해남현감 재임 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군민들과 함께 해남읍성을 사수하였으며, 이후 전라우방어사(全羅右防禦使)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하였다. 변협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화중(和中), 호는 남호(南湖)이다. 아버지는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변계윤(邊季胤)이며, 어머니는 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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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에 있는 비자나무 보호수. 비자나무는 한반도 남부와 제주도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일본에도 분포하고 있다. 상록 침엽 교목이고, 수형은 원형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높이 25m, 흉고 직경 지름 2m까지 자란다. 비자나무는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줄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늙은 나무의 껍질은 얕게 갈라져 떨어진다. 잎은 길이 25㎜, 폭 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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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삼마리(三馬里)는 상마도, 중마도, 하마도의 3마도의 뜻을 따서 삼마리라 하였다. 상마도(上馬島)는 말 형국인 상마도·중마도·하마도 세 섬 중 가장 위쪽에 있어 웃마도리, 상마리도, 상마리 등으로 불리었다. 제주도에서 말을 싣고 오다가 풍랑이 심하면 상마도에서 머물렀다 하여 마유도(馬留島)로도 불렸다. 하마도는 삼마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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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에 있는 대한 불교 원효종 소속 사찰. 성도사(成道寺)는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였던 성도암(成道庵)으로 백제 구이신왕[?~427]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흥사의 만일암 창건 10년 후에 세워졌다는 설이 있으나, 이에 대한 기록 역시 전하지 않고 있다. 또 고려 중기에 중창되었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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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정자. 송호정(松湖亭)은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이 지었고 나중에 연안이씨의 소유가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송호당(松湖堂)이라고도 한다. 송호정은 석천 임억령 등 저명한 풍류객들이 묵어 간 곳으로 관련 내용이 시로 전한다. 정자가 있던 큰 소나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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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 식물상은 생산자로서 생물 생태계를 구성하는 먹이 연쇄 구조에서 기반을 담당하고 있다. 해남군은 한반도의 땅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륜산 지역과 달마산 지역으로 나눠지는 식물상을 보이고 있다. 두 지역을 중심으로 식물상을 기술하여 해남군 일원의 대략적 식물 분포상을 파악할 수 있다. 한반도의 식물상은 식물 지리적 구계(植物地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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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 식물상은 생산자로서 생물 생태계를 구성하는 먹이 연쇄 구조에서 기반을 담당하고 있다. 해남군은 한반도의 땅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륜산 지역과 달마산 지역으로 나눠지는 식물상을 보이고 있다. 두 지역을 중심으로 식물상을 기술하여 해남군 일원의 대략적 식물 분포상을 파악할 수 있다. 한반도의 식물상은 식물 지리적 구계(植物地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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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 소속 어촌계. 어란어촌계는 「수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 조직으로,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다. 어란어촌계는 마을 어장을 생활 근거지로 삼아 마을 공동 어장의 이용과 개발을 통하여 개별 어가와 어촌 마을 주민의 소득 증대에 이바지하고 하며 수산업협동조합의 일부 기능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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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어란진(於蘭鎭)은 조선 건국 초기에 해남반도 해진군의 방어를 위하여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병선을 배치한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삼촌포의 어란 병선은 남쪽 바다의 섬으로 이동하였다가 지금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진성을 쌓고 수군진으로 정착하였다. 왜구의 침탈을 벗어나기 위한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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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었던 포구. 어란(於蘭) 지명은 2차례 이동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어란이 있었으며, 어란에 배치된 병선이 어란도 섬을 거쳐 지금의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만호진이 정착하면서 어란 지명도 현재로 고정되었다. 조선 전기 어란은 병선이 배치된 수군진이면서 제주를 오가는 입출항지이기도 하였다. 이에 제주도 관승의 자제를 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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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 조직으로 설립된 어업인 조직. 어촌계는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어업조합이 수산업협동조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자연마을별로 구성되었다. 수산업협동조합은 흔히 줄여서 수협으로 불리며, 지구별·업종별 수협과 수산물 가공 수협으로 구분된다. 전체 92개 수협 가운데 70개가 지구별 수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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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옥동리(玉洞里)는 옥연이라고도 불렀는데, 마을이 옥매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연마을은 옥동마을과 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옥동리의 옥과, 마을 중앙이 제비집을 닮았다 하여 제비 연(燕)을 붙여 옥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호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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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옥매산의 광산노동자들이 1945년 8월 21일 제주에서 귀환하던 중 바다에 빠져 사망한 사건.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사이에 있는 옥매산(玉埋山)은 조선시대부터 옥으로 이름난 산이었다. 1910년 니시자키 쓰루타로[西崎鶴太郞]를 시작으로 일본인들이 옥매산 광산을 본격 경영하기 시작했으며, 1937년 7월부터는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淺田化學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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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유희춘(柳希春)[1513~1577]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양수(柳陽秀)이고 할아버지는 유공담(柳公澹)이다. 아버지는 유계린(柳桂鄰)이며, 어머니는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딸 탐진최씨(耽津崔氏)이다. 형은 유성춘(柳成春)이다. 유희춘은 해남에서 태어나 아버지 유계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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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통호리와 북평면 영전리에서 윤선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해남군 송지면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윤도산(崙道山)[284m]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윤도산 샘물과 윤선도」는 조선 후기의 문인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산 정상에 있는 샘물을 마신 후 말라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윤도산 샘물과 윤선도」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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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항일운동의 역사가 담긴 해남군의 전통 마을인 이진마을 이야기. 이진마을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하는 해안가 포구 마을이다. 바닷길의 중요한 요충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고대부터 해상교류의 거점으로 활발하게 이용되었고, 포구가 있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남(海南)이라는 지역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포구 마을로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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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용정사에 배향된 무신. 