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072
한자 蓮洞里
영어공식명칭 Yeond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연동리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남연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남연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연동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55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연동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로 개편
연동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4.57㎢
가구수 200가구
인구[남/여] 390명[남자 194명|여자 196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지명총람(地名總覽)』에 의하면 연못이 있어 연못골 또는 연동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송리와 연동의 이름을 따서 남연리라 하였다가, 1949년에 연동리로 고쳤다. 한편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지금의 연동리 지역에 현일면의 조막동·백련동·죽음리가 있고 1896년(고종 33) 『해남읍지』에는 조막·연동·내죽·남송이 있어 그 사이에 백연에서 연동으로 지명 변경이 있었고 죽음리가 내죽·남송으로 분촌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막리, 내죽리, 남송리, 고도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남송과 연동의 이름을 따서 남연리라 하여 해남군 해남면 남연리로 개설되었다. 1949년 일본식 지명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해남면 남연리에서 해남면 연동리로 개칭하였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연동마을, 옥동마을, 남송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연동마을은 신라 때는 사라향(紗羅鄕), 고려시대는 옥산현(玉山縣)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해남현 현일면, 해남군 승격 이후 군일면에 속한 백련동(白蓮洞)이었다. 후에 연동으로 칭하였다. 지석묘의 존재와 지명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도강김씨가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해남윤씨 윤효정이 500여 년 전 해남읍 해리에서 이거하면서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남송마을의 속명 ‘주물’과 옥녀봉토성으로 비추어 보아 남송마을의 시작은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송마을의 입향조는 약 500년 전 여흥민씨 민희적이다. 남송마을은 주물 혹은 주촌(主村)이라고 불렸으며, 이는 주인이 사는 마을이라고 해석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당시 이름이 죽음리(竹陰里)로 나타난다. 죽정리로도 불렸다가 일제강점기 초에 남송으로 개칭하였다.

옥동마을의 입향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마을 뒷산인 성례산에 있는 성터로 보아 우씨와 지씨로 추정된다. 성터 밑에 우씨와 지씨가 자리를 잡고 살아서 각각 우사골과 지사골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옥동마을은 원래 남연리라고 불렸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막리(造幕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막을 치고 사기를 굽던 곳이라고 하여 ‘조막리’라 불렸다고 하는데,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마을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2008년 옥동이라고 개칭되었다. 옥동(玉東)은 해남의 동쪽에 위치한 보배 같은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자연환경]

덕음산(德陰山)[381.3m]과 그 줄기인 성매산·옥녀봉·호산을 잇는 선창이들의 남단을 끼고 동쪽에 연동, 남쪽에 옥동, 서쪽에 남송이 있다.

[현황]

연동리(蓮洞里)는 북쪽으로 고도리, 신안리, 동쪽으로 옥천면 송산리, 남쪽으로 삼산면 창리, 삼산면 신흥리, 삼산면 상가리, 서쪽으로 안동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4.57㎢이고, 연동리, 옥동리, 남송리의 3개 행정리에 200가구, 390명[남자 194명, 여자 1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연동마을의 주업은 농업으로 논농사로 벼와 보리 등의 곡식류를 주로 경작하고 있다. 밭작물로는 마늘, 콩, 고추, 참깨 등을 재배한다. 특용작물로 블루베리, 참다래, 녹차, 화훼 등이 있다. 옥동마을의 주업은 농업과 상업이다. 주요 작물은 쌀과 보리 등이다.

유물·유적으로는 청동기시대의 해남 연동리 지석묘군(海南蓮洞里支石墓群)이 연동마을 남쪽 구릉사면에 있다. 남송마을에는 남송 패총(南松貝塚)[철기시대], 옥녀봉 패총(玉女峰貝塚)[철기시대], 옥녀봉 유물산포지(玉女峰遺物散布地), 남송 유물산포지(南松遺物散布地)[삼국시대], 남송고분(南松古墳)[삼국시대]이 있다. 또한 남송마을에는 밀양박씨 선무공파 종가 건물과 제각, 제실인 죽음사(竹陰祠)가 있다.

1968년 12월 19일 연동리에 있는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海南尹氏綠雨堂一圓)이 사적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3호로 지정된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1354], 1987년 12월 28일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윤두서자화상(尹斗緖自畵像)」[1710],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1호로 지정된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은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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