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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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지역이 수록되어 있는 1872년에 제작된 지방지도. 『1872년 지방지도(1872年 地方地圖)』는 1871년(고종 8) ‘열읍지도 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에 따라 이듬해 전라도 해남현, 영암군 이진진, 영암군, 영암 어란진에서 발급한 현 해남군 일원의 지도이다. 『1872년 지방지도』는 필사 채색본 낱장으로 되어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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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전개된 농민들의 투쟁. 1946년 11월 1일 화원면을 제외한 13개 면에서 1만 3000여 명의 농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지서와 면사무소 등을 점거한 1946년 해남 추수봉기가 일어났다. 이때 미군정 경찰은 주동자 600여 명을 체포 또는 사살하거나 투옥시켰다. 일제강점기에도 강제 공출과 친일 경찰 때문에 고통을 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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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학(鶴)이 어가(御駕)를 모시고 날아와 앉은 형국이어서 가학리(駕鶴里)라 부르게 되었다. 해남군 청계면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래리, 신촌리, 용지리, 월하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계곡면 가학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가학마을 1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학마을은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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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 양식. 고인돌(支石墓)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 하나로, 거대한 덮개돌이 땅 위에 드러나 있고 아래에 무덤방이 있는 형태이다. 무덤 속에는 주검뿐 아니라 토기나 석기, 청동기 등의 다양한 유물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청동기시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하지만 고인돌이 모두 무덤만은 아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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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이 나타나는 조선시대 지도의 총칭. 우리나라의 고지도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고대부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전하는 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이 수록되어 있는 고지도로는 『여지도(輿地圖)』, 『지승(地乘)』, 『광여도(廣輿圖)』,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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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이 나타나는 조선시대 지도의 총칭. 우리나라의 고지도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고대부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전하는 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이 수록되어 있는 고지도로는 『여지도(輿地圖)』, 『지승(地乘)』, 『광여도(廣輿圖)』,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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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운송 수단과 운송로. 전라남도 해남군은 서남해안 땅끝에 위치하여 육로는 도로, 철도을 이용하여 사람과 화물을 이동시키고 있다. 한편 해남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까지 14개 읍면에 배가 닿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간척사업으로 많은 수로가 막혔다. 1925년에 금성자동차부(錦城自動車部)[김종현 설립], 호남자동차부(湖南自動車部)[안유석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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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고려시대 건립된 산성. 금강산성(金剛山城)은 13세기 중반 진도 용장산성과 함께 축조되었다. 14세기 왜구 침입기를 거쳐 해남읍성이 축조되면서 1434년(세종 16)까지 안으로 들어와 보호를 받는 입보용(入保用) 산성으로서 기능을 유지하였으며, 이후 봉수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쟁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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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있는 석재와 금속류 등에 기록된 문자.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나 돌에 표기된 문자를 말하는데, 석비나 암각명문(巖刻銘文)[바위 따위에 새긴 글] 등 재료가 돌인 경우가 가장 흔하고 동종이나 금고 등 금속류 법구나 도구에 기록한 경우도 있다. 금석문의 범위를 넓히면 목재나 토기, 기와, 도자기 따위에 기록된 문자도 포함된다. 전라남도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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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있는 석재와 금속류 등에 기록된 문자.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나 돌에 표기된 문자를 말하는데, 석비나 암각명문(巖刻銘文)[바위 따위에 새긴 글] 등 재료가 돌인 경우가 가장 흔하고 동종이나 금고 등 금속류 법구나 도구에 기록한 경우도 있다. 금석문의 범위를 넓히면 목재나 토기, 기와, 도자기 따위에 기록된 문자도 포함된다. 전라남도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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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금송리(琴松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동리의 첫 자와 반송리의 두 번째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업자리(業子里)·방축리(防築里)·금동리(琴洞里)·반송리(盤松里)·덕호리(德湖里)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업자마을, 방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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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였던 섬.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였던 섬이었으나 1993년 육지와 연결되었으며, 현재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에 속하여 있다. 면적은 5.4㎢, 해안선 길이는 2.9㎞였다. 금호도(錦湖島)는 1450년(세종 32)에 관제 개편에 따라 현이 폐지되면서 무안현 문내방에서 해남군 화원방으로 이속하였다가 1906년에 산이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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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금호리(錦湖里)는 본래 ‘속금(束金)’이라 불렀다. 속금은 목화를 생산하여 돈을 묶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100여 년 전에 어떤 학자가 마을 산세를 둘러본 후에 ‘금호’라 불러야 마을이 부흥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금호(錦湖)’로 바꾸었다. 