이억기(李億祺)[1561~1597]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수사로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등과 합세하여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억기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수(景受), 시호는 의민(毅愍)이다. 심주군 이연손(李連孫)의 아들이다. 이억기는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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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제주의 돌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이진과 제주돌」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남아 있는 현무암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해남군 북평면의 이진포구(梨津浦口)는 제주도와 육지를 이어 주는 포구이다. 제주도에서 배에 말을 실을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돌을 싣고 왔다가 돌아갈 때 이진포구에 돌을 내리고 대신 곡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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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생김새가 배 같이 생긴 나루라 하여 배진 또는 이진(梨津)이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진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이진마을, 산마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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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 이진성지(梨津城址)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으로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다. 1598년 이진진이 설치되면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진성지는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이진진은 1598년(선조 31) 설진하여 1627년(인조 5) 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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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배를 타고 내리는 포구였다. 전라우수영에 속한 수군진으로 달량진왜변 직후에 종9품 권관진이었다가 1627년(인조 5)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머문 곳으로 동학농민전쟁 이후 1895년에 폐진되었다. 이진리는 지형이 배 모양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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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수령 약 180~300년의 이팝나무 3그루. 이팝나무는 제주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비롯하여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서식하고 있다.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5m, 흉고 직경 50㎝까지 자란다. 이팝나무의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어린 줄기 황갈색으로 벗겨진다. 잎은 대생(對生)[식물의 줄기에 잎이 붙는 형식의 하나. 잎이 마디마다 두 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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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매광산 노동자들이 제주도로 강제 동원이 되었다가 해방 후 고향으로 귀향하던 중 바다에서 수몰된 사건. 1945년 8월 20일 새벽,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매광산 광부 255명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으로 제주도에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아 드디어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광부들을 실은 배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앞바다에 다다랐을 오전 여덟 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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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 입암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포구. 조선시대 입암포(笠巖浦)는 제주도를 왕래하는 배들이 물때를 기다리거나 항해 중 바람을 피하는 정박처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부터 성산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자 입암포의 서쪽 포구는 광물을 선적하여 일본으로 운반하는 선적항이 되었다. 입암포의 지명은 해변의 삿갓바위에서 유래하며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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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체육인. 조오련(趙五連)[1952~2009]은 1952년 10월 5일 해남군 해남읍 학동리에서 태어났다. 제6회, 제7회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하였고,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너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다. 조오련은 1968년 10월 10일 해남고등학교를 자퇴하였다. 1968년 11월 3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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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천연기념물로는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73호],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394호], 해남 성내리 수성송[천연기념물 제430호] 4개가 있다.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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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전라남도 해남군에 분포하는 천연기념물로는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73호],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394호], 해남 성내리 수성송[천연기념물 제430호] 4개가 있다.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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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추사 김정희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추사 선생 유배 길」은 해남 대흥사(大興寺) 현판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렀다. 김정희는 대흥사에 걸려 있는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글씨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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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고기잡이를 갈 때 대문 밖에 대나무를 걸쳐 놓아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 행위. 전라남도 해남 지역 주민들은 출어(出漁)할 때, 즉 고기잡이를 위해 어장(漁場)에 나갈 때에는 사립문 밖에 대나무를 비스듬히 걸쳐 놓는데, 이는 집주인이 고기잡이 나갔음을 알리는 표시이자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장치이다. 출어시 대나무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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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수령 약 200~250년의 푸조나무 12그루. 푸조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서 수고 높이 20m, 흉고 직경 2m로, 중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경상남도 해안 도서 지역, 남부 지방의 표고 700m 이하와 경기도 및 북부 지방, 제주도, 울릉도에도 분포하고 있다.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병충해도 거의 없다. 비옥하고 깊은 땅에서 잘 자라고 내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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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토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 해남은 봄철 고구마를 심기 전에 빗질한 듯 잘 갈아 놓은 황토밭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땅끝마을 해남은 깨끗한 자연 환경과 풍부한 일조량, 질 좋은 황토 때문에 전국 최대 고구마 주산지로 꼽히고 있다. 해남 고구마는 당도가 높고 저장성도 뛰어나다. 2008년 1월 30일 해남 고구마는 농림축산식품부 지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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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비자나무 숲. 비자나무는 주로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 높이 25m까지 자라는 큰키나무이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지만 3년 정도 자라면 갈색으로 변한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제주도 등 주로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상록 교목이다. 