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23
한자 加次里
영어공식명칭 Gach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가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가차리 개설
가차리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가차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2.8㎢
가구수 181가구
인구[남/여] 343명[남자 161명|여자 182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앞이 배 모양이고 뒤는 학이 나는 전선후비학(全船後飛鶴) 형국으로, 배의 앞이 멍에 모양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에 멍에 가(駕) 를 쓰고, 배를 차에 비유한 수레 차(車)를 써서 마을 이름을 가차(駕車)라 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한자 표기를 ‘가차(駕車)’로 기록한 문헌은 찾아볼 수 없다.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가차내(加次乃)로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내리, 송암리와 은소면의 항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가차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가차마을, 송암마을, 부평마을, 화내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차마을의 입향조는 경주이씨 이홍서(李弘緖)로 1600년쯤 충북 청원군 미암면 수락동에서 청원군수로 있다가 부인 서산유씨와 함께 내려와 정착하였다. 가차마을과 화내마을은 이홍서를 입향조로 모시고 있다. 송암마을은 바닷가에 연한 포구 마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백포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부평마을의 입향조는 18세기 초 완도에 살다 정착한 제주고씨 고부평이라고 전한다.

[자연환경]

동쪽에서 서로 달마산에서 연원한 송지천이 가차평야를 적시고 있으며, 북으로 백공산이, 서쪽으로는 농경지와 천일염전이 있다. 멀리 만호바다가 펼쳐져 있다.

[현황]

가차리(加次里)는 북쪽으로 현산면 백포리, 동쪽으로 군곡리, 남쪽으로 미야리, 서쪽으로 학가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2.8㎢이며, 가차리, 송암리, 부평리, 화내리의 4개 행정리에 181가구, 343명[남자 161명, 여자 18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 특작물은 마늘이다. 마을 중앙에 화내리사무소가 있다. 마을 서쪽으로 국도 제77호선이 지나간다. 가차리에는 서울상회땅끝염전, 서울염전, 송암염전 등이 있으며, 학가마을은 굴과 꼬막을 채취하고 김 양식을 한다. 동쪽에 있는 가차들은 1930년 백포만방조제가 생기면서 형성된 간척지이다. 옛 송지천에는 민물새우와 가재, 참게, 송사리 등이 많이 서식하여 이것을 먹이로 하는 학이 수천 마리 날아들었다.

문화유적으로는 화내 지석묘군(禾內支石墓群)이 있다. 가차리 화내마을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평지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군집 방향은 동서로 1열을 이루고, 다른 1기는 대형으로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다. 또한 화내 패총(禾內貝塚)이 있다. 화내마을의 남쪽 구릉 말단부에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유물은 패각과 경질 민무늬토기편, 회청색 경질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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