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000
한자 文化藝術
영어공식명칭 Culture and Art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윤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문학을 비롯하여 음악·미술·연극·무용 등의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개설]

일제 강점기와 8·15해방. 6·25전쟁 등의 격동 속에서 민족 자존심 회복과 전통문화 재건이라는 문화 의식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복지관·문예관·공보원·문화원 등 다양한 명칭으로 자생적인 문화 시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해남 지역은 문학·미술·음악 등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분과별 단체가 결성되어 있으며, 지역 문화 축제와 행사를 통해 활동을 지속 성장해 가고 있다.

[고전문학]

고려 이전까지 변방의 오지였던 해남은 조선 전기에 들어서면서 재력가인 해남정씨가 인재를 사위로 삼아 문인들의 등장을 지원하였다. 해남정씨의 사위였던 『표해록』의 저자 금남(錦南) 최부(崔溥)윤효정(尹孝貞), 임우리(林遇利), 유계린(柳桂隣) 등 제자를 길러 내었다. 윤효정, 임우리, 유계린으로부터 해남의 문맥이 형성되었다.

16세기 조선에는 철학과 문학이 활짝 꽃피던 시대였다. 영남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을 중심으로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고, 호남에는 담양을 중심으로 가사문학(歌辭文學)이 활짝 꽃피었다. 담양을 무대로 한 가사문학의 중심에 해남 출신 문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 등의 활약이 돋보였으며, 해남에서는 취죽헌(翠竹軒) 박백응(朴伯凝)[1525~?]이 후학을 양성하며 문맥을 이어 갔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정철(鄭澈)[1536~1593], 박인로(朴仁老)[1561~1642]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시가 시인으로 불리는 고산 윤선도의 등장으로 해남은 조선시대 시조 문학의 성지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해남의 시맥(詩脈)은 고산 윤선도의 손자인 지암(支菴) 윤이후(尹爾厚)[1636~1699]와 증손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로 이어졌다. 특히 공재는 시(詩), 서(書), 화(畫)에 두루 능하였으나 당쟁의 심화로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생애를 보냈다. 또한 대흥사(大興寺) 일지암에 은거하던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등과 교유하면서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정립하고 『일지암시고』, 『초의시고』 등 독창적인 시 세계를 선보이며 조선 후기의 해남 시맥을 이어 나갔다.

조선 후기에는 고산 윤선도 이후 걸출한 문인들은 나오지 못하였지만 구한말에도 많은 문인과 묵객들이 해남에서 출생하여 문집과 유고집들을 남겼다. 이 가운데 특히 해남의 삼문장(三文章)이라 일컫는 노하(蘆河) 박모(朴模)[1828~1900]의 『노하집』, 낭해(朗海) 이휴(李烋)[1875~1930]의 『낭해집』, 남전(藍田) 최경휴(崔敬休)[1814~?]의 『남전유고』 등은 시(詩)와 서(書)뿐만 아니라 제문, 행장, 유사, 잡록 등 다양한 분야의 글들이 수록되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대문학]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해방 직후 현산면 읍호리 출신인 심호(心湖) 이동주(李東柱)[1920~1979]가 나타났다. 이동주는 1940년 『조광』에 「귀농」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50년에 『문예』로 등단하면서 해남 현대 문학의 뿌리를 내렸다. 이동주에 이어 전후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해남 출신 문인으로는 시인 박성룡(朴成龍)이 있다. 박성룡은 1932년 화원면 마산리에서 출생하였는데, 1956년 『문학예술』에 「교외(郊外)」 「화병정경(花甁情景)」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이 무렵 해남에서는 1959년에 민재식, 김연태, 윤상현 등이 두륜문학회를 결성하여 문향의 맥을 잇고 지역 문학 활동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1960년대는 4·19혁명의 역사적 체험과 5·16군사정변 이후의 독재정치와 급속한 산업화로 파생된 인간 소외의 문제와 민족 구성원 내부의 불평등의 문제가 새로운 민족적 과제로 등장하였던 시기였다. 시 문학에서는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문학의 사회적 실천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부각되었으며, 이러한 시 문학의 참여적 경향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경향과 함께 문학의 순수·참여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 시기에 등단한 해남의 시인들은 박진환, 박문재, 박건한, 윤금초, 김준태, 명기환 등이 있으며, 해남에서는 1968년 황도훈이 발간한 『월간 해남』이 지역 문학의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1970년대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한국의 근대화는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보이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독재정치 체제의 억압으로 인한 민주화의 과제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노동 현장의 갈등이 고조된 시기였다. 시단에서는 1960년대 형성된 순수시와 참여시의 두 흐름이 큰 줄기를 이루며 문학의 균형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이 시기 해남 출신 시인으로 노향림, 김남주, 고정희, 윤재걸, 백추자, 최일환 등이 문단에 등단하였다. 해남에서는 1972년 김봉호를 주축으로 ‘한듬문학회’가 창립되었고, 한듬문학회는 1975년에 ‘한국문인협회 해남지부’로 개편하여 활동하였다.