넓게는 일본에도 분포하고 있다. 목재는 바둑판, 장기판 등을 만들고, 종자는 기름을 추출하고 잎과 가지 등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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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왕벚나무 자생지. 왕벚나무의 학명은 Prunus yedoensis Matsum[Cerasus nudiflora (Koehne) T.Katsuki & Iketani]이다. 왕벚나무는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로 원산지는 한국이다.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는 1966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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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사의 중심 불전.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海南大興寺大雄寶殿)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사의 중심 불전이다. 2008년 9월 1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은 대흥사 경내에 있다. 대흥사 북원(北院)의 중심 불전이자 대흥사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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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백포만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던 고대 해양세력. 백포만은 해남반도의 서해 남부에 위치하며, 화산면의 남서 연안과 현산면의 서안, 그리고 송지면의 북서 연안으로 둘러싸여 있다. 백포만의 이름은 현산면의 백포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다. 백포만의 서쪽 건너편에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 진도가 있고, 그 사이에 명량해협이 있다. 백포만은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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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석축성. 해남 북평 달량진성(海南北平達梁鎭城)은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성종 대 왜구의 해안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 만호가 배치되었던 우수영 관할의 진성이다. 해남군 북평면은 제주도로 향하는 해상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해남 북평 달량진성과 관련하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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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과 비자나무 군락이 혼재되어 있는 숲.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서동사 근방에 있으며, 식물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숲이다.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비자나무 숲은 2011년 8월 26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동백나무는 약 140여 본이 있으며, 흉고 직경이 40~45㎝ 사이이며 높이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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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옥돌을 쪼아 다듬어 생활 도구나 치렛거리 등으로 맵시 있고 쓸모 있게 만드는 공예. 옥(玉)은 동양 문화권을 대표하는 보석이며, 일찍부터 사회 신분을 나타내는 장신구로도 이용되었다. 해남군은 예로부터 옥매산광산과 성산광산에서 채굴한 옥돌을 가공하여 만드는 옥공예품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옥매산이 있는 황산면 옥동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옥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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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에서 겨울철에 재배되는 배추. 따뜻한 해양성 기후인 해남군은 한겨울에도 배추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재배 환경을 지니고 있다. 해남군은 겨울철에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배추밭이 장관을 이루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전국 최대 배추 생산지인 해남군에서 자란 겨울배추는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또한 해남겨울배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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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 있는 해운 여객 수송을 위한 시설.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우수영과 제주도 및 추자도를 배편으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해남군에서는 2013년에 우수영항의 여객선 접안시설과 여객선 터미널 등을 준공하였다. 우수영 명칭은 1479년(성종 10)부터 여수에 좌수영이 개설되면서 생기게 되었다. 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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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해남 지역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첩이다.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외에 세계지도인 「천하도」, 외국 지도인 「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군사용 지도인 「요계관방도(遼薊關防圖)」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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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해원리(海元里)라고 하였다. 해원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영암군 송지종면의 개현(介峴)으로 나와 있는데, 갯골 또는 가연이라 불렀다. 개현이 어떤 연유로 해원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암군 송지시면과 송지종면의 개현(介峴), 삼마동(三馬洞)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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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누정. 해월루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조선 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사객들이 바람을 기다리는 건물이다. 영암군에서는 사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남창(南倉)과 6방을 설치하였다. 해월루는 1821~1850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5칸 건물이었던 해월루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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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누정. 해월루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조선 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사객들이 바람을 기다리는 건물이다. 영암군에서는 사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남창(南倉)과 6방을 설치하였다. 해월루는 1821~1850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5칸 건물이었던 해월루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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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포구. 해창(海倉)은 조선 후기에 해남현의 전세를 보관하고 출발하는 포구였으나 사실상 해남현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전세나 대동미를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17세기 중반에 대동법을 실시하게 되면서 해남현에 설치한 세곡 창고였고, 동시에 세곡을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는 포구이기도 하였다. 전세와 대동미를 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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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남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해남 지역 지도. 『호남지도(湖南地圖)』의 특징은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1리 간격의 눈금선[방안(方眼)] 위에 지도를 그린 것이다. 일부 고을의 지도에 비변사 인장이 찍혀 있어서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로도 불리고 있다. 2008년 보물 제1588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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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에 있던 전라우수영의 수군절도사 구장화가 중앙으로 올린 공문서를 편집한 책.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는 일반적인 읍지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으며, 전라우수사가 각 사안에 관해 중앙에 보낸 공문서를 편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호우수영지』는 당시 전라우수사로 재임하였던 구장화(具鏘和)가 작성하였다. 『호우수영지』는 1850년 9월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