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65
한자 閑子里
영어공식명칭 Hanj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 개설
한자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2.071㎢
가구수 332가구
인구[남/여] 645명[남자 324명|여자 321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한자리(閑子里) 명칭이 유래한 한자마을은 자라 형태의 다섯 개 섬 가운데 가장 큰 자라섬이라 하여 ‘한자라’라 불렸다. 이것을 한자로 바꾸면서 한자라에서 크다는 뜻을 가진 ‘한’을 대(大)가 아니라 음차만 하여 한(閑)으로 쓰고, 여기에 ‘라’가 탈락되어 한자(閑子)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말엽 광동진씨가 귀향 차 내려와 한가로이 거주하였다 하여 한자(閑子)라 불렀다고도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한자내리(閑子乃里)라는 지명이 보인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정리, 산소리, 징의도와 호동리, 신흥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한자마을, 산소마을, 신정마을, 징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마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녕조씨와 김해김씨가 난을 피하여 입향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1650년 이후 도강김씨가 먼저 입향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광동진씨와 다른 성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도강김씨와 경주정씨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한자마을과 비슷한 시기에 산소마을이 형성되었다. 산소마을의 입향 유래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있다. 다만 파평윤씨와 남평문씨, 도강김씨가 거의 같은 대에 입향하였고, 이후 광산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포구였던 곳으로 만호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신정마을은 1860년 무렵에 김해김씨, 장흥고씨, 청주한씨, 진주정씨 등 네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자연환경]

간척공사가 있기 전 한자리 지역은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섬의 형태가 모두 새끼를 막 낳고 대해로 첫발을 디디는 자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본래 두 개의 섬으로 돼 있던 징의도는 1961년 신정마을과 징의마을이 제방으로 연결되었고, 1974년 큰 제방으로 작은 섬과 큰 섬이 연결되었다. 한쪽 끝은 발근포[돈이 많이 난다는 곳. 지금의 고천암]가 화산면과 연결되면서 완전히 육지가 되었다.

[현황]

한자리는 북쪽으로는 호동리, 동쪽으로 황산면 송호리, 서쪽으로 바다와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화산면 율동리고천암방조제로 인해 이어져 있다. 2018년 10월 말 현재 전체 면적은 12.071㎢이며, 총 332가구, 645명[남자 324명, 여자 32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해남군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으로 주민들은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였다. 예전에는 멸치와 깡다리[황새기], 뻘낙지가 많이 나왔고, 김 양식이 발달하였다. 신정마을은 평야가 발달하여 농지가 많으며, 만호염전에서 전통적으로 생산되는 천일염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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