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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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에 설치되었던 수군진. 갈두진(葛頭鎭)은 한반도의 최남단에 설치된 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관방은 지리적으로 취약하였으며 제주도민의 진휼(賑恤)을 위한 목적이 강하였다. 당시 제주도민 진휼곡은 나주의 제민창에 보관하였다가 제주도 해산물과 바꾸어 가도록 하였으나 뱃길이 멀어 가까운 갈두로 변경하였던 것이다. 갈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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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문영(姜文永)[1915~1947]은 해남군 북평면 흥촌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독서회 활동 등을 통해 독립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하였다. 강문영은 해남공립보통학교[현 해남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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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있었던 조선 전기 포구. 조선 초기 어란(於蘭)은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 인근이다. 수군의 병선이 옮겨가자 삼촌포의 어란은 고어란(古於蘭)이 되었다. 고어란에는 병선들이 배치되어 해상에서 근무하였으므로 육지부에서 유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구룡포들에서 청자편과 백자편이 출토된다. 1988년 고천암방조제 준공으로 바닷물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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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광주은행 산하 지점. 광주은행 해남지점은 금융 업무의 지역적 분산과 지역 경제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된 광주은행의 지점이며, 해남 지역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광주은행은 1968년 9월 지방 금융 활성화를 목적으로 세워졌다. 금융 업무의 지역적 분산과 지역 경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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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금풍리(金豊里)에는 자연마을로 명금(明今)마을과 신풍(新豊)마을이 있다. 명금과 신풍의 이름을 따서 금풍리(金豊里)라고 하였다. 명금마을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성산이 거문고 형태이며, 바로 옆 옥녀봉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고 있는 형세라 하여 명금(鳴琴)이라 하였다가 일제강점기에 명금(明今)으로 바뀌었다. 신풍마을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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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금풍리(金豊里)에는 자연마을로 명금(明今)마을과 신풍(新豊)마을이 있다. 명금과 신풍의 이름을 따서 금풍리(金豊里)라고 하였다. 명금마을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성산이 거문고 형태이며, 바로 옆 옥녀봉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고 있는 형세라 하여 명금(鳴琴)이라 하였다가 일제강점기에 명금(明今)으로 바뀌었다. 신풍마을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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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있었던 역. 남리역(南利驛)은 지금의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설치되었던 역이다.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역에 소속되었다. 고려 말 왜구로 인하여 폐지되었다가 조선시대 들어와 다시 복설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진도군에서 출발하여 벽파진~삼지원~남리역~적량원~만희원~맹진~별진역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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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과 해남읍 신안리에 있었던 역 녹산역(淥山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산면에, 조선시대에는 해남읍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녹산역을 출발하여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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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해남에서 일어났던 달량진왜변과 임진왜란의 극복 과정. 해남의 역사를 조명할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는 수군제도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쾌거이다. 전자는 16세기 중반 제승방략제라는 전쟁 방어 체제의 배경이 된 1555년[을묘년]의 달량진왜변이고, 후자는 정유재란의 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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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해남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해남현(海南縣)」 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04~1866]가 1861년(철종 12) 22첩으로 나누어 만든 목판본 조선 지도 중 해남현 부분이다. 1864년에는 일부분을 수정하여 재판하였으며, 목판의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숭실대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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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양화리와 목포시 달동 달리도 사이의 물길. 지금의 해남 구 목포구(木浦口) 등대 인근에 있는 대진(大津)은 나주와 영암 등 영산강 인근 지역으로 진입하려는 배들이 통과하는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물길이 세어 영산강으로 진입하려는 배들이 통과하기 어려웠으나, 현재는 영산강 하굿둑 등 간척으로 인하여 물길이 느려졌다. 옛날 세곡을 실은 배가 대나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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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드록 만든 비교적 큰길. 해남군은 해남읍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강진 21.2㎞, 장흥 29.3㎞, 서쪽으로 진도 48.8㎞, 남쪽으로 완도 49㎞, 북서쪽으로 목포 54㎞, 북쪽으로 영암, 나주[영산포]를 거쳐 광주까지 92.4㎞ 거리에 위치한다. 해남군에는 광주, 목포 등 전라남도 주요 시군과 해남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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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외리(東外里)는 우수영성(右水營城)의 동문 밖에 있어서 ‘동문밖’, ‘동밖’ 또는 ‘동외’라 불렀다. 본래 해남군 문외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외리, 일정리, 신창리, 난대리, 남외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동외마을, 동영마을, 동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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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말을 방목하기 기르기 위하여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한 장소. 조선 초기에 중앙 정부는 말을 길러 국용을 조달하고 동시에 중국과 말 무역을 하였다. 전라도는 겨울철에도 춥지 않아서 목마용 풀을 얻기에 용이하였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다 제주도와 인접하여 전라도는 일찍부터 목장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특히 진도와 같이 물과 풀이 풍부한 섬과 바닷가 연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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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민간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하여 전승되는 놀이. 민속놀이는 민간에서 전승되는 놀이를 뜻한다. 놀이는 인간의 모든 신체적·정신적 활동 가운데 생존과 관련된 활동을 제외한 것으로, 보통은 일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이지만 전통사회에서는 노동과 의례와 놀이가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전승되는 민속놀이는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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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민간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하여 전승되는 놀이. 민속놀이는 민간에서 전승되는 놀이를 뜻한다. 놀이는 인간의 모든 신체적·정신적 활동 가운데 생존과 관련된 활동을 제외한 것으로, 보통은 일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이지만 전통사회에서는 노동과 의례와 놀이가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전승되는 민속놀이는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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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밀려드는 조수의 해를 막기 위하여 전라남도 해남군에 설치된 제방. 