금호는 바다경치가 비단자락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고,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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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에서 화원면 별암리를 잇는 방조제.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서남해안 간척농지 개발사업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산강 1단계 사업은 영산강 내륙지역인 장성·담양 등에 4개 댐을 건설하는 것이었으며, 2단계 사업은 목포~영암군을 잇는 영산강 하굿둑 공사였다. 제3단계 사업은 영암군 삼호읍에서 해남군 산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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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에서 화원면 별암리를 잇는 방조제.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서남해안 간척농지 개발사업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산강 1단계 사업은 영산강 내륙지역인 장성·담양 등에 4개 댐을 건설하는 것이었으며, 2단계 사업은 목포~영암군을 잇는 영산강 하굿둑 공사였다. 제3단계 사업은 영암군 삼호읍에서 해남군 산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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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군 금호도와 별암리를 연결하였던 조선 후기와 근대의 나루. 금호진(錦湖津)은 금호도에 있었던 작은 나루이다. 금호도에는 나루가 두 곳 있었는데, 금호도의 동쪽은 산이면 상공리, 서쪽은 별암리를 왕래할 때 이용하였다. 지금은 1993년 영암호 제방과 1995년 별암리 간 제방의 준공으로 소멸되었다. 금호진은 나루가 있던 산이면 금호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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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대기 현상의 평균적인 상태. 한반도 서남단에 있는 해남 지역은 3면이 모두 바다이기 때문에 난류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매우 온화한 기후환경을 나타내고 있다. 여름철에는 남동·남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고온다습하고,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고기압과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한랭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최근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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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주로 생산되는 특산품과 이를 이용해서 만든 향토 음식. 땅끝 해남은 중생대 우항리 공룡화석지, 천년 고찰 대흥사, 육백년 된 윤선도 종가집,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이 겹쳐서 흘러간다. 이른 봄 어린 마늘밭에 난 풀을 뽑는 농민의 주름진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도 느긋하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푸름과 여유를 잃지 않는 곳, 순박한 사람들이 들과 바다를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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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있는 전통시장. 남리5일시장은 3일과 8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공설시장이다. 남리5일시장은 1964년 개설된 시장이나, 조선 후기부터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1770년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화원·남리 3일 개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부터 시장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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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있는 전통시장. 남리5일시장은 3일과 8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공설시장이다. 남리5일시장은 1964년 개설된 시장이나, 조선 후기부터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1770년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화원·남리 3일 개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부터 시장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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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노송리(老松里)는 병자호란 때 창의한 김안방, 김안우, 김선지, 김연지가 청주화의(淸州和議) 소식에 비분강개하고 충절을 다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마을 뒤 주성산에 노송을 심고 종신하므로 노송정(老松亭)이라 부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노송리, 석연리, 구교리, 금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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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큰 나루가 있으므로 한나루, 한날 또는 대진(大津)이라 한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신농리, 대진리·원항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대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대진마을, 원항마을, 지사마을, 신농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지사와 신농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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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산하 해남 지역 협의회.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고종 황제 칙령 제47호에 의해서 설립된 이후 1919년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독립군과 재외 거주 동포를 위한 다양한 인도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피난민을 위한 구호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의 정치적 격변기에도 인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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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덕송리(德松里)는 산수가 수려하여 학이 많이 모여들었고, 노송이 많다고 하여 덕송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곡리, 황조리, 대진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덕송마을, 덕곡마을, 황조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덕송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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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덕호리(德湖里)는 텃골 북쪽 갯가에 있어 ‘텃골개’, ‘텃굴개’라 하였다. 옆 마을 부흥마을을 내덕(內德), 덕호마을을 외덕(外德)이라 하였다. 