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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59
한자 燕湖里
영어공식명칭 Yeonh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개설
연호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9.344㎢
가구수 179가구
인구[남/여] 383명[남자 181명|여자 202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연호(燕湖)의 연원으로 여흥민씨 민이달이 마을에 입향한 후에 연기(燕妓)라는 기생과, 남경사신으로 간 선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름에서 연(燕)을, 마을이 바다에 가깝다고 하여 호(湖)를 따와 연호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연호 지명은 1789년의 『호구총수(戶口總數)』 이전부터 있었다. 또 고문헌 여러 곳에 연호호수, 연기도, 연호가 보이고 있다. 일설에는 마을의 지형이 제비를 닮았다 하여 제비 연(燕)을 써서 연호라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산일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연리, 서연리, 연자리, 연호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연호마을, 연자마을, 와등마을, 청룡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연호마을은 1650년경 여흥민씨 민이달이 들어와 자리잡았고, 1700년경에 밀양박씨 박창조(朴昌祖)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연자마을은 연호리에서 광복 후 분리되었다. 1776년 동계안(洞契案)에는 마을의 이름이 안 나타나고, 1795년 연호리 동계안에서 연자동이라는 지명을 볼 수 있다. 연자마을은 1960년대 후반 간척사업 전까지는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1920년에는 연호포구가 있어서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였으나, 간척사업으로 농토가 생기면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 와등마을의 입향조는 150년 전의 밀양박씨로 전해 오나 자세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구릉지대의 황무지였으나. 차츰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청룡마을은 300년 전 왕씨(王氏)가 부인과 표류 중에 마을에 정박하여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청룡마을의 북구포는 일제강점기 경관주재소까지 있었으며, 연호포-목포 간을 운행하던 연호 선박의 기착지로 해남의 쌀과 천일염, 목화가 수출되던 서남해안의 물류 중심지였다.

[자연환경]

연호마을은 본래 삼면이 바다에 접하여 있었으나 간척으로 넓은 농토가 생겨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되었으며, 농업용수는 연호저수지를 이용한다.

[현황]

연호리(燕湖里)는 북쪽으로 산이면 예정리, 산이면 덕호리, 산이면 금송리, 산이면 노송리, 마산면 학의리, 동쪽으로 마산면 학의리, 남쪽으로 송호리, 원호리, 일신리, 서쪽으로 송호리, 산이면 예정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9.344㎢이고, 연호리, 연자리, 와등리, 청룡리의 4개 행정리에 179가구, 383명[남자 181명, 여자 2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생업은 농사이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밭작물로는 마늘과 깨, 고추를 재배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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