한편 1976년 가을 대하소설 『장길산』을 집필 중이던 소설가 황석영이 해남읍 수성리에 터를 잡고 집필 활동과 문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5.18민주화운동으로 시작된 1980년대에는 민주화의 과제, 분단 문제, 노동 문제 등 현실 비판적인 시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해남 지역 출신 김남주, 고정희, 김준태, 황지우 등은 시대적 과제를 온몸으로 실천하였던 시인으로 한국 문학에 큰 획을 그었다. 1980년대에 등단한 해남의 시인으로 황지우, 이지엽, 손동연, 신용선, 민경대, 김경윤 등이 있으며, 소설가로는 1989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박정요와 최성배 등이 있다. 이 무렵 해남에서는 ‘남촌문학회’, ‘해남문학회’ 등이 창립되어 동인지를 발간하면서 지역 문학을 가꾸었다.

한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민청학련사건]으로 오랜 감옥살이 끝에 1980년 출소한 시인 김지하가 건강상의 이유로 원주에서 1985년 해남으로 이사 와서 서정 시집 『애린』 등을 창작하며 생명사상의 체계적 심화에 진력하였다.

1990년대 이후 한국시는 1980년대 민중문학의 퇴조 이후 다양한 시적 경향을 보여 주었다. 민주화, 분단, 통일 같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자리에 포스트모더니즘과 생태론 등 새로운 담론이 나타났으며 일상적 삶에 대한 관심과 시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미학주의가 확산되었다. 이 무렵 해남에서는 민족문학 계열의 젊은 문학인들이 1999년 ‘땅끝문학회’를 결성하여 동인지 『땅끝문학』을 지금까지 발간하고 있으며, 김남주, 고정희 시인 등을 기리는 문학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시기에 등단한 해남 출신 시인으로는 박병두, 김시림, 김여옥, 정지완, 정경란, 김사이, 김민휴, 김경옥, 김명은, 문주환, 이성률, 김민휴 등이 있으며, 소설가로는 양원옥, 홍관석 등이 있다. 2009년에는 ‘미암문학회’가 창립되어 동인지 『미암문학』을 매년 발간하고 있다.

[연극]

해남 연극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남 출신인 이기홍, 손귀만 등이 연극계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명 연출가인 이기홍은 ‘조선악극단’ 등 역량 있는 극단에서 활동했으며, 극작가 유치진에게서 세계적인 조명가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손귀만은 장치 연출가로, ‘황금좌’, ‘아랑’ 등의 극단에서 활동하였다. 해남 지역 내에서 초창기에 이뤄진 연극 활동은 해남청년회관에서 공연된 신파극 위주였다. 백일만, 손귀만, 유병환, 하동호 등이 스태프와 캐스팅을 맡아 계절에 따라 막을 올렸다. 그러한 연극적 성과들이 모여 나중에 극단 ‘예천좌(藝泉座)’가 결성되었다. 예천좌는 지금의 홍교 다리 근처에 있던 ‘해남청년회관’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해남청년회관에서 시작된 연극은 이후 문을 연 해남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뒤부터 신파조를 벗어나 현대연극이 시도되었다. 특히 1950년대에 서울에서 귀향한 김봉호가 가세하여 오늘날의 미암(眉岩)극단의 전신 격인 ‘해남연극동인회’가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김봉호가 주로 극본과 연출을 맡고, 임영종·김왕열·강선희 등 신진 배우들이 등장하여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1952년 전라남도 최초 극단인 ‘미암’이 해남에서 창단되었다. 미암극단 창단 후 올린 첫 연극이 「홍도야 우지마라」였고 연출은 노우춘이 맡았다. 그 후 미암극단은 매년 새로운 연극을 올렸는데, 「봉선화」, 「울려고 내가 왔던가」, 「어머니」 등 6·25전쟁 이후의 시대를 반영한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1991년에는 군 단위 최초로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가 결성되었다.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의 초대 지부장을 맡은 박승남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미암극단 운영에 헌신하였다. 2009년에는 제27회 전남연극제를 유치하였는데 해남 ‘미암극단’의 「레드색소폰」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어 해남 연극의 수준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미술]

조선 후기 서화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로부터 시작된 해남의 미술은 일제강점기 서양화의 유입으로 전통 양식과 외래 양식의 갈등을 겪으면서 서양의 근대적 양식을 수용하였다. 1970년대 이후 지역의 화단이 활성화되었으며 1990년 이후에는 해남미술협회[한국미술협회 해남지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미술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해남은 예부터 ‘미향(美鄕)’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회화의 전통을 간직한 고장이다. 조선시대 해남의 미술은 사대부를 중심으로 유교적 시(詩)·서(書)·화(畵)의 전통을 이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공재 윤두서이다.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삼재(三齎)’로 불리는 윤두서는 예리한 관찰력과 정확한 묘사력을 구사한 인물화와 말 그림을 잘 그렸다. 대표작은 해남윤씨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으로 동양의 초상화가 추구한 전신사조(傳神寫照)[초상화나 인물화를 그릴 때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초상화론] 기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 밖에 「나물 캐는 여인」, 「밭 가는 농부」, 「짚신 삼는 사람」 등은 모두 하층민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서민 풍속화로 평가할 수 있으며 조선 회화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윤두서는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남종화를 과감하게 수용하였는데 윤두서의 남종화풍은 아들 윤덕희(尹德熙)[1685~1776]를 거쳐 손자 윤용(尹愹)[1708~1740]까지 3대를 이어 간다.