본래 산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백동리, 학림리, 백천리, 옹암리와, 반송리·덕호리·부흥리·해당리·방축리·예정리 각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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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을 관할하던 백제의 지방 행정구역. 6세기 백제가 해남 지방을 통치하면서 백제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며 “양무군(陽武郡)은 원래 백제의 도무군(道武郡)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도강군(道康郡)이다. 이 군에 속한 현은 넷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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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과 화원면 일원에 분포하는 고려시대 도자기 가마터.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는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와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가 있다.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원래 바다와 접해 있는 길게 뻗은 반도 형태로 바닷가 낮은 구릉 지대에 100여 기의 가마터가 분포한다. 현재는 영산강 개발 사업으로 개간되어 유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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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에서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 일어난 저항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3·1운동 소식을 접한 해남의 뜻있는 사람들도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고 뜻을 같이 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4월 6일 오후 1시경 해남 장날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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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녕을 시조로 하고 오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동복오씨(同福吳氏)는 오빈(吳彬)을 입향조로 하는 해남 지역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계곡면과 산이면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 오씨는 본래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로, 1962년 편찬된 『오씨대동보』는 모든 오씨의 시조는 신라 지증왕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오첨(吳瞻)이라고 적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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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마포면(馬浦面)과 산일면(山一面)의 첫 글자를 따서 마산면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마포면(馬浦面)과 산일면(山一面)의 일부를 합쳐서 마산면이 되었다. 이후 마산면은 1972년 7월 1일 복평리가 해남읍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1월 15일 월암리가 계곡면에 편입되었다. 1992년 10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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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이 1897년 합쳐져서 문내면(門內面)이 되었다. 문내면에는 조선시대 초부터 전라우수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라우수영 영문(營門)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호구총수』(1789)에 의하면 문내면(門內面)은 조선시대의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897년 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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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부동리(富洞里)는 부자가 될 마을이라고 하여 ‘부동(富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부동리, 상동리, 흑두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부동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부동마을, 흑두마을, 신흥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부동마을은 1726년경 금녕김씨 김대중(金大重)이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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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분포하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해남군의 산들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서남부의 해남반도로 뻗어있는 소백산맥의 서부 지역에 속하며, 영암의 월출산을 돌아 해남반도에 이어져 북쪽의 여러 산들이 만들어져 한반도 남단 땅끝에 이른다. 해남 지역의 산지는 전체적으로 1,000m 이하 낮은 지형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고서저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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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분포하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해남군의 산들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서남부의 해남반도로 뻗어있는 소백산맥의 서부 지역에 속하며, 영암의 월출산을 돌아 해남반도에 이어져 북쪽의 여러 산들이 만들어져 한반도 남단 땅끝에 이른다. 해남 지역의 산지는 전체적으로 1,000m 이하 낮은 지형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고서저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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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땅끝노회 소속 교회.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인 산이면에 복음 전파와 복지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산이동부교회(山二東部敎會)는 1961년 11월 28일 산이동초등학교 교장 사택에서 임원호 전도사의 집례로 첫 예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1987년 11월 3일 초대 장로로 강춘석, 이임동 2인을 임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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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산이면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를 비롯한 여러 지리지와 『광여도』[19세기 전반], 『해동지도』[1750]를 비롯한 옛 지도에 ‘산이(山二)’라고 수록된 지역으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지명이 바뀌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해남의 면이다. 고지도에서 산이면 지역의 산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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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초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목포제일노회 소속 교회. 신앙과 신학을 달리하던 몇몇 성도들이 초송교회에서 분립하여 산이제일교회(山二第一敎會)를 설립하였다. 