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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075
한자 內四里
영어공식명칭 Naesa-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내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내사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내사리에서 부호도가 분리되어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부호리가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55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내사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내사리로 개편
내사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내사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7.97㎢
가구수 157가구
인구[남/여] 287명[남자 147명|여자 140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내사리(內四里)는 월교마을, 기동마을, 장화마을, 신리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교마을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98]에는 두정리(斗井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정리는 말[斗]만한 우물[井]이 있어 붙여진 것이라고 하나, ‘마루[산마루]’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본다. 즉, 산마루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마루물[몰]’이라고 하였던 것이 한자화 과정에서 ‘마루→말→두(斗)’가 된 것으로 보인다. 기동마을은 풍수지리상 소의 구시, 구유처럼 생겨서 사구시라 불리었다고 전한다. 장활마을은 평택임씨 임경천이 마을에 터를 잡아 어른이 살 만한 땅이라 하여 장활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신리마을은 차우, 채루(采樓), 채일호라고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리(新里)라고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군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정리·기동리·장활리·신리·부호도를 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내사리로 개설되었다. 1949년 해남면 내사리에서 부호도가 분리되어 해남군 해남면 부호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내사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월교마을, 기동마을, 장활마을, 신리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교마을의 형성은 대략 400년 전 쯤으로 추정된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두정리였다가 세정리(世井里)로 개칭되었다가, 이후 월교(月橋)로 바뀌었다. 정확한 입향조는 알 수 없으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광주전남기원』의 제2장 ‘전주이씨 600년 정착사’에 따르면 “경녕군(敬寧君)의 증손 파릉군(巴陵君) 이경(李璥)은 1520년 조광조(趙光祖)를 변호하는 상소 건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1538년에 해배되어 귀향하였다. 그 후 병자호란 때 경녕군 증손 서원군(西原君)의 손자 이당(李鏜)이 큰할아버지 파릉군의 적소(謫所)였던 인연을 찾아 해남읍 월교리로 피란하였다가 돌아가지 않고 정착하여 13대를 내려오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월교리는 전주이씨 경녕군파와 인연이 있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기동마을은 약 200년 전 쯤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피해온 사람들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도 전한다. 입향조는 고씨로 마을에 무덤이 있다. 그 밖에 화산면 신풍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이씨가 입향조라는 설이 있으며, 그 전에 안씨가 살았다고도 전한다. 1950년 행정구역 변화로 지금의 기동마을이 형성되었다. 장활마을은 『호구총수』의 기록에 장활리(長活里)라는 마을이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200여 년 전 신리에서 분리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행정리로는 1945년 해방 이후 분리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임경천이다. 평택임씨 임경천의 선대가 현산면 고현에서 신리로 이거하였고, 다시 임경천이 신리에서 분가하여 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신리마을은 대략 400~500년 전경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입향조는 영양천씨(潁陽千氏)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해남읍 해리에서 살던 무안박씨 종손이 들어와 살았다.

[자연환경]

월교마을은 월암산과 안산, 동쪽으로 형제봉이 둘러싸고 있다. 기동마을은 형제봉 또는 가메봉이라 불리는 산에 둘러싸여 있다. 장활마을은 큰산, 까마구산, 장성산 등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신리마을은 월암봉을 주산으로 하고 있으며, 해남천, 남천천이 앞으로 흐른다.

[현황]

내사리(內四里)는 북쪽으로 복평리, 황산면 원호리, 동쪽으로 남천리, 삼산면 봉학리, 남쪽으로 화산면 연곡리, 화산면 금풍리, 서쪽으로 고천암호 맞은편으로 황산면 한자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7.97㎢이고, 월교리, 기동리, 장활리, 신리의 3개 행정리에 157가구, 287명[남자 147명, 여자 14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19세기 옹기요지(甕器窯址)와 경주정씨 효열문(慶州鄭氏孝烈門) 장활 정려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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