윤두서는 우리 회화 사상 조선 중기와 후기를 잇는 중요한 화가로 윤두서의 화풍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의 풍속화로 이어졌고, 남종화의 기법은 소치(小癡) 허련(許鍊)[1809~1892] 일가로 전승되었다. 하지만 정작 해남에는 공재 3대 이후로 그 맥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하였다. 그로부터 한 세기쯤 지난 뒤 미방(米舫) 김익로(金益魯)[1845~1915]가 화맥을 가까스로 이어받았다. 초의(草衣)[1786~1866]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에게 사사한 김익로는 시·서·화를 갖춘 삼절로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대표작 「괴석도」는 선비 정신과 함께 조형성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김익로는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 하여 그림과 시가 한데 어우러지는 독자적인 화격(畫格)을 형성하였으며, 아들 소방 김홍주와 남원 김환주도 김익로의 화풍을 이어받아 서화가로서 일가를 이루었다.

해방 전후에 해남 미술의 맥을 이은 화가는 설산(雪山) 최광익(崔光益)[1891~1970]이다. 최광익은 해방 후 한국 최고의 인물화가로 특히 고승의 진영(眞影)을 잘 그렸다. 최광익의 대표작으로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라 일컫는 경허(鏡虛)[1849~1912]의 진영이 있다. 해남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이는 천응복이다. 일본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천응복은 수채화에 뛰어났다. 그 외에도 1920년대 동경미술학교를 다녔던 해남 출신 화가로는 김두제와 박남수 등이 있다.

해남에서 최초로 전문적인 근대미술 교육을 받은 화가로는 소계(小溪) 임기수(林奇洙)가 있다. 해남에서 태어난 임기수는 동경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대흥사에 40여 년간 파묻혀 지내며 고독하게 자신만의 유유자적한 화풍을 다듬었다. 임기수의 장남 임준식(林俊植) 또한 한국화가로 업을 이었다. 해방 전후에 해남에서 활동한 여성화가로 숙당(淑堂) 배정례(裵貞禮)가 있다. 배정례는 미인도를 잘 그렸으며 천경자, 박래향, 이현옥 화가와 함께 한국 4대 여류화가로 꼽혔다.

1970년대 이후 해남 출신으로 뛰어난 미술 역량을 갖춘 일군의 작가들이 고향에 머무르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였다. 황석훈, 김철수, 정동복 등이 활동한 1970년대 후반부터 해남의 미술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학산(鶴山) 황석훈(黃石勛)은 해남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1979년 미술동호회 ‘해화회’를 만드는 등 해남 미술인의 단합을 위해 활동하였다. 농전(農田) 김철수(金喆洙)는 1970년대 후반에 고향으로 내려와 ‘농전화실’을 열고 창작 활동을 하면서 1989년에 설립된 ‘해남미술협회’ 초대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또 김한영에게 사사한 남곡(南谷) 정동복(鄭東福)은 해남읍에서 ‘남곡화실’을 운영하며 지역 내 미술 활동에 앞장서 활동하였다.

해남의 대표작인 서예가로는 백련(白蓮) 윤재혁(尹宰赫)을 들 수 있다. 윤재혁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11대손이며 윤두서의 8대손으로 선현의 문예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 부문 특선 3회, 전라남도 미술대전 대상 및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1970년대 이후 해남이 배출한 조소(彫塑) 작가로는 김설희, 윤양희, 박진환 등이 있으며 공예에서는 김종호[호남대 교수], 도예 분야에서는 김태전이 있다.

[음악]

전라남도 해남군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우수영부녀농요, 육자배기 등 유서 깊은 음악 전통을 간직한 고장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국악 분야에서 뛰어난 판소리 고수(鼓手)와 명창을 많이 배출하였다.

해남은 기후가 온후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예로부터 전형적인 농업 고을이었던 까닭에, 수많은 들노래와 강강술래 등이 전하고 있다. 특히 문내면 우수영 일대는 조선시대에 삼도수군통제사가 주둔하던 전략적 요충지로서 1,000호가 넘는 주민이 밀집해 거주하였다. 그래서 우수영 지역에는 여러 종류의 노동요와 집단 음악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그 가운데 강강술래우수영부녀농요는 독특한 전통 민속음악으로 오늘날까지 전하여 오고 있다. 강강술래는 1965년에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고, 1976년 제1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수영부녀농요는 1972년도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음으로써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받게 되었다.

또한 해남은 남도잡가(南道雜歌)로 잘 알려진 육자배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우수영 일대에는 정월대보름에 행하여 오던 민속 의식으로서 ‘전라우수영 용잽이놀이’가 전하여 오고, 현산면·송지면 등 과거에 병영(兵營)이 있던 해안 지역에서는 ‘군고(軍鼓)’ 가락이 해남 고유의 풍물 가락으로 전승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전후에 한때 대흥사 주변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소리꾼과 고수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쑥대머리」의 대가이자 명창인 임방울을 비롯하여 동편제의 대가 박봉술, 신고(神鼓)로 알려진 고수 김명환 등이 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선관을 거쳐갔다고 전한다. 해남의 소리꾼으로 일제강점기 무렵에는 김흥봉(金興鳳), 천홍균 등을 꼽고 이후로는 소리와 창에서 공경환, 김달천, 한숙구, 김춘학 등이 돋보였고 고수는 한흑석, 홍광표 등이 잘하였다. 이어 정철호를 비롯하여 천대용, 감남종, 추정남 등이 판소리 고법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해남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판소리고법 분야에서 거두어 고수의 고장으로 우뚝 발돋움하게 된다.