산이제일교회는 1970년 5월 24일 신자의 집에서부터 예배를 하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대부분 같은 마을에 있는 초송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던 사람들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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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공리(相公里)는 입향조인 동복오씨가 고향을 기억하고자 양지(良池)라 부르다가 상공산 밑에 있어서 상공(相公)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당후리(堂後里), 상공리(相公里), 양지리(良池里), 그리고 원항리(元項里) 일부를 합쳐서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로 개설되었다. 상공리는 당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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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이는 생활 문화가 지리적으로 분포하는 범위. 해남군은 한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다. 해남군의 면적은 서울특별시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해남군은 해남반도, 화원반도, 산이반도로 해남 지역 구성이 3분된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다양한 생활권이 형성되었다. 해남군은 한반도의 최남단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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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군민이 공직에 임할 사람을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 직접선거 방식으로 치러진 것은 제2대 대통령 선거부터 제7대 대통령 선거까지, 그리고 1987년 6·10민주항쟁 이후에 처음 진행된 제13대 대통령 선거부터 가장 최근의 제19대 대통령 선거까지이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나타난 군민의 투표참여와 후보 지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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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 일반적으로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先史時代)라 하며, 문자 발명 이후의 시대를 역사시대(歷史時代)라 한다. 해남에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 곳으로는 산이면 구성리·덕송리·대진리, 문내면 충평리, 화원면 성산리 등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들로는 몸돌, 소형 양면찍개, 긁개, 여러면석기,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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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 일반적으로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先史時代)라 하며, 문자 발명 이후의 시대를 역사시대(歷史時代)라 한다. 해남에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 곳으로는 산이면 구성리·덕송리·대진리, 문내면 충평리, 화원면 성산리 등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들로는 몸돌, 소형 양면찍개, 긁개, 여러면석기,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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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관방 시설인 성터 유적. 성곽은 행정 시설물이면서 관방 시설물이다. 방어나 주둔이 목적인 성도 있겠지만 주둔하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 행정성이 되기도 한다. 해남 지역의 성은 우선 읍성이나 치소성 등 행정 기능이 주가 되는 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영진보(營鎭堡) 등 군사 목적의 성도 있다. 산성의 경우는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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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송천리(松川里)는 작은 하천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내’라고 불렀으며, 작은내가 전화하여 솔내 또는 소래가 되었다. 송천은 ‘솔내’의 한자식 지명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해당리·송천리·부흥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송천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해당리(海堂里)와 송천리는 1789년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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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이 낳은 혁명 시인 김남주와 여성주의 시의 선구자 고정희의 문학세계. 광활한 들판, 그 들판에서 생산된 풍족한 쌀은 해남을 살찌웠다. 수려한 풍광은 많은 시인들로 하여금 해남을 노래하고 시대를 노래하게 하였다. 해남이 배출한 시인은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멀리 조선시대로 거슬러 가면 최부를 시작으로 윤구, 임억령, 윤복, 유희춘, 백광훈, 윤선도,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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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먹는 일이나 먹는 음식을 둘러싼 생활과 풍속. 식생활은 지리적·기후적 조건과 같은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성을 띠며, 역사를 비롯한 사회 문화적 환경과도 상관성이 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식생활은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생활과 흐름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해남 지역만의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또한 변화하고 있다.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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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먹는 일이나 먹는 음식을 둘러싼 생활과 풍속. 식생활은 지리적·기후적 조건과 같은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성을 띠며, 역사를 비롯한 사회 문화적 환경과도 상관성이 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식생활은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생활과 흐름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해남 지역만의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또한 변화하고 있다.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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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오치 다다시치[越智唯七]가 편찬한 1914년 해남 지역을 포함한 군면동리(郡面洞里)의 통폐합 이전과 이후의 지명을 대조한 책.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은 일제가 한반도 식민지화 과정에서 통치의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단행하였던 전국 행정구역과 지명 변경 내역을 신 행정구역과 구 행정구역으로 대조하여 볼 수 있도록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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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전라남도 해남군을 관할하던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통일신라 9주 가운데 무주[무진주, 지금의 광주] 관할의 군현 수는 15군과 43현이었다. 