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62
한자 牛項里
영어공식명칭 Uh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개설
우항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7.538㎢
가구수 119가구
인구[남/여] 262명[남자 136명|여자 126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우항이라는 명칭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을의 형세가 소가 누워 휴식을 취하는 와우형(臥牛形)이라 하고, ‘소의 목’ 부위에 해당되는 위치에 이재량이 집터를 잡은 까닭에 ‘소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로 보아 이재량의 선대에서 땅의 형국에 따라 ‘우항’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황원면의 자동리, 삼성리, 시등리, 신기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로 개설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9]에는, 화원면 전역과 더불어 황원장(黃原場)[목장]이었던 곳이고, 현으로부터 90리 떨어진 곳이었으며, 진도 감목관을 옮겼는데, 처음에는 진도에 속하였다가 뒤에 진도를 속장(屬場)으로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우항마을, 기성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우항마을은 1500년경 어씨(魚氏)와 방씨(房氏) 일가가 입향하여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 후 밀양박씨가 이주하였고, 1730년 인평대군의 4세손인 전주이씨 이명석이 진도로 귀양 중 풍랑을 만나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명석의 후손 이재량이 종정원경(宗正院卿) 참판에 오르면서 일가가 번창하였으나, 1980년대 들어 후손들이 출향하게 되었다. 우항리 뒤편의 ‘뒷개’는 우항리 주민뿐만 아니라 황산면의 북쪽에 있는 마을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다. 참판 이재량의 세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주민들은 뒷개에서 오도리[민물새우]와 어패류, 낮지 등을 잡아 소득원으로 삼았다. 1950년대 축조된 우항포구는 경제생활의 중심이었다. 금호방조제 축조 이후 바다와 관련된 생활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기성마을의 입향조는 1840년경에 입주한 밀양박씨라고 전한다. 1945년 우항 2반의 반장 강천돌이 면장 정기현에게 우항리에서 분구해 줄 것을 건의하여 1946년 기성마을로 분구되었다. 주민들이 분구를 원하였던 이유는, 면에 나가 어디 사느냐 물을 때 우항리에 산다고 하면 대개 이 참판의 일꾼으로 하대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우항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서북쪽으로는 청룡산이, 동쪽으로는 왕골재가 있다.

[현황]

우항리(牛項里)는 북쪽으로 금호호를 사이에 두고 산이면 예정리, 동쪽으로 송호리[황산면], 남쪽으로 호동리, 남리리, 연당리, 서쪽으로 관춘리, 연당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7.538㎢이고, 우항리, 기성리의 2개 행정리에 119가구, 262명[남자 136명, 여자 1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과거에는 벼, 보리, 담배 등이 주소득원이었으나 지금은 겨울배추와 고추가 주소득원이 되었다. 특용작물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다.

해남을 공룡왕국의 중심지에 부상시킨 공룡화석지와 퇴적암층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1998년 10월 17일 천연기념물 제394호로 지정된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는 원래 물에 잠겨 있던 해안이었으나 화원반도와 목포를 연결하기 위해 해안에 둑을 쌓으면서 해수면이 낮아져 드러난 대규모 화석지이다. 중생대 백악기시대에 형성된 퇴적층[약 8300만~8500만 년 전으로 추정]으로 교과서에서 배우는 퇴적 구조를 보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화석산지이다. 공룡발자국화석과 익룡발자국화석, 새발자국화석, 공룡뼈화석 등이 다양하게 발견되었고,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두 종류의 물갈퀴 새발자국과 아시아에서는 처음인 익룡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되어 익룡과 새가 같은 서식지를 공유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중생대 고생물 진화와 당시의 환경을 알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양의 지층과 특이한 퇴적 구조를 이루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1986년 2월 7일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정명식 가옥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상류주택이다. 원래는 안채와 사당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사랑채와 행랑채만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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