해남은 국악의 고장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고수 분야에서 무형문화재 및 대통령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능 보유자 가운데 전국에서 딱 두 명뿐인 판소리고법 부문의 정철호를 비롯해 김명환 류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 감남종,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인 천대용, 추정남류의 고법을 창시한 추정남이 모두 해남 출신이다. 특히 추정남은 해남에 전수관을 열어 숱한 제자을 양성했다. 해남 차세대 고수 대부분이 추정남의 제자다. 대통령상 수상자도 3명이 배출됐다. 2005년 25회 전주 전국고수대회에서 공병진, 2013년 제33회 전주 전국고수대회 공도순, 2014년 제34회 전주전국고수대회에서 박병준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공병진과 공도순은 형제이다.

해남은 명창들도 대거 배출했다. 해남 출신 명창으로는 1992년 ‘정읍사판소리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박금희[본명 박방금]가 대표적이다. 박금희는 박초월 류 수궁가로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이다. 이난초는 1992년 ‘남원전국판소리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천명희[천희심으로 개명]는 2000년 목포에서 열린 제12회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해남 출신 명고수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였던 고(故) 천대용의 딸이다. 마산면 출신 문영주는 2008년 제11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판소리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화원 출신 김미숙은 1999년 제11회 목포전국명창대회 대통령상, 화원 출신 장미례는 2001년 제13회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황산 출신 임현빈은 2016년 제33회 남원 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대통령상, 해남읍 출신 고현미는 2007년 서울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삼산면에 거주하는 이승훈은 2019년 제39회 온나라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해남에 서양음악이 전래된 것은 해남보통학교[1911년 9월 개교, 지금의 해남동초등학교]가 개설된 무렵으로 추정된다. 해남 출신으로 서양음악 정규교육을 최초로 받은 사람은, 일본 도쿄음악학교 바이올린과를 졸업한 박노수(朴魯洙)이다. 「사랑의 슬픔」을 작곡한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1875~1962]에게 사사받았으며,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였다고 전한다.

박노수의 뒤를 이은 해남의 음악가는 유신(劉信)[1918~1994]이다. 유신의 본명은 유신종(劉信鍾)이며, 일제강점기에 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부산 한성여자대학교 음악과 교수를 역임하고, 이후 수도여자사범대학교, 중앙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작곡가, 음악평론가로 활동하였다.

해남은 많은 음악 전공자를 배출하였으나 대부분 외지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지역 내에서의 음악 예술 활동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이후 한국음악협회 해남지부가 결성되어 오페라와 교향악 등 다양한 초청 연주회를 개최하면서부터 서양 고전음악을 해남에서 접할 기회가 확장되었다. 1991년에 결성된 ‘해남어머니합창단’을 모태로 2005년에 창단된 해남군립합창단은 성인합창단과 소년소녀합창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남군립합창단은 매년 정기발표회와 관내 행사에 출연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9년 제21회 도민생활체육대회 최우수상 수상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도민합창경연대회’에서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연속 일반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2016년에는 창단 13년 만에 대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밖에도 땅끝매화축제 등의 각종 축제나 합동 추모제,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 등 다양한 행사에서도 활동하면서 폭넓은 활동을 보이고 있다.

1995년에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해남지부가 인준을 받으면서 대중음악 활동도 한층 체계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무용]

해남의 무용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집단무인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전통 무용 위주의 공연문화를 가지고 있다. 해남 지역에서 무용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은 주로 전통무용을 하고 있으며, 전문 무용가가 많지 않다. 근래 들어 해남 출신의 젊은 무용가가 한국 창작무용, 발레 등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해남의 대표적인 무용은 전통 민속놀이이자 집단무인 해남의 우수영 강강술래가 있다. 해남의 대표적인 무용가로는 전통무용의 유봉 한영자, 김영자, 한국무용의 대은정[목포시립무용단], 발레의 박일[국립발레단 마스터] 등이 있다.

유봉 한영자는 2001년 살풀이춤으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12년 대한민국 국창대회 무용부문에서 국내 최고인 천하명무 대상을 수상하여 명무로 인정을 받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로서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 기슭에 있는 예술문화 체험장 사단법인 달예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영자는 ‘거리의 춤꾼’이라 불리며 대중 속에서 호흡하는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호남예술제 바라춤 은상, 2001년 장흥 가무악 전국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2002년 법성포 단오제 전국경연대회 종합 장원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해남민족예술단체총연합 무용위원장, 전통춤연구회 해남지부장, 2012년 진도군립민속예술단 무용부 상임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대은정은 201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3호 단오제 제16회 숲쟁이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명인부 종합대상인 국회의장상을 수상하였다. 대은정은 현재 목포시립무용단 지도위원 및 훈련장과 보훈무용예술협회 전남지회 이사, 대은정무용단 대표를 맡고 있다.

