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란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75
한자 古於蘭浦
영어공식명칭 Goeoranpo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정 지역 고어란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 지도보기
성격 포구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있었던 조선 전기 포구.

[개설]

조선 초기 어란(於蘭)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 인근이다. 수군의 병선이 옮겨가자 삼촌포어란고어란(古於蘭)이 되었다. 고어란에는 병선들이 배치되어 해상에서 근무하였으므로 육지부에서 유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구룡포들에서 청자편과 백자편이 출토된다. 1988년 고천암방조제 준공으로 바닷물이 차단되어 포구의 기능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리고 포구는 논으로 변하여 구룡포들이라 칭한다.

[명칭 유래]

어란에 배치된 수군의 병선이 섬[어란도]으로 옮겨가자 지금의 화산면의 어란고어란이라 칭하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초기 해진군[1409년 해남현과 진도군을 합한 고을 이름]이 삼산면 녹산역터에 설치되었을 당시까지는 지명은 어란이라 하였다. 제주를 왕래하는 배들이 머무는 포구이므로 ‘란양(蘭梁)’ 또는 ‘어란량(於蘭梁)’으로도 불리었다. 어란에는 수군만호의 병선이 배치되었다. 그러다가 병선이 섬[어란도]으로 옮겨가 고어란이 되었다. 이칭 와음(訛音)[잘못 전해진 글자의 음]은 구룡포, 구영포, 구녕포이고, 구해창, 구선창으로도 불린다. 고어란포(古於蘭浦)는 고깃배와 제주도 가는 배를 탔던 곳이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해남읍지』[1872] 등에 의하면 “현의 남쪽 25리[약 9.82㎞]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화산면 연곡리 연곡다리의 남쪽 답394번지 일대이다. 이 일대의 들을 ‘구룡포들’이라 칭한다.

[관련 기록]

고어란포는 『고려사(高麗史)』지리지 탐라현 조에 탐라에 이르는 세 가지 뱃길, 즉 나주, 해남, 탐진[지금의 강진] 뱃길의 경로에 등장한다. 나주에서 출발한 경우에 어란량으로, 해남에서 출발한 경우는 삼촌포[어란]로 등장한다.

『태종실록(太宗實錄)』1417년(태종 17)의 어란량 수군만호(於瀾梁水軍萬戶) 송안(宋安) 파직(罷職)과 관련한 기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사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어란해진군의 남쪽 삼촌포(三寸浦)에 있다. 중선 4척과 군사 480명과 뱃사공 4명을 거느린다[於蘭在海珍郡南三寸浦 領中船四艘, 軍四百八十名, 梢工四名].”라고 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1429년(세종 11) 8월 “제주에서 도망하여 온 사람을 끝까지 가려내기 위하여 배에서 뭍으로 내리는 초입인 해진(海珍) 어란의 강변에서 10리[약3.93㎞] 거리에 있는 구산성(狗山城)에 관소를 설치하였다[又窮推濟州逃來人戶, 於下陸初面海珍境內, ……距於蘭江邊十里許, 海珍南面狗山城內, 有田可耕, 且有水泉, 可置城].”라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 1434년에는 어란의 병선을 제주도 가는 배가 머무르고 진도가 보이는 삼내도(三內島)로 이전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온(鄭蘊)[1569~1641]이 쓴 『동계집(桐溪集)』에 의하면 정온은 1614년(광해군 6) 7월 제주로 귀양을 갈 때 해남에서 출발하여 제주도 별도진에 이르렀다. 당시 정온은 어란관(於蘭館)과 해창(海倉)에 머물렀다. 고어란 기록 기록을 보면, 『동국여지승람』 이후 지리지에서는 고어란으로 기록되고 “제주에 내왕하는 배가 정박한다[古於蘭浦 濟州來往船泊處].”라고 기록되었다. 그런데 『동국여지승람』과 『동국여지지』에서는 해남 산천(山川) 조에서 고어란포해남현의 남쪽 25리[약 9.82㎞]에 있다고 하였다. 이와 별도로 관방(關防) 조에 “어란포 만호진은 해남현의 남쪽 34리[약 13.35㎞]에 수군만호 1인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고어란포는 현의 남쪽 25리에 있다. 제주를 왕래하는 선박이 머무른다[古於蘭浦南二十五里 濟州來往船泊處].”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남읍지』[1872]에는 “제주를 왕래하는 배가 여기에 머무른다. 만호진이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지금까지 그 유지가 남아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古於蘭在縣南二十五里 濟州來往船泊此 在萬戶設鎭之處 至于今遺址尚存於此云云矣].”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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