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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071
한자 新安里
영어공식명칭 Sin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신안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55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신안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로 개편
신안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28㎢
가구수 126가구
인구[남/여] 300명[남자 155명|여자 145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신화리(新化理)와 안국리(安局里)의 ‘신’ 자와 ‘안’ 자를 따서 신안리(新安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화리와 안국리, 해리, 고도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신안리로 개설하였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신안마을 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안마을은 해남 신안리 지석묘군의 존재로 보아 형성 시기가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입향조로는 청주김씨 진관파와 원주이씨 강릉공파가 대표적인 입향 성씨로 알려져 있다. 과거 녹산역(綠山驛)이 있어 읍을 들어오는 통제소의 역할과 함께 공문을 전달하거나 수행하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하였으나 현재는 ‘역밭’이라는 지명만 전할 뿐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신안마을은 진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자로는 진관(津館) 혹은 진관(鎭關) 등으로 불렸다. 지금 신안리의 남쪽 끝 옛 신화 지역에 선창이 있어 그 다리를 ‘선창이다리’라고 하였다. 진관은 선창과 관련한 관원(官員)의 사옥(舍屋)을 말하는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환경]

신안마을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앞에는 선창이들이 있고 뒤쪽으로는 덕음산, 우슬재, 신안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현황]

신안리(新安里)는 북쪽으로 고도리, 해리, 동쪽으로 옥천면 송산리, 남쪽으로 연동리, 서쪽으로 안동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3.28㎢이고, 신안마을 1개의 행정리에 126세대, 300명[남자 155명, 여자 14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의 주업은 농업과 축산업이다. 논농사로는 주로 벼와 보리를 재배한다. 밭농사는 콩, 깨, 마늘, 등의 양념류가 주이며, 축산업으로 소와 돼지를 기르는 농가가 있다. 마을 인근에는 일제강점기에 주민을 동원해 만든 저수지인 웃방죽, 아랫방죽, 밀가루방죽이 있다. 마을 북쪽으로 국도 제13호선이 동서로 지나고, 지방도 제806호선이 남북으로 지나 고도리와 경계에서 교차하며, 해남터널 등이 있다.

음력 정월 3일,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정자나무 밑에서 당산제를 지냈고 현재는 축소해서 당산제를 울리고 있다. 신안저수지로 올라가는 길에 고인돌 20기가 모여 있는 해남 신안리 지석묘군(新安支石墓群)[청동기시대]은 2015년 6월 29일 해남군의 향토유적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신안리 석불입상 및 석탑[고려시대]은 2015년 6월 29일 해남군의 향토유적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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