박일은 1997년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입단하였다. 2008년부터는 국립발레단 부지도위원으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1993년 신인무용콩쿠르 차석 수상, 1995년 신인무용 콩쿠르 금상 수상 등을 하였다. 현재 국립발레단 마스터로 왕성한 활동과 함께 한국발레협회 이사, 한국프로발레협회 상임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문화 예술 시설과 단체]

2002년 4월에 개관한 해남문화예술회관은 지역 내 다양한 예술 활동을 아우르는 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해남문화예술회관은 다양한 문화의 생산과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접근성이 용이하고 지역 주민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위치인 군청 옆에 자리 잡았다. 해남문화예술회관의 군민광장에는 야외공연장이 있고 지하 1층은 생활체육시설이다. 1층은 연극·콘서트 연주회 등 대규모 공연과 행사를 진행하는 대공연장, 그리고 발표회·세미나 등 소규모 공연이 진행되는 다목적실이 있고, 2층은 회화·조각·서예·수석·난 등의 전시회가 개최되는 전시실, 요가·에어로빅·생활체조·발레·무용을 할 수 있는 무용연습실로 구성되어 있다. 해남문화예술회관은 농어촌 지역 문화예술회관이 가진 지리적으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월 평균 2회, 매년 20회 가량의 공연을 개최하여 타 농어촌 지역보다 월등히 많은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2018년 기준 중앙 부처 공연·전시 공모 사업에서 지난 2년간 해남문화예술회관이 가장 많이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1965년 2월 20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해남읍 성내리 군민회관 내에 해남문화원을 개원하였다. 1987년 10월 27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청소년 시범 문화코너로 지정받았고 영상음향실을 개설하였다. 1991년 문화부 지정 특장사업인 청소년 여름문화학교를 운영하였다. 1993년 문화체육부로부터 지역문화학교와 시범 문화원으로 지정받았다. 1994년 문화체육부로부터 지역문화학교로 지정받았고, 2007년에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부터 전문인력양성 기관에 선정되었다. 2011년~2012년 향토사 대중화 사업, 2013년 숲체험교육사업[녹색사업단], 2015년 노인 일자리 사업, 2016년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설화 조사 사업, 2017년 향교, 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문화재청]을 시행하였다. 2006년 6월 9일 해남문화원을 신축하여 현재 위치인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80-5로 이전하였다.

행촌문화재단해남종합병원 설립자이자 지역 작가들의 후견인으로서 지역 예술인들과 깊은 교우를 나누었던 행촌 김제현을 기념하고 해남의 지역 예술을 후원하기 위해 김제현의 아들들이 2014년 10월 설립하였다. 김제현이 50여 년 동안 수집한 해남 지역 예술가의 미술작품과 서예작품, 도자기, 난과 수석 등을 전시하는 행촌미술관을 2014년 10월 17일 해남종합병원 동관 1층에 개관하였다. 행촌문화재단은 해남군 문내면 임하도에 있는 행촌의료재단의 수련원을 예술가들이 해남에 머물며 창작할 수 있는 레지던스 공간인 ‘이마도 작업실’로 꾸며 2015년 3월 20일 오픈하였다. 행촌문화재단에서 해남읍 학동리의 구 골프 연습장을 리모델링하여 2018년 10월 개관한 수윤 Art Space는 자연 복합문화공간으로 수윤미술관, 수윤동산, 거인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해남 관내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이자 야외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행촌문화재단에서는 전시, 교육, 기행, 마을 커뮤니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행촌미술관에서는 행촌문화재단 소장품 전시 및 기획 전시회, 드로잉클럽, 수묵클럽, ‘예술가와 함께 떠나는 남도수묵기행’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가와 함께 떠나는 남도수묵기행’은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동행해 해남 지역 아트투어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행촌미술관에서는 행촌 김제현이 평생 수집한 소장품과 함께 해남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행촌미술관은 2014년 개관전 ‘인생(人生)_풍류가인(風流佳人)’을 시작으로 미황사와 일지암, 현산면 만안리의 농가 창고, 화산 해창주조장, 녹우당 충헌각, 행촌미술관, 수윤미술관 등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현재 해남 지역에서는 해남문인협회, 해남문학회, 땅끝문학회, 미암문학회 등 여러 문학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해남에서는 민족문학 계열의 젊은 문학인들이 1999년 ‘땅끝문학회’를 결성하여 동인지 『땅끝문학』을 지금까지 발간하고 있으며, 김남주, 고정희 시인 등을 기리는 문학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09년에는 ‘미암문학회’가 창립되어 동인지 『미암문학』을 매년 발간하고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해남지부[해남 민예총]가 결성되고, 산하에 한국미술협회 해남지부가 조직되면서 미술 대중화의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미술협회 해남지부는 매년 정기 전시회를 개최하는 한편 2008년부터 매년 열리는 ‘공재문화제’ 등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주민과 함께하는 미술 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해남지부는 회원전, 동서미술의 현재전·남도미술의 향기전[영·호남 미술교류전], 해남예술제 기념 전시회, 전남 청년 작가전, 군민초대전, 타 지역과의 교류전 등을 개최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 예술아카데미, 해남 학생 공모전 등을 통해 청소년들을 지도하며 미래 지역 미술인을 육성하는 등 지역 미술 저변 확대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6년 12월에 안재현을 초대 회장으로, 20여 명의 사진가들이 ‘해남사진클럽’을 결성하여 명량대첩축제, 해남군민의 날, 초의문화제와 같은 지역축제 기간에 회원 사진 전시회를 꾸준히 여는 등 지역 내 사진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나갔다. 2013년 4월 6일에 초대 지부장 김총수를 비롯하여 안재현 부지부장, 전선미 사무국장 등 임원과 회원 10명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해남지부를 창립·출범하였다. 2013년 6월 25일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가입 인준 승인을 받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해남지부 사진협회로도 등록하였다. 2014년 9월 1일에는 해남사진클럽과 통합하였고, 2016년 4월 28일 한국사진작가협회 해남지부 사무실을 개소하였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해남지부는 창립 이후 매년 명량대첩제, 해남군민의 날, 초의문화제 등 지역축제에서 회원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9년에는 ‘영암 관광사진공모전’에서는 민경원이 대상을 받았고, ‘목포배 사진공모전’에서는 김총수가, 2010년 ‘해남 관광사진공모전’에서는 천기철이 대상을 받았다.