해남 지역의 간척 면적은 250㎢이며, 대부분의 큰 간척은 영산강 종합 개발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영산강 3-1지구인 영암방조제, 영산강 3-2 지구인 금호방조제가 대표적이다. 그 외 해남 지역 방조제로 고천암방조제, 관동방조제. 금호방조제, 영암방조제 등이 있다. 방조제는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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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밀려드는 조수의 해를 막기 위하여 전라남도 해남군에 설치된 제방. 해남 지역의 간척 면적은 250㎢이며, 대부분의 큰 간척은 영산강 종합 개발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영산강 3-1지구인 영암방조제, 영산강 3-2 지구인 금호방조제가 대표적이다. 그 외 해남 지역 방조제로 고천암방조제, 관동방조제. 금호방조제, 영암방조제 등이 있다. 방조제는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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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현감을 역임한 무신. 변협(邊協)[1528~1590]은 해남현감 재임 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군민들과 함께 해남읍성을 사수하였으며, 이후 전라우방어사(全羅右防禦使)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하였다. 변협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화중(和中), 호는 남호(南湖)이다. 아버지는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변계윤(邊季胤)이며, 어머니는 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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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성진리에 있었던 역. 별진역(別珍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남리역에서 맹진을 통하여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해남의 녹산역에서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는 역이다. 별진역은 지금의 해남군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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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삼촌포(三村浦)는 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인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으며, 조선 초기 기록에 보이는 오래된 포구이다. 해진군(海珍郡)의 관문이자 병선들의 정박처였고, 제주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항구였다. 진도가 섬으로 옮겨 간 이후에는 진도군과 소통로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해남에 들어와 있던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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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석교리(石橋里)는 마을 앞에 돌다리가 있어 ‘독다리’, ‘독나루’, ‘석교’라 불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덕리, 일정리, 신창리, 석교리와 사교리·충평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석교마을, 심동마을, 신창마을, 일정마을, 목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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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에 있는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의 암자. 성도암은 백여 년 전에는 위봉 봉우리에 위치한 대흥사 선승들의 기도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 제주양씨 집안의 부인이 해남군 동촌리로 시집을 와서 아들을 낳고자 매일 성도암에서 기도를 하자, 시아버지가 안타깝게 여기고 성도암을 사비로 사서 대웅전을 지었다. 성도암은 여순 반란 사건을 거치면서 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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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인근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병선이나 수군이 머무르던 진지. 조선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건국 초기부터 어란과 달량 그리고 주량에 병선이 배치되었다. 1440년(세종 22)에는 전라수영이 목포의 당포에서 해남우수영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해남은 전라도 바다를 관장하는 수군진(水軍鎭)의 본영이 되었다. 1479(성종 10)년에는 전라좌수영이 여수로 분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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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만 일대에 있었다고 비정되는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은 삼한시대 한반도 중서부에 존재하였던 연맹체이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모두 54개의 소국이 존재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미국(新彌國)이다. 마한 지역에는 기원전 2세기 말~기원전 1세기 무렵 철기 문화 단계에 이르러 원시적인 공동체가 붕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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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법정리. 신흥리(新興里)는 당현(堂峴), 땅고개라고 불렸다가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신흥(新興)이라 하였다. 신흥리는 본래 진도군 삼촌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에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당리와 상금리, 향리와 녹산면의 해남리와 성산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삼산면 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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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서상리, 동외리 일대의 호국혼이 담긴 우수영마을 이야기. 우수영의 지명은 조선시대에 설치된 수군진 ‘전라우수영’에서 유래하고, 문내면(門內面)의 지명은 전라우수영의 외성(外城)으로 원문(轅門)의 안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다. 우수영은 한반도의 서남단 모서리, 즉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지점, 화원반도의 중앙에 있다. 화원반도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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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개성이나 한양을 연결하였던 교통 및 통신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이동하거나 공문을 전달할 때 마필(馬匹)이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보던 곳을 역(驛)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숙소를 원(院)이라 하였다. 이를 합하여 역원(驛院)이라 칭한다. 이칭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3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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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예락리(曳洛里)는 마을의 형국이 그물질하는 모습이라 하여 예락(曳洛)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송리, 서외리, 동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예락마을, 동리마을, 양정마을, 임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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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이자 실학자. 오달운(吳達運)[1700~1748]은 18세기 초에 진보적인 사상을 품고 사회개혁 사상을 제시한 실학의 선각자이다. 오달운의 자는 백통(伯通), 호는 해금(海錦),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지금의 해남군 계곡면 용지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오명승(吳名勝)이며, 할아버지는 오필주(吳弼周)이다. 어머니는 최남극(崔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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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흥사를 중창한 해남 출신 승려. 완호(玩虎) 윤우(倫佑)[1758~1826]의 자는 삼여(三如)이다. 완호는 법호이고 윤우는 법명이다. 아버지는 김시택(金時澤)이다. 1758년(영조 34) 해남에서 태어나 13세에 대둔사(大芚寺)[대흥사의 옛 이름]에 출가하였고, 17세에 서일(瑞日)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백련법사(白蓮法師)에게 교학을 익히고, 연담(蓮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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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뒤 대덕산에 용바위가 있어 ‘용바우’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한자화하여 용암(龍岩)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문리, 원동리, 용암리와 석교리, 사교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문내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용암마을, 원동마을, 신흥마을, 사교마을,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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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에서 시어머니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아 한식 된장의 명인이 된 한안자의 동국장 이야기. 