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62
한자 海南大興寺
이칭/별칭 대둔사,만일암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호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2월 21일연표보기 - 해남 대흥사 사적 제50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6월 30일연표보기 - 해남 대흥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해남 대흥사 사적으로 재지정
현 소재지 해남 대흥사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지도보기
성격 사찰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개설]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있는 두륜산(頭輪山)[700m]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담당한 서남해 지역의 중심 사찰이다. 두륜산은 예로부터 ‘대듬’ 또는 ‘한듬’으로 불렸다. 그래서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하였기 때문에 본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흥사해남읍에서 남쪽으로 12㎞ 거리의 구림리 장춘동(長春洞)에 자리하고 있다. 두륜산의 여덟 봉우리[고계봉,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도솔봉,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넓은 산간분지에 있다. 넓은 산간분지에 계류(溪流)[산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를 끼고 자리 잡은 대흥사는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인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모여 만들어진 넓은 내를 끼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아홉 개 다리가 놓여 있다.

두륜산 주봉인 가련봉 서쪽 골짜기를 가르는 금강골로 흘러내린 금당천 계류 위아래 사이에 남원·북원을 마련하였다.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당우들을 자유롭게 배치한 공간 구성이 독특하다. 여러 불전을 층단식으로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일반적인 산지 가람들과는 달리 지형 조건에 맞추어 평면적으로 배치하였다.

대흥사는 북원(北院)에서부터 시작되어 해탈문과 침계루 밑을 지나는 금당천 너머 남원(南院)으로 확장되었다. 1823년(순조 23) 간행된 『대둔사지(大芚寺誌)』에서는 중관해안(中觀海眼)이 지은 『죽미기(竹迷記)』[1639]와 고기록을 언급하면서 대흥사의 옛 모습은 북원과 남원으로 나뉘어 있다고 하였다. 북원에는 대웅보전, 나한전, 시왕전, 팔상전, 칠성전, 조사전, 원통전, 수륙전, 문수전, 미타전, 침계루 등이 있으며 남원에는 극락전, 대장전, 지장전, 보현전, 약사전, 가허루, 해탈문 등의 전우방료(殿宇房寮)가 있다고 한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1811년(순조 11)에 가허루(駕虛樓)에서 난 불로 남원 일대가 화재로 탔으나 1813년에 초의선사의 스승인 완호대사(玩虎大師)와 제성대사(濟醒大師)에 의하여 천불전이 중건되었다고 한다. 『죽미기』에 의하면 남원의 주전각은 극락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극락전 자리에 천불전을 중창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흥사는 2018년 6월 30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한민국의 산사(山寺) 7곳을 한데 묶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으로 지정된 것이다. 사찰의 전체 경내가 한국불교의 개방성에 의해 형성되었고, 불교 성소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건립 경위 및 변천]

해남 대흥사(海南大興寺)는 신라 하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수되면서 17~18세기 서산종의 종찰로 선·교 양종의 대도량 역할을 하였다. 대흥사는 넓은 산간분지에 크게 네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일원, 중앙에 넓게 자리한 천불전 일원, 서산대사의 사당과 유물관이 있는 표충사 일원, 그리고 뒤편에 있는 대광명전 일원이다. 건물의 전체 배치 설정은 일정한 축의 설정 없이 각 전각들을 자유롭게 배치하였다.

1. 창건

대흥사의 창건연기를 전하고 있는 자료로는 『죽미기』, 『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 『북암기(北菴記)』가 있다. 『대둔사지』는 이들 자료를 종합한 내용과 함께 당시까지의 사찰 역사를 총정리한 중요 자료이다. 『대둔사지』는 감정에 완호 윤우, 유수(留授)에 아암 혜장, 편집에 수룡 색성·초의 의순, 교정에 기어 자홍·호의 시오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특히 권4에는 ‘대동선교고(大東禪敎攷)’라는 제명이 붙어 있는데, 윤동(尹峒)[다산의 초당 제자인 윤종심(尹鍾心)[1793-?]의 발문에 의하여 자하산방(紫霞山房)에 머물렀던 정약용(丁若鏞)이 편집한 것임을 알 수 있다.『대둔사지』에 따르면 백제 426년(구이신왕 7) 신라의 정관존자(淨觀尊者)가 ‘만일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인 「만일암고기」에는 508년(무령왕 8) 이름을 알 수 없는 선행(善行) 비구가 중건하였다고 하다. 『죽미기』는 신라 544년(진흥왕 5) 아도화상(阿度和尙)의 창건설을 전하며 자장(慈藏)과 도선(道詵)이 계속하여 중건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또한 “895년(헌강왕 11) 도선(道詵)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500개 사찰을 짓는 것이 좋겠다.”라고 상소하였는데 대흥사도 그중의 하나라는 설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대둔사지』의 자료를 모았던 혜장(惠藏)은 이들 기록이 창건자의 활동 시기로 볼 때 모두 신빙성이 없다고 보았다.

현재 사찰 내에서는 대체로 아도화상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 시점을 밝히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지금 응진전(應眞殿)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말기 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대흥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

2. 고려시대 중수

『대둔사지』에 의하면 고려 후기의 천태종 소속 고승인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의 주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천책이 대흥사 북암(北庵)에 한동안 주석하였으며 『대둔사지』를 편찬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용하던 발우가 대흥사 북암에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승려 천책이 대흥사 인근의 백련사(白蓮寺)[현 대흥사의 말사]에서 출가하여 백련사에서 장기간 주석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기록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의 앞마당에 신암(信菴)·사은(思隱)·성유(性柔) 등 세 승려의 부도(浮屠)가 있었다.”라고 하였는데 고려시대 승려이므로 대흥사가 고려 이전에 창건된 것은 확실하므로, 혜장이 주장한 신라 말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에는 아직 대규모 사찰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였다.