한국국악협회 해남지부는 1987년에 창립되어 박상대가 초대 지부장에 취임하였다. 창립 이후 해남 국악 예술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는데, 초기에는 해남 지역 국악 예술인들의 국악제 참여를 지원하고 지역 내에 국악 초청공연을 주최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현재도 매년 정기적으로 ‘땅끝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고법발표회’ 등의 국악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한국음악협회 해남지부는 1993년 설립된 이후로, 1994년부터 매년 발표회 성격의 ‘해남예술제 회원음악회’를 열고 있으며, 2011년부터는 초·중·고 각 학급을 포함하는 ‘해남학생음악경연대회’를 진행하였다. 또 2005년에는 광주오페라단 초청 창작오페라 「김치」 공연, 전남청소년교향악단 초청연주회, 2006년 안산시립합창단 초청연주회, 2007년 광주오페라단 초청 갈라콘서트, 2008년 전남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공연, 2014년 전남교원오케스트라 초청연주회, 2015년과 2016년 금강오케스트라 초청연주회 등을 유치하였다.

한국생활음악협회 해남지부는 2006년 3월에 결성된 기타 동아리인 ‘땅끝울림’을 모체로 하고 있다. 땅끝울림은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기타를 가르치던 기타 연주가 김영곤을 중심으로 2006년 3월에 결성된 해남 최초 기타 동아리로, 지역의 젊은 직장인을 주축으로 구성되었으며, 병원과 요양원 등 어디든 찾아가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70~80년대 포크 음악을 주로 연주하고 있고 특히 매주 토요일 저녁 땅끝 맴섬 앞에서 통기타 공연을 열어 땅끝토요음악회 출범의 모태가 됐다. 사단법인 한국생활음악협회 해남지부는 해남에 기타붐을 일으킨 한채철이 만든 모임이다. 2008년 기타동아리로 출발해 2009년 사단법인 한국생활음악협회 지부로 정식 인준을 받았다. 한채철이 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땅끝토요음악회를 주관하고 있다. 2008년부터 농아인 돕기, 다문화가정 돕기 등의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소외된 지역 주민과 음악으로 만나고 있고 대흥사 숲속음악회를 매주 토요일 열고 있다. 이 밖에 해남군, 여성가족부, 해남교육복지네트워크, 해남YMCA의 후원으로 2018년의 립싱크&타악기페스티벌을 주관하였고 2013년부터 시작되어 2018년 제5회를 맞이한 통기타페스티벌도 주관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2014년에는 사단법인 한국생활음악협회 최우수 지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해남지부는 1985년 사단법인 한국연예예술인협회의 전남서남부 분회로 출발하여 1995년에 해남지부로 정식 인준을 받았다.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 예총] 해남지회에 소속되어 있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해남지부는 2007년부터 해마다 ‘오기택전국가요제’를 주최하고 있는데 2018년 현재 12회째를 맞이하였다.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는 1950년대부터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연극 예술을 이끌던 연극인들이 1990년 지역 연극인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도모하고자 설립한 문화예술 단체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 예총] 해남지회에 소속되어 있다.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는 지역 극단·연극인들의 창작 활동 지원, 해남 지역 예술제 주관, 지역축제 지원 및 관내 각급 학교 문화제 지원, 창작 지원 등의 사업을 펼치하고 있다. 해남에서 개최한 2009년 전라남도연극제와 순천에서 개최한 2013년 전라남도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전국연극제에 출전한 것을 발판으로 2013년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되었다. 현재 해남 지역에서는 우수영강강술래·부녀농요진흥보존회와 더불어 두 개의 단체만이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2006년 창단된 해남 땅끝오케스트라는 민립(民立) 청소년 관현악단으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단 당시 군 단위 지자체 중 유일하게 학생들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주목을 받았다. 2006년 결성 당시 김태수가 지휘를 맡고 백두성[첼로], 정희승[오보에], 한보름[클라리넷], 조성숙[플루트] 등이 지도하여 2007년 6월에 첫 정기연주회를 개최하였다. 2009년에는 ‘제1회 광주·전남청소년오케스트라페스티벌’을 주관하여 순천, 광주 등지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한편 2010년부터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관현악을 알리고 관심을 갖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 해남군 산이면에서 개최된 ‘제1회 땅끝산이매화축제’를 비롯하여 ‘송호리여름해변축제’ 등 지역 축제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였다. 2012년에는 금난새 지휘자와 연주회를 펼쳤다. 2007년 첫 정기연주회를 개최한 이래 해마다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다. 2018년에는 해남동초등학교 꿈누리센터에서 제14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땅끝오케스트라는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를 표방하기 위해 ‘송호해변 한여름밤의 축제’와 ‘농아인돕기자선음악회’ 등에서도 연주를 선보이는 등 지역 축제 및 음악행사 초청 연주회 등을 펼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우수영강강술래·부녀농요진흥보존회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 우수영부녀농요를 보존하고자 2003년에 우수영강강술래진흥보존회로 설립된 예술단체이다. 강강술래를 보존하고 후대에 계승하려는 목적으로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강강술래보존회가 1986년에 설립되었고 진도에 전수회관도 세워졌다. 해남 지역의 강강술래 전승자들도 진도 지역과 함께 활동하다가, 해남의 지역성이 살아 있는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우수영부녀농요 등 해남 지역에 전승되는 지역의 무형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고자 2003년에 우수영강강술래·부녀농요진흥보존회를 설립하였다.

