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78
한자 佛塔
영어공식명칭 Pagoda
이칭/별칭 석탑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최인선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의 대흥사, 은적사, 청신리, 신안리 등에 건립된 불탑 7기.

[개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는 총 6기의 석탑과, 1기의 폐석탑재가 남아 있다. 대흥사에 4기, 은적사에 1기, 옥천면 청신리 1기가 건립되어 있고, 해남읍 신안리에 폐석탑재가 남아 있다.

[국가지정 불탑]

해남 지역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된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 등 2기가 전한다.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5m, 보물 제320호]은 대흥사 응진전 정면에서 약간 왼쪽에 있다. 이중기단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얹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하층 기단에는 양 우주와 탱주 2개가 모각되어 있고, 상층 기단은 양 우주와 중앙에 1개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상층 기단에 2단의 각형 받침을 조출하고, 위에 1매의 탑신석과 옥개석을 얹었다. 1층 탑신에만 양 우주와 중앙에 탱주가 모각되어 있고, 2층부터는 양 우주만 모각되어 있다. 탑신의 체감(體感)은 급격하게 줄여 안정감을 준다. 옥개석은 4단의 층급받침을 두고, 상면의 낙수면은 완만한 편이나 추녀 끝에 전각(轉角)이 급반전하여 경쾌함을 더해 주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 앙화, 보륜, 보주가 그대로 남아 있다. 시기는 통일신라 시기인 9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4.6m, 보물 제301호]은 북미륵암 경내에 있는데 신라 전형 양식을 충실하게 계승한 일반형에 속한 탑이다. 이중기단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얹은 삼층석탑이다. 하층 기단에는 양 우주와 탱주 1주가 모각되어 있고, 상층 기단에도 역시 양 우주와 중앙에 탱주 1주가 모각되어 있다. 갑석에는 1단의 탑신 받침을 조출하였는데 북쪽에만 2단이다. 탑신부는 1층을 제외하고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1매씩이다. 각 층의 탑신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탑신석이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서 폭과 높이를 줄여 안정감을 준다. 옥개석 받침은 1층과 2층은 4단이고, 3층은 3단으로 줄었다. 상륜은 노반형의 부재가 2개 겹쳐 있으나 원래의 부재인지 확실하지 않다. 제작 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전라남도 지정 불탑]

해남 지역에서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불탑으로는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 등이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4.7m,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은 북미륵암 건너편 가까운 동쪽 산등성이 주변에 산과 경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데 신라 전형 양식을 충실하게 계승한 일반형에 속한 고려시대 삼층석탑이다. 자연 암반을 지대석으로 하고 위에 단층의 기단부를 얹었다. 기단부에는 양 우주와 중앙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는데 동탑의 탱주는 사람 인자형이다. 갑석에는 2단의 각형 굄을 조출하였다. 1층 탑신은 4매이고, 나머지는 1매이며 모두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1층 탑신에 비해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서 폭과 높이를 줄여 안정감을 준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고, 상륜부는 2단의 노반과 앙화가 남아 있다. 3층 옥개석 이 상은 원래 망실되었으나 최근에 복원하였다. 시기는 10~11세기로 추정된다.

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5.8m,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6호]은 두륜산 정상부인 가련봉 아래 만일암지에 조성된 석탑이다. 이미 한 번 무너졌거나 도괴된 흔적이 1층 탑신부에 남아 있다. 원래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거친 돌로 만들어진 탑구(塔區)가 기단 외곽에 둘러져 있다. 단층 기단에 양 우주와 중앙에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갑석은 2단의 탑신 받침을 조출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모두 1석씩인데 1층 탑신에서만 가로로 2매석이 포개져 있다. 석재는 기둥 모양의 돌기가 돌출되어 있는데 원래의 탑신석인지 확실하지 않다. 탑신석은 1층에서 5층까지 나름대로 체감되었는데 옆으로 약간 기운 것 같고 양 우주가 희미하게 조출되어 있다. 옥개석은 1·2·3층은 둔중하며 4·5층은 평박하여 전각에 이르러 반전을 이룬다. 층급받침은 1층에서 2층까지는 5단이고, 3층부터는 4단으로 줄었다. 상륜은 석등의 상대석과 옥개석을 상륜으로 대신 올렸다.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따르면서도 튼튼한 기단부의 구성, 초층 탑신을 세로로 세워서 결구한 기법, 옥개석 상면 네 귀퉁이의 우동마루를 도드라지게 한 기법이 옛 백제 석탑의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건립 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기타 불탑]

해남 지역의 기타 불탑으로는 해남 탑동 오층석탑, 은적사 삼층석탑, 신안리 미륵사 폐석탑 등 3기이다.

해남 탑동 오층석탑[4.6m,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4호]은 탑동마을 뒤 매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기슭에 있다. 탑동마을은 고려 충선왕 때 창건된 덕용사(德龍寺)라는 사찰이 존재했다고 마을에 구전되고 있으며, 또한 대둔사지에 용혈암(龍穴庵)은 대둔사 북쪽 덕용산에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고, 석탑 주변에 옥개석 조각들과 많은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어 절터[사지(寺址)]임을 알 수 있으나, 정확한 창건이나 폐사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한 오층석탑이다. 현재 4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다. 이중의 기단 위에 5층을 이룬 탑으로 보인다. 하층 기단에는 양 우주와 2매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고, 상층 기단에는 양 우주와 중앙에 1매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갑석 위에는 2단의 각형 굄이 조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석으로 이루어진 듯하나 양쪽 2매석은 유실되었다. 평박한 느낌을 주는 옥개석은 모두 1매인데 층급받침이 3층까지는 4단이고, 4층은 3단으로 줄었다. 낙수면은 중앙에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에 이르러 가벼운 반전을 보인다. 시기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은적사 삼층석탑[2.2m]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데, 각층 탑신은 모두 1매석으로 양 우주가 약하게 몰딩 되었다. 옥개석은 평박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2층 모두 3단이다. 낙수면과 전각의 경사도는 완만하고 옥개석 상부의 탑신받침은 없다. 3층 옥개석과 상륜은 망실되어 최근 보수하면서 복원하였다.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신안리 미륵사 폐석탑은 다른 부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옥개석 4매가 포개져 있다. 1층과 3층의 옥개석 층급받침은 5단이고, 3층은 4단이며, 4층은 3단이다. 각 옥개석 위로는 1단의 각형 탑신굄대가 조출되었다. 완형이 아니어서 정확하지 않지만 옥개석의 형태로 미루어 보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특징]

해남 지역의 불탑은 9세기 초반에 건립된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인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을 시원으로 하여, 고려시대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 청신리사지 오층석탑, 은적사 삼층석탑 등이 계속 조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석탑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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