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26
한자 美也里
영어공식명칭 Miy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야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야리 개설
미야리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야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2㎢
가구수 226가구
인구[남/여] 413명[남자 196명|여자 217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해남군 은소면에 속한 독야전(禿也田)으로 나와 있다. 미야마을 경주정씨 집안 호구단자에도 은소면 독야지(禿也只)로 나타나 ‘독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62년 마을의 풍속이 아름답다 하여 민둥산을 뜻하는 독(禿) 자 대신 아름다울 미(美) 자를 써 미야(美也)라 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은소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원리, 미학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미야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미야마을, 강남마을, 영평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미야마을은 1627년 사화를 피하여 송지면 대죽리에 정착하였던 경주정씨 정진의 증손 정대흥(鄭大興)이 미야리로 넘어와 살았다고 하며, 일설에는 경주정씨가 입향하기 전에 배씨, 백씨, 유씨 등이 살았다고 한다. 강남마을은 1960년대에 미야마을과 분리되었으며, 1918년 우근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이 많은 사람들이 간척지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영평마을은 약 4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입향조는 경주정씨 정종순(鄭宗順)이 강진에서 내려와 정착하였다는 설과 1762년 임오사화 때 경주정씨 정진의 4대손 정동근(鄭東懃)이 터를 잡고 살았다는 설이 있다.

[자연환경]

미야리(美也里)의 위쪽으로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 간척지로 마을의 중앙에는 미야지가 있어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1918년 우근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 마을 앞에는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방조제로 형성된 농경지를 ‘개들’이라 부르고 있다.

[현황]

미야리는 북쪽으로 가차리, 동쪽으로 해원리, 남쪽으로 산정리, 서쪽으로 우근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3.2㎢이며, 미야리, 강남리, 영평리의 3개 행정리에 226가구, 413명[남자 196명, 여자 21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미야리 서쪽에 남북 방향으로 국도 제77호선이 지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로 마늘, 양파, 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 안에는 송지중학교와 송지119안전센터가 있다. 1998년에 마을회관을 지었으며, 2009년 5월 9일 마을 입구 도로변에 ‘마을 유래 전통비’를 세웠다.

마을 안에는 보호수 두 그루가 있다. 보호수 한 그루의 수종은 팽나무로 수령은 약 200년이며 1982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지정번호: 15-14-5-1]. 또 다른 보호수는 수령 약 300년의 해송이며, 1982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지정번호: 15-14-5-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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