3. 조선시대 중수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을 보관한 이후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곳[宗統所歸之處]으로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으로 크게 변모하였다. 즉 승려 풍담(風潭)으로부터 승려 초의(草衣)에 이르기까지 13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승려 만화(萬化)로부터 승려 범해(梵海)에 이르기까지 13대강사(大講師)가 활동하였다. 13대종사 가운데 한 명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607년(선조 40) 해남의 외딴곳에 의발을 전한 서산대사의 배려 때문에 대흥사는 배불(排佛)의 강압 속에서도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1665년(현종 6) 심수(心粹)가 대웅전을 중창하였고, 1669년(현종 10) 표충사(表忠祠)를 건립하였으며, 1811년 천불전이 불타자, 1813년 완호와 제성이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30본말사법 제도 아래에서 44개의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되었다가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활동 사항]

1992년 일지암이 해남군의 후원으로 개최한 '초의문화제'는 전통을 통해 현대 한국불교의 위상과 우리 차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특히 초의선사의 차정신은 불교와 접목하여 한국불교를 전하는 중요한 축이 되었다.

정기 법회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 일요법회가 있다. 신도회는 6개가 구성되었으며, 500여 명의 인원이 사찰의 불사와 법회 지원봉사를 하고 있다. 매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서산대제 및 나라 사랑을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이 외에 대흥사에서는 디디고 템플스테이와 불교대학과 불교대학원[경전반]을 운영하고 있다. 디디고 템플스테이는 1박 2일 자율형[상시], 1박 2일 주말 체험형, 2박 3일 특별 체험형이 있다. 세부 프로그램으로는 요가 명상, 숲속 걷기, 만다라 심리 치료, 108배, 사찰 안내, 나의 감정 찾기, 예불 시간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해남불교대학(원)은 1999년 2월에 설립하여 2016년까지 졸업생 1,000명을 배출하였다. 불교대학과 불교대학원[경전반]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9시에 수업이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2018년 현재 거주하는 승려는 20여 명이고, 신도 수는 1만여 명이다. 대흥사는 절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당우들을 배치하였다. 현재 북원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청운당이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종무소 등이 배치되어 있다. 남원의 오른편에는 서산대사의 사우인 표충사와 그 부속건물인 비각, 조사전, 의중당, 강례재, 명의재, 그리고 최근 증축·개축한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표충사 뒤편에는 대광명전과 보련각, 그리고 요사채로 이루어진 대광명전이 위치하여 또 다른 별원(別院)을 형성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

산내에 있는 주요 암자는 일지암(一枝庵), 만일암지, 진불암(眞佛庵), 북미륵암(北彌勒庵), 남미륵암(南彌勒庵), 청신암이 있으며, 서산대사 청허당을 비롯한 부도 56기와 탑비 17기가 모셔져 있는 부도전이 있다.

문화재로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海南大興寺北彌勒庵磨崖如來坐像)[국보 제308호, 2005년 9월 28일 지정]과 탑산사명동종(塔山寺銘銅鐘)[보물 제88호, 1963년 1월 21일 지정]·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海南大興寺北彌勒庵三層石塔)[보물 제301호, 1963년 1월 21일 지정]·해남 대흥사 삼층석탑(海南大興寺三層石塔)[보물 제320호, 1963년 1월 21일 지정]·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海南大興寺西山大師塔)[보물 제1347호, 2002년 9월 25일 지정]·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海南大興寺西山大師遺物)[보물 제1357호]·『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西山大師行草精選四家錄)』[보물 제 1667호, 2011년 10월 25일 지정]·해남 대흥사 천불전(海南大興寺千佛殿)[보물 제1807호, 2013년 8월 5일 지정]·해남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海南大興寺金銅觀音菩薩坐像)[보물 제1547호, 2008년 3월 12일 지정]·「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海南大興寺靈山會掛佛幀)」[보물 제1552호, 2008년 3월 12일 지정] 등이 있고, 시도 유형문화재로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海南大興司大雄寶殿)[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 2008년 9월 19일 지정]·대흥사 천불상(大興寺千佛像)[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 1974년 9월 24일 지정]·대흥사 용화당(大興寺龍華堂)[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 1982년 10월 15일 지정]·대흥사 대광명전(大興寺大光明殿)[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4호, 1982년 10월 15일 지정]·「대흥사 관음보살도(大興寺觀音菩薩圖)」[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9호, 1991년 7월 19일 지정]·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海南大興寺晩日庵址五層石塔)[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6호, 2004년 2월 13일 지정]·표충사(表忠祠)[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 1976년 9월 30일 지정]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은 해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73호, 1966년 1월 1일 지정]가 있다. 두륜산 명승은 능허대(凌虛臺)·백운대(白雲臺)·구름다리·학사대(學射臺)·대장대(大藏臺)·금강굴 등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 받아 대흥사 전체가 2009년 12월 9일 명승 제66호 두륜산 대흥사 일원,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8호 해남 대흥사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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