당시 해남 지방은 양무군(陽武郡)과 영속관계에 있었다. 양무군은 백제 때 도무군(道武郡)이었는데,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이름이 바뀐 것이다. 주군현 간의 영속 체제를 강화하면서 행정구역명이 바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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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 조직으로 설립된 어업인 조직. 어촌계는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어업조합이 수산업협동조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자연마을별로 구성되었다. 수산업협동조합은 흔히 줄여서 수협으로 불리며, 지구별·업종별 수협과 수산물 가공 수협으로 구분된다. 전체 92개 수협 가운데 70개가 지구별 수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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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월 18일 전라남도 목포 허사도 앞바다에서 해남-목포 간 여객선이 침몰한 사건. 도로교통 시설이 충분하지 않던 1960년대에는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라남도 목포시를 오가는 사람은 주로 정기 여객선을 이용하였다.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와 목포 간 항로를 오가는 여객선 연호(燕號)는 해남 지역의 황산면·산이면·해남읍 지역 주민들이 겪는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운항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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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과 관련된 역사. 해남군의 역사는 구석기로 올라간다. 고대에는 고대 연안 해로와 관련하여 신미제국의 중심인 침미다례(忱彌多禮), 지미(止迷), 침명현(浸溟縣)으로 이어진다. 고려에 들어와 해남현(海南縣)이 등장하고 지금의 산이면 진산리 청자 가마터[사적 제310호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海南珍山里靑磁窯址)]와 화원면 신덕리 청자 가마터[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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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연구리(燕邱里)는 마을 뒷산 형국이 제비가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연구(燕邱)’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구리, 당두리, 덕인리, 추당리, 지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연구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연구마을, 지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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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에서 영암군 삼호읍까지를 잇는 방조제. 영암방조제는 영산강 유역 농업 종합 개발 제3단계 공사의 일환으로, 대규모 농경지와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1996년 11월 7일에 건립되었다.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서남해안 간척 농지 개발 사업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산강 1단계 사업은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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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에서 영암군 삼호읍까지를 잇는 방조제. 영암방조제는 영산강 유역 농업 종합 개발 제3단계 공사의 일환으로, 대규모 농경지와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1996년 11월 7일에 건립되었다.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서남해안 간척 농지 개발 사업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산강 1단계 사업은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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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예동(禮洞)마을의 옛 이름인 예정에서 명칭을 취하였다. 예동마을은 깊이 들어간 갯가로 지푼개, 유효, 유정, 예정이라 부르다가, 예동으로 바꾸었다. 본래 산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예동마을, 동월(東月)마을, 중촌(中村)마을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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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용전리(龍田里)는 지형이 용처럼 생기고, 마을에 밭이 많아 ‘용전’이라 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일면의 고암리, 용반리, 신기리, 용소리, ·용전리, 마포면의 신흥리 각 일부를 합쳐서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로 개설되었다. 용전마을, 신기마을, 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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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초기 청자 생산지로 유명한 화원면과 산이면에 대한 이야기.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자와 백자 등의 자기를 생산한 곳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는 중국 월주 지역에서 새롭게 들어온 청자 제조 기술과 전통적인 영암 구림리 도기 제작 기술을 더하여 초기 청자를 생산하였다. 이어 대규모의 집단 가마터는 산이면으로 건너가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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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우수영교회(右水營敎會)는 해남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다. 수영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94년 4월 19일 이눌러 선교사 일행이 해남 목장을 지나 우수영에 도착하여 밀렸던 빨래도 하면서 우수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1894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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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우수영 예하 해남 여러 면의 군관 명부. 관안(官案)은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기관과 관청에 소속된 관리들의 명단이다. 관원의 관직명·성명·생년·본관 등을 간략하게 적어 놓았다. 전라우수영은 고려 말인 1377년(우왕 3) 무안 당곶포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이 설치된 뒤 1465년(세조 11) 이후에 해남으로 옮겨져 1907년까지 존속된 수영(水營)이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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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우를 시조로 하고 이영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원주이씨(原州李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입향지인 마산면을 중심으로 해남 각지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원주 이씨의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신라 때 양산 촌장을 지낸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의 원손이며, 고려 문종 때 병부상서를 지내고 경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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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13개 읍면에서 읍·면민의 화합과 결속을 위해 개최되는 행사. 