우리나라 장(醬)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뜻으로 선장양(善醬釀)이라고 하였고, 고구려 안악3호분 고분벽화 등에는 장을 보관한 듯한 옹기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데에서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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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누리, 누리동이라 불렸다가, 마을 형태가 달처럼 생겨서 월평(月坪)으로 바뀌었다.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산리, 해석리, 기평리, 덕산리, 팔산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월평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월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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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0년 사이 해남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해남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연안 지역의 어업에 대한 경제적 침탈이 많은 곳으로 타 지역에 비해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심하였다. 내륙에서 활동한 의병들이 해남 지역까지 내려와 의병 활동을 하였으며, 지역 주민들도 적극 의병 활동에 가담하였다. 대표적인 의병은 정석진(鄭錫振), 심남일(沈南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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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 주민들이 입어 왔던 의복과 이와 관련한 생활 문화. 의생활은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나 생업 환경, 문화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해남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나일론이 나오고 화학섬유가 개발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는 명주, 모시, 삼베, 무명을 직접 짜서 가정에서 손수 옷을 만들어 입었다. 여러 직물 중에서도 해남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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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 주민들이 입어 왔던 의복과 이와 관련한 생활 문화. 의생활은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나 생업 환경, 문화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해남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나일론이 나오고 화학섬유가 개발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는 명주, 모시, 삼베, 무명을 직접 짜서 가정에서 손수 옷을 만들어 입었다. 여러 직물 중에서도 해남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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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지형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누에머리’를 뜻하는 잠두리(蠶頭里)로 불렸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청계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만년리, 월하리 일부가 병합되어 해남군 계곡면 잠두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잠두마을, 만년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잠두마을의 입향조는 1770년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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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공적 권력의 획득, 유지, 행사와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제반 활동. 광복과 더불어 건국 동맹을 모체로 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치안의 확보, 건국 사업을 위한 민족 역량의 일원화, 교통·통신·금융·식량 등의 대책 등에 당면 목표를 두고 각 지방의 지부 조직이 만들어졌다. 1945년 9월 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전국인민대표자회를 열고 국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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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해남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시대 해남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행정 편제, 교통·통신, 지방 군제와 임진왜란 그리고 유교문화·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아울러 해남의 목마장 운영에 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였다. 해남현(海南縣)은 1409년(태종 9)에 진도군과 합쳐 해진현(海珍縣)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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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하며 대흥사 13대 종사를 지낸 승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속명은 장의순(張意恂), 자는 중부(中孚), 법호는 초의,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한 대흥사 13대 종사이며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초의선사는 1800년(정조 24) 나주 운흥사(雲興寺)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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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하며 대흥사 13대 종사를 지낸 승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속명은 장의순(張意恂), 자는 중부(中孚), 법호는 초의,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한 대흥사 13대 종사이며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초의선사는 1800년(정조 24) 나주 운흥사(雲興寺)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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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서 활동한 문신. 최부의 본관은 탐진(耽津)이며 자는 연연(淵淵), 호는 금남(錦南)이다. 아버지는 최택(崔澤)이고 어머니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이다. 부인은 정귀감(鄭貴瑊)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이다. 최부는 1454년(단종 2) 나주 곡강면 성지촌[현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에서 태어났다. 1470년(성종 1) 해남정씨와 혼인하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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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누정. 해월루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조선 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사객들이 바람을 기다리는 건물이다. 영암군에서는 사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남창(南倉)과 6방을 설치하였다. 해월루는 1821~1850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5칸 건물이었던 해월루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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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누정. 해월루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조선 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사객들이 바람을 기다리는 건물이다. 영암군에서는 사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남창(南倉)과 6방을 설치하였다. 해월루는 1821~1850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5칸 건물이었던 해월루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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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에 있던 전라우수영의 수군절도사 구장화가 중앙으로 올린 공문서를 편집한 책.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는 일반적인 읍지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으며, 전라우수사가 각 사안에 관해 중앙에 보낸 공문서를 편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호우수영지』는 당시 전라우수사로 재임하였던 구장화(具鏘和)가 작성하였다. 『호우수영지』는 1850년 9월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