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392
한자 松湖亭
영어공식명칭 Songhojeong Pavilion
이칭/별칭 송호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2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송호정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211 지도보기
성격 누정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정자.

[개설]

송호정(松湖亭)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이 지었고 나중에 연안이씨의 소유가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송호당(松湖堂)이라고도 한다. 송호정석천 임억령 등 저명한 풍류객들이 묵어 간 곳으로 관련 내용이 시로 전한다. 정자가 있던 큰 소나무와 벼랑 아래로 흐르는 물의 조화로 풍광이 아름다워 일제강점기에도 해남에서 유명한 곳으로 소개되었다.

[변천]

송호정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송호정을 지은 백진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동국여지지』에서 “송호 백진남백광훈(白光勳)[1537~1582]의 아들로 문장과 필법으로 일국에 이름이 있었으나 역시 백의로 뽑히니 사람들이 아쉬워하였다.”라고 하였다. 1601년 김상헌은 화산관두포에서 제주행 배를 탔는데, 바람을 기다리던 중 관두포에서 백진남을 만났다. 또 윤봉조(尹鳳朝)[1680~1761]는 1728년 1월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송호정에서 자면서 바람을 기다렸다고 한다.

1925년 발간된 『해남군지』에 의하면, 송호정백진남이 지었으나 현재 연안이씨의 소유라고 하였으며, 옥봉 백광훈,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오산 차천노, 청음 김상헌, 몽와 김창집, 삼여 김창옹, 북헌 김춘택, 청하 이기진, 우호 박헌봉 등이 송호정에서 노래한 시가 편액으로 걸려 있다고 하였다. 『동아일보』 1927년 6월 23일 기사에 삼산면 송호정에 대해 “일로거송(一老巨松)과 정원, 정자의 앞을 흐르는 냇을 송호장수(松湖長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광복 후 정자는 훼철되었으며 소나무도 태풍에 쓰러지자 제거되었다.

[위치]

『동국여지지』 궁실 조에서 보기 드물게 개인의 정자인 송호정을 소개하고 있다. “송호정은 남쪽으로 10리[약 4㎞]에 있다. 고을 사람 송호 백진남이 거처하던 곳이다. 그 아래로 작은 호수와 긴 내가 앞을 감싸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현재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211번지이다.

[현황]

송호정송정 마을의 이름, 그리고 큰 소나무와는 서로 관련이 깊다. 송호정이 있었다고 알려진 송정 마을 211번지에는 세 사람이 감싸야 하는 큰 소나무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태풍으로 쓰러져 사라지고 없다. 백진남의 송호정은 큰 소나무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소나무 주변에서 출토된 옛 기와편이 송호정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의의와 평가]

송호정은 개인의 정자이지만 여러 지리지에 기록될 정도로 유명하였다. 해남군을 대표하는 개인의 정자로, 풍광이 아름다워 호남의 풍류객들이 머물다 간 유서 깊은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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