해남군의 13개 읍면에서 읍·면민들의 화합과 우의를 다지기 위해 각 읍면별로 특정한 날을 정하여 ‘읍민의 날’과 ‘면민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1982년 12월 30일 제정된 「해남군민의 날에 관한 조례」 이후 군민의 날 행사가 매년 5월 1일에 이루어졌다. 「해남군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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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속한 각 읍면의 행정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해남군은 14개 읍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읍면사무소는 해남군의 일선 행정기관으로서 대민 행정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해남읍사무소에는 총무팀, 주민복지팀, 희망돌봄팀, 재무팀, 산업팀, 개발환경팀, 민원봉사팀 등 6개 팀을 두고 있고, 각 면사무소에는 총무팀, 희망돌봄팀, 산업팀, 민원복지팀 등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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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항일운동의 역사가 담긴 해남군의 전통 마을인 이진마을 이야기. 이진마을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하는 해안가 포구 마을이다. 바닷길의 중요한 요충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고대부터 해상교류의 거점으로 활발하게 이용되었고, 포구가 있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남(海南)이라는 지역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포구 마을로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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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위치와 면적, 인구 변화, 경제, 사회, 교통 문화 등 인문 지리적 요소. 해남군은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 중 전라남도 최대의 군역을 자랑한다. 한반도의 서남단에 있어 기후가 온화하여 온대성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군 단위 지자체 중 전국 최대 면적의 농토와 리아스식 해안을 보유하고 있어 1차 산업이 발달하였다. 쌀, 겨울배추, 고구마, 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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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사회주의 항일운동 단체. 1920년대 중반부터 한반도 내 항일운동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1930년대 초 민족주의자들이 항일운동 계열에서 이탈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확대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 4차례나 조직되었던 조선공산당이 채 1년도 못 가 연이어 붕괴되었고,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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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전라남도 해남군의 지명을 조사하여 간행한 책.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는 전국의 지명을 조사하여 각 도별로 정리하여 간행한 책이다. 『조선지지자료』는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하였다. 『조선지지자료』의 편찬 및 간행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구관제도 조사사업개요』[조선총독부 중추원,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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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마산면·계곡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영암군의 속현인 죽산현(竹山縣)은 오늘날 해남군 산이면·마산면·계곡면 일대에 분포하였다. 죽산현 영내의 문화유산으로 죽산현고성, 금강산성, 장촌리 삼층석탑,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등이 확인된다. 죽산현 치소 일대에는 은적사가 있는 장촌리 뒷산인 금강산에 죽산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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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교차로에서 해남군 산이면·마산면·해남읍·삼산면·현산면·송지면을 잇는 지방도.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호리 용당교차로부터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를 잇는 전라남도 지방도이다. 영암군에서 해남군으로 이어지는데, 해남군은 산이면·마산면·해남읍·삼산면·현산면·송지면을 경유한다. 송지면 금강리~송호리까지 구간은 개통되지 않았다. 영암군 구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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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진산리(珍山里)는 진산현·진산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진산현의 성터 밑에 있어서 ‘진산(珍山)’이라 불렀다. 진산포는 고려시대에 청자를 실어 나르던 포구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산리, 내송리·대진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쳐서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로 개설되었다. 진산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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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조선 초기 지방 행정구역. 고문헌에서 진산현(珍山縣)의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진산고성(珍山古城)의 존재와 산이면 일대의 죽산현·산이면·진산리 등의 지명을 통해 진산현의 존재를 역추적할 수 있다. 조선 태종 대 죽산현에서 진산현이 갈라져 나왔다. 죽산현 별개로 산이면 일대에 현 단위의 지방행정 단위가 설치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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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에 수록된 해남 지역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1834년(순조 34)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04~1866]가 만든 우리나라 대축척지도로, 건곤(乾坤) 두 책을 상하로 연결하면 전국도가 된다. 전국을 남북으로 29층, 동서로 22판을 구분하여 방안 눈금으로 나누어 그렸다. 방안 하나는 남북이 100리, 동서가 70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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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에서 지역민의 건강·여가 활동 및 지역사회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일련의 조직적 및 비조직적인 신체 활동. 체육은 건강 및 체력을 증진하기 위하여 교육적 목적으로 실시되는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신체 활동으로 실시 목적에 따라 학교체육, 생활체육, 전문체육으로 구분된다. 