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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063
한자 海里
영어공식명칭 Ha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해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55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해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로 개편
해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7.1㎢
가구수 3,078가구
인구[남/여] 7,633명[남자 3,669명|여자 3,964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만조 때면 바닷물이 해남천(海南川)을 거슬러 올라왔다 하여 본래 ‘갯몰’, ‘바댓몰’이라고 불렸다. 한자식 지명에 따라 해리(海里)로 개칭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군일면 지역에 속하여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리와 신교리·동외리·천변리의 각 일부를 붙여 해남군 해남면 해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해리로 개편되었다.

해리는 현재 해리마을과 성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해리마을의 입향조로 초계정씨의 사위인 민중건과 유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전하나,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조선시대 초 이부상서를 지낸 초계정씨 정원기 또는 정윤기가 입향조라고도 한다. 관련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입향조를 알기는 어렵다. 성동마을은 해리마을에서 분리되었다. 본래 해리는 고려 옥산현의 지역으로 영암 땅이었는데, 조선 1437년에 해남현의 치읍에 딸린 땅이 되었고, 『호구총수(戶口總數)』[1789] 기록에는 해리와 관동리로 나뉘어 현일면 혹은 군일면에 속하여 있었다. 그 후 해리와 관동리가 어느 시기에 합하여졌다가, 1920년경 해남천 남쪽을 신해리, 북쪽을 해리라고 하였다. 옛 관동리 지역인 신해리는 해방 후에 성동마을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본시 객관[객사]의 동쪽이라 관동이라 칭하였으나 객관은 없어지고 해남읍성의 일부만 남아 있어 그 성의 동쪽이란 의미로 성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해리는 북으로 금강산(金剛山)[488m]과 접하고, 동으로는 우슬재와 금강저수지가 위치하며 마을 내에는 해남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금강골에서 발원한 냇물이 흐르고, 명산인 금강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서 경관이 수려하여 배산임수를 갖춘 명당으로 꼽힌다.

[현황]

해리(海里)는 북쪽으로 마산면 장촌리, 옥천면 신계리, 동쪽으로 옥천면 영신리, 남쪽으로 신안리, 서쪽으로 구교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7.1㎢이고, 해리, 성동리의 2개 행정리에 3,078가구, 7,633명[남자 3,669명, 여자 3,96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업은 농업이다. 논농사의 주요 작물은 벼와 보리 등 곡류이며, 수리시설로는 1957년에 만들어진 금강저수지가 있다. 경지정리는 1980년대에 이루어졌다. 밭농사로는 고추, 깨, 마늘, 등의 양념류를 주로 재배하고 있으며, 상업은 해남종합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해남우체국, 전남해남경찰서, 해남소방서, 해남우석병원, 해남평생학습관 등이 있다. 1911년 9월 개교하여 100년이 넘은 해남동초등학교가 있다. 남쪽 끝으로 국도 제13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여흥민씨미산서원무안박씨의 제각인 부춘재, 평안신씨의 영모재, 순천김씨의 제각 등이 남아 있다. 금강산성(金剛山城)[고려 이전 추정]은 해남읍 해리 금강산 정상부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며, 해남군 향토유적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금강 봉수지(金剛烽燧址)금강산 정상에 있다. 해리 금강저수지 옆에는 해남육현을 모신 해촌서원(海村書院)이 있다. 1991년 해남읍 구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건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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