[축제]

해남예술제는 지역민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 공연을 제공하고, 예술의 미래를 이끌어 갈 예술 꿈나무를 발굴, 육성하기 위하여 열리고 있다. 해남예술제에서는 지역의 특색에 맞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축제 프로그램으로는 가요제, 판소리고법발표회 등의 다양한 예술 경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연극 공연, 해남 사진전, 오기택전국가요제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여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해남에서는 강강술래의 전통을 살려 민속을 발전시키려는 취지로 매년 명량대첩축제 등에서 강강술래가 거행되고 있다. 해남을 중심으로 남해안 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 강강술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민중 속에서 전승되어 온 민족 고유의 민속놀이이자 귀중한 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1966년 2월 15일 지정]이다.

해남에서 개최되는 전통 예술 행사로는 땅끝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가 있다. 해남군이 주최하고 한국국악협회 해남군지부, 달예원이 주관하며 전통문화 예술의 계승 및 발전에 도모하고 국악인의 자질 향상과 신진 국악인 발굴 육성을 통하여 국악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고 전통예술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전통무용만이 아니라 판소리, 고법(鼓法), 기악[민요, 가야금병창] 등 국악 전반에 걸쳐 치루어지는 대회이다. 2015년 이전까지 명인부분 종합대상이 국무총리상이었는데 2015년부터 대통령상으로 승격하였다. 대회는 예선, 본선, 종합 결선을 거치게 된다. 땅끝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는 1990년 제1회 ‘해남고수대회’로 시작되어 2008년 제17회 대회부터 대회 명칭을 땅끝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로 바꾸었다. 매년 역사적 전승을 기념하는 명량대첩축제와 연계하여 개최되고 있으며, 일반부, 명고부, 신인부, 고등부, 초중등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1996년에 처음 개최된 판소리고법발표회는 회원들의 판소리고법 발표와 더불어, 국내에서 수준 높기로 이름난 명창과 고수들을 초청하여 판소리의 진수를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판소리고법발표회는 1996년 4월 28일 해남군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11년 9월 6일 해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제16회 판소리고법발표회에서는 특히 해남 지역 출신으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부문 장관상 이상을 수상한 명창들을 초청하여 해남국악협회 회원으로 구성된 고수들의 뛰어난 기량을 군민에게 선사하였다. 2017년 제22회 판소리고법발표회는 10월 29일 열린 해남예술제 기념행사로 개최되었다.

매년 12월 31일과 새해 1월 1일, 땅끝마을 맴섬 일원과 갈두산 사자봉 땅끝전망대 일원에서 땅끝해넘이해맞이축제가 1995년부터 열린다. 특히 해남의 일출은 땅끝항 옆 형제바위의 갈라진 틈 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땅끝해넘이해맞이축제는 촛불행사와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새해 첫날 첫해를 맞이하는 해맞이제가 열린다. 기 올리기, 해넘이 의식, 군고시연, 강강술래한마당, 소원탑 쌓기, 새천년 기원 굿, 불꽃놀이, 땅끝 달리기, 천년맞이 북놀이 등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 군고시연은 다른 지방에서는 풍물 또는 농악이라고 불리는 해남의 민속놀이로, 웅장하고 세련된 북장단과 잡색놀음, 상모놀음이 일품이다. 강강술래한마당은 즉석에서 배우고 참여하는 열린 마당으로 펼쳐진다.

서산대제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대장으로 활약하였던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구국 정신을 선양하고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대흥사와 보현사에서 치러 온 국가 제향이다. 대흥사는 2012년부터 매년 봄에 서산대사 탄신 시기에 맞춰 유교식으로 진행하는 서산대사 국가 제향과 법어, 헌다, 헌화 등 불교식 제향으로 진행하는 법요식이 함께 열리는 특색 있는 의식으로 서산대제를 봉행해 오다 2017년부터는 유교식 국가 제향인 예제관 행렬 재현과 추계 제향을 서산대사의 기일에 맞춰 가을에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해남 미황사에서는 해마다 괘불재와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8년 제19회 괘불재를 해남군 미황사에서 10월 27일 개최하였다. 괘불재와 더불어 해남 지역주민에게 작은 축제의 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된 ‘괘불재 그리고 미황사 음악회’도 19번째로 진행되었다.

해남군은 1997년 명량대첩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명량대첩 400주년 기념행사를 울돌목 일원에서 개최하였고, 2005년부터는 ‘명량대첩제’를 개최하였다. 2008년부터 ‘명량대첩축제’로 우수영관광지에서 전라남도·해남군과 진도군이 공동 개최하고 있다.

해남군 북평면 남창마을 일원에서는 정월대보름 무렵에 풍년·풍어를 기원하고 대형 용줄을 이용해 줄다리기를 하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남해안에 가까운 북평면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과거 왜구의 침입이 잦았기에 용줄다리기를 통해 주민들의 단합을 도모할 필요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평면의 용줄다리기 풍속은 한국전쟁 이후 중단되었다가 2009년 재현되면서 매년 10월 중에 북평 힐링공원에서 개최되는 북평용줄다리기축제로 이어졌다.