학교체육은 신체 활동의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생활체육은 건강 및 건전한 여가 생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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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에서 지역민의 건강·여가 활동 및 지역사회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일련의 조직적 및 비조직적인 신체 활동. 체육은 건강 및 체력을 증진하기 위하여 교육적 목적으로 실시되는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신체 활동으로 실시 목적에 따라 학교체육, 생활체육, 전문체육으로 구분된다. 학교체육은 신체 활동의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생활체육은 건강 및 건전한 여가 생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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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초두(草頭)의 첫 번째 글자와 외송(外松)의 두 번째 글자를 따서 초송리(草松里)라 지었다. 외송(外松)마을은 초송리에서 으뜸[설, 솔]인 소리마을의 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밖소리’라 불렀다. 이를 밖에 해당하는 외(外) 자와 설 혹은 솔에 해당하는 송(松) 자를 써서 ‘외송(外松)’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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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산의 고갯길을 넘을 때 침을 뱉어 액막이를 하는 장소. 해남군 일대에는 고갯길 정상이나 마을 입구에 돌이나 솔가지를 모아 놓은 큰 무더기가 있어 그곳을 지날 때면 침을 뱉음으로써 두려움을 떨쳐내고 잡귀를 쫓아내었는데, 이 장소가 침당 또는 춤당이다. 사투리로 입 속의 침을 춤이라고 하는데, ‘침[춤]을 뱉는 당’이라는 뜻에서 침당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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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와 삼국시대 해남 지역에서 발굴·조사된 복합 유적. 패총(貝塚)은 마치 조개가 무덤처럼 쌓였다 해서 조개무덤이라고도 하며, 또는 조개더미라고도 부른다. 패총에서는 조개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식용으로 이용하였던 동물이나 물고기 뼈 등과 같이 아주 작은 뼈들도 남아 있다. 또 파손된 토기, 석기, 골각기, 토제품 등의 생활 및 생산 도구나 무덤, 주거지, 화덕 시설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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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수령 약 100~400년의 팽나무 106그루. 팽나무는 낙엽활엽수로서 수형이 원형이며, 높이 20m, 지름 1m 이상까지 자란다. 중국, 일본, 한반도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산발적으로 분포하지만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표고 50~1,100m 지역에 분포한다. 해남군에 있는 팽나무는 수령이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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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한글학회가 간행한 『한국지명총람』 중 해남 지역을 다룬 편. 『한국지명총람』은 한글학회가 1964년부터 조사 정리하여 1966년에 제1권 「서울편」을 시작으로 하여 1986년 제20권 「경기편·하」로 완간한 우리나라의 모든 땅 이름을 수록한 사전이다. 『큰사전』과 함께 한글학회의 2대 편찬사업으로 1964년 간행 작업을 시작하여 22년 만에 완성하였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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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에 1871년 건립된 명나라 진린 장군과 후손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별묘. 해남 덕송리 황조별묘(海南德松里皇朝別廟)는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중국 명나라에서 조선 구원군 도독으로 왔던 진린(陳璘)[1543~1607] 장군과 아들 진구경(陳九經), 손자 진영소(陳泳素), 증손자 진석문(陳碩文)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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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에 1871년 건립된 명나라 진린 장군과 후손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별묘. 해남 덕송리 황조별묘(海南德松里皇朝別廟)는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중국 명나라에서 조선 구원군 도독으로 왔던 진린(陳璘)[1543~1607] 장군과 아들 진구경(陳九經), 손자 진영소(陳泳素), 증손자 진석문(陳碩文)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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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에서 일어난 노동운동. 일제강점기 노동자들은 식민지 민중의 구성원으로 억압받으면서 특정 계급의 일원으로 착취를 받는 이중의 굴레에 놓여 있었다. 노동운동은 민족차별에 반대하고 한편 일제에 의한 식민지적 착취와 종속에 반대하는 반일 민족해방을 지향하였다. 1920년대 전라남도에서는 목포·광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업이 발전하였다. 전라남도 지역은 1931년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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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일어난 사립학교와 야학 설립 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제한적이나마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민족운동은 청년운동·노동운동·여성운동 등 부문별로 분화·발전하였으며, 민족운동의 제일의 목표는 계몽과 교육이었다. 3·1운동으로 고취된 민족의식은 자연스럽게 배움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1920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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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경찰의 예비검속에 해남 지역의 보도연맹원이 학살당한 사건.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9년 6월 15일 좌익 전향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로 좌익 세력 색출 및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1949년 12월 13일 전라남도에서도 국민보도연맹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후 각 군별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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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와 초송리에 분포한 고려시대 청자 가마터.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海南珍山里靑磁窯址)는 원래 바다와 접해 있는 길게 뻗은 반도 형태로 가마는 바닷가 낮은 구릉 지대에 100여 기가 분포한다. 1985년 사적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영산강 개발 사업으로 개간되어 유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출토 유물은 대량의 철화청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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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에서 겨울철에 재배되는 배추. 따뜻한 해양성 기후인 해남군은 한겨울에도 배추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재배 환경을 지니고 있다. 