해남군에서는 윤선도의 문학 세계를 알리고 보존하고자 많은 프로그램을 동반한 축전인 고산문학축전을 해마다 10월 중에 개최하고 있다. 고산문학축전의 주요 행사는 고산문학대상 시상식, 고산시가낭송대회, 시조토크콘서트, 고산문학콘서트, 전국고산청소년백일장, 시·서·화 백일장으로 진행된다. 고산문학대상은 2001년 해남군의 지원으로 제정되었으며, 해남군이 주최하고 고산문학축전운영위원회와 계간 『열린시학』이 주관하는 문학상이다. 전국고산청소년백일장, 시·서·화 백일장이 진행되는데, 전국고산청소년백일장은 운문과 산문 분야로 진행되며 1등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이 주어진다.

1978년 조성된 보해매실농원은 국내 최대 규모인 총 50여 만㎡의 면적에 1만 4000여 그루의 매실수가 식재되어 있어 봄이면 꽃 천지를 이룬다. 보해매실농원은 백매화, 홍매화 등과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09년 땅끝매화축제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땅끝매화축제가 개최되었다.

해남군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주관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광명의 정신과 불교문화를 선양하기 위해 매년 5월 연등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2019년[불기 2563년] 5월 7일 해남군청 앞 해남군민광장에서 ‘해남군 연등문화축제’를 봉행하였다. 연등문화축제는 군악대의 식전 공연에 이어 법요식과 대형 솥에 비빈 자장면을 군민과 함께 나누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연등문화축제는 만발공양과 법요식, 가수들의 공연, 제등행렬 등으로 꾸며져 3,000여 명의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축제로 거듭났다.

2018년 달마고도걷기축제는 4월 28일 송지면 달마산 달마고도 일원에서 ‘제1회 달마고도걷기축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제1회 달마고도걷기축제는 2018 봄 우리나라 걷기 여행 축제의 일환으로 해남군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후원하였다. 해남 땅끝 미황사달마고도 걷기 길은 역사와 문화자원이 풍부한 옛길을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면서 명품 길 사업으로 조성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남주문학제는 자유와 평화·통일을 노래한 민족시인이자 전사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김남주 시인의 시 세계를 기리고 문학 혼을 선양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김남주문학제는 김남주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해남군에서 후원하고 있다.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김남주 시인의 생가 일원에서 진행된다. 김남주문학제에서는 김남주 시인의 육필 원고와 사진 등을 전시하는 ‘김남주의 삶과 문학전’, 김남주 시 엽서 쓰기, 김남주 시인의 육성시 낭송, 연등에 김남주의 시를 써 다는 ‘김남주 시(詩) 등 달기’ 등 해마다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시낭송과 시노래 공연, ‘김남주 시 이야기’ 등의 행사가 펼쳐지는 ‘김남주포엠콘서트’도 매년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김남주청소년문학캠프와 김남주 시인 생가에서 역시 해남 출신인 고(故) 고정희 시인의 생가까지 걸어가는 시인의 생가 길 걷기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고정희문화제는 1991년 세상을 뜬 시인의 기일을 전후하여 매년 추모제를 열어 온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의 추모 기행에서 비롯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1년 6월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이 해남을 찾아 고정희 시인 10주기 추모제를 지낸 이후 2002년 6월에는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지역 여성운동 그룹인 ‘해남여성의소리’, 해남 ‘땅끝문학회’가 함께 시인을 추모하며 제1회 고정희문화제를 열었다. 2004년 땅끝문학회와 해남여성의소리가 고정희기념사업회를 창립하고 행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땅끝송호해변푸른음악회땅끝송호해변과 해남의 관광지를 찾아온 피서객들에게 여행의 즐거움과 함께 문화예술을 즐기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개최하는 행사이다. 땅끝송호해변푸른음악회에서는 초청 가수 공연, 지역 가수 공연, 각종 퍼포먼스 공연 등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2010년 제1회 땅끝송호해변바다콘서트로 시작한 땅끝송호해변푸른음악회는 2011년 ‘제2회 조오련배바다수영대회’를 기념하면서 개최됨과 동시에 땅끝송호해변푸른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해남군 계곡면 가학산자연휴양림에서는 매년 봄이면 흑석산철쭉제를 열어 남도의 봄기운을 만끽하게 한다. 흑석산철쭉제 행사로 사물놀이, 국악공연, 댄스 경연 대회, 초대가수 공연과 흑석산 등반대회, 산신제, 경로잔치 등을 열어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초의문화제는 조선 후기 선(禪)과 차[茶]가 하나라는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주창하며 쇠퇴해 가던 우리 차의 부흥을 이끌었던 초의선사의 다도 정신을 선양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매년 개최하고 있다. 초의문화제초의선사의 입적일인 음력 8월 2일에 다인[茶人]들이 초의선사가 40년간 머문 해남 두륜산 대흥사 일지암에 모여 헌다제례(獻茶祭禮)를 올려 오던 것이 시초이다. 해남에 있는 해남다인회와 해남자우다회 등 4개의 다회 등이 헌다제례를 내실 있게 확대하고 각종 행사를 통합하여 전국 행사인 제1회 초의문화제를 1992년에 개최하였다.

[참고문헌]
  • 해남시문학사편찬위원회, 『시인의 고향, 해남시문학사』(문학들, 2010)
  • 『해남군지』상·중·하(해남군지편찬위원회, 2015)
  • 「2018·2019 해남군 기본현황」(해남군청 내부자료)
  • 한국예총 해남지회(http://www.hnart.org/)
  • 해남군청(http://www.haena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