해남군은 겨울철에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배추밭이 장관을 이루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전국 최대 배추 생산지인 해남군에서 자란 겨울배추는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또한 해남겨울배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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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해남군은 동쪽으로는 강진군, 북쪽으로는 영암군과 접하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는 목포시, 서쪽으로는 신안군, 남서쪽으로는 진도군, 남동쪽으로는 완도군과 접하고 있다. 해남군의 가장 동쪽은 북일면 내동리[동경 126° 44′ 06″, 북위 84° 27′ 12″]이고, 가장 서쪽은 화원면 주광리[동경 126° 1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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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해남군 선거 사무 관리 기관. 해남군의 공정한 선거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3년 1월 16일 법률 제1255호로 선거관리위원회법이 제정됨과 더불어 1963년 1월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창설되면서 해남군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해남군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은 해남군청 내에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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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에 있는 해남군 관할 자치 행정기관. 해남군청은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해남군의 행정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으로, 해남군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한다. 해남군의 행정 및 민원 등 업무를 총괄하고, 주민 복지의 증진과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설치되었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도 해남현(海南縣)이 나주부(羅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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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해남 지역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첩이다.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외에 세계지도인 「천하도」, 외국 지도인 「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군사용 지도인 「요계관방도(遼薊關防圖)」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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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수령 150~600년의 해송 25그루. 해송은 소나무과 여러해살이 나무이며, 해안을 중심으로 산야에 서식하는 상록침엽수이다. 우리나라 남쪽 해안에 주로 분포한다. 상록성인 잎은 침엽으로 억세고 엽초는 회백색이나 밑쪽은 갈색이다. 꽃받침, 꽃잎, 암술대, 털 등의 식물 기관이 충분히 자라 열매가 성숙한 이후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숙존성이다. 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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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역사. 해남이 지금과 비슷한 경계를 갖게 된 것은 1448년(세종 30)으로 올라가며, 1895년에 해남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접 지역을 병합하면서 13개 면이 되었다. 13개 면은 해남면(海南面)·삼산면(三山面)·화산면(花山面)·현산면(縣山面)·송지면(松旨面)·북평면(北平面)·옥천면(玉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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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의 호수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 통계집. 『호구총수(戶口總數)』 「해남(海南)」의 저자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책의 내용으로 볼 때 1789년(정조 13) 규장각(奎章閣)에서 한성부의 초기(草記)를 기초로 편집·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호구총수』 「해남」 은 조선 후기 해남의 호수와 인구수를 파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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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화원면을 설치하였는데, 조선 초에 설치한 황원곶목장(黃原串牧場)의 ‘원(原)’ 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장서면(場西面)과 장목면(場牧面)으로 편제되었다가, 1906년(광무 10)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감목관이 혁파되고, 그 자리에 관저면(管底面)이 신설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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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황산면(黃山面)은 황원면과 산일면이 병합하여 이루어졌다. 황원면은 백제 때 황술현(黃述縣), 통일신라 때 황원현(黃原縣), 고려시대 황원군(黃原郡), 조선시대 황원면(黃原面)으로 이어지는데, 황은 황토에서 왔을 것으로 본다. 즉 황원면은 과거의 ‘황(黃)’으로 볼 때 ‘중심이 되는 넓은 들판’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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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을 비롯하여 황산면·산이면·문내면 등 화원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는 지방 행정구역. 6세기 백제가 해남 지방을 통치하면서 백제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양무군 조에 따르면 “황원현(黃原縣)은 원래 백제의 황술현(黃述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라고 한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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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통일신라 때까지 황원현(黃原縣)이던 고을이 고려에 들어와 황원군(黃原郡)으로 승격하였다. 이러한 고을의 읍격 변동은 왕건의 후삼국 통일전쟁에서 화원반도의 정치세력이 일정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백제 때에 황술현, 통일신라 때에 황원현 그리고 고려시대에 황원군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와서 현에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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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을 비롯하여 황산면·산이면·문내면 등 화원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였던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통일신라 9주 가운데 무주[무진주, 지금의 광주광역시] 관할의 군현 수는 15군과 43현이었다. 당시 황원현은 양무군(陽武郡)의 영현(領縣)에 속하였다. 황원현(黃原縣)은 백제 때에 황술현(黃述縣)이었는데, 통일신라 757년(경덕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