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730
한자 金南柱
영어공식명칭 Kim Namjo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46년 10월 16일연표보기 - 김남주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64년 - 김남주 광주제일고등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69년 - 김남주 전남대학교 영문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김남주 반유신투쟁으로 8개월간 투옥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김남주 남조선민족해방전선 활동 혐의로 투옥
활동 시기/일시 1984년 - 김남주 시집 『진혼가』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87년 - 김남주 시집 『나의 칼 나의 피』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88년 - 김남주 시집 『조국은 하나다』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90년 - 김남주 『학살』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김남주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 제6회 단재상 문학 부문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93년 - 김남주 제3회 윤상원문학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94년 02월 13일연표보기 - 김남주 사망
추모 시기/일시 매년 10월 - 김남주문학제 개최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광주광역시
학교|수학지 삼화국민학교[현 삼산초등학교]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고산로 586[충리 97-130]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해남중학교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중앙1로 225[남외리 4]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광주제일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237번길 33[누문동 144]
학교|수학지 전남대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
활동지 광주광역시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산35]
성격 시인
성별

[정의]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저항시인.

[개설]

김남주(金南柱)[1946~1994]는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이자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 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활동 사항]

김남주는1946년 10월 16일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아버지 김봉수와 어머니 문일님 사이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삼화국민학교와 해남중학교를 거쳐 1964년 당시 명문으로 손꼽히던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하였다. 1969년 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시절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 교련 반대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김남주가 우리 사회의 현실에 본격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문학과 사회과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당시 김남주에게 특히 영향을 주었던 시들은 영문으로 읽었던 푸시킨, 레르몬토프, 네크라소프 같은 러시아 시인들의 저항시들과 파블로 네루다의 시였다.

1972년 10월 유신 체제를 위한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신헌법이 확립되자, 김남주는 친구 이강과 함께 전국 최초의 반유신 지하신문 『함성』을 제작하여 광주 시내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배포하였다. 1973년에는 전국적인 반유신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지하신문 『고발』을 제작하여 배포하다가 구속되어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으로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 사건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제적당하였다.

김남주는 출옥 후 1974년 해남으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그해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감옥 체험과 농촌 현실을 노래한 「진혼가」 등 8편의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976년에는 『장길산』을 집필하기 위해 해남에 내려와 있던 소설가 황석영과 교우하면서 1977년 해남농민회를 결성하였고, 광주로 나와 민중문화연구소를 개설하는 등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4일, 80명의 동지와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투옥되었다. 1980년 12월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옥중에서 교도관 몰래 수많은 옥중시를 써서 극비리에 유출하였다.

김남주의 옥중시는 1980년대 우리 사회 변혁운동에 일대 도화선이 되었으며, 1980년대 한국 시의 지평을 확대하고 한 차원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김남주가 감옥에서 쓴 시들은 당시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가 되었고, 노래패는 김남주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김남주의 시는 가장 선동적인 격문이었고 가장 투쟁적인 노래였다. 김남주가 남긴 510여 편의 시 가운데 360여 편이 옥중에서 쓴 시이다.

김남주는 1988년 12월 21일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되었지만 이후 옥중투쟁에서 얻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부인 박광숙과 아들 김토일을 남겨 둔 채 1994년 2월 13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남주의 시집으로는 『진혼가』(1984), 『나의 칼 나의 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솔직히 말하자』(1989), 『사상의 거처』(1991), 『이 좋은 세상에』(1992),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1995) 등이 있다. 시전집으로는 『사랑의 무기』(1989), 『학살』(1990),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1991), 『저 창살에 햇살이』(1992), 『옛마을 지나며』(1999), 『꽃 속에 피가 흐른다』(2004) 등과 『김남주 시전집』(2014)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시와 혁명』(1991), 『김남주 산문전집』(2015)과 번역서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1978),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 『아타 트롤』(1991), 『은박지에 새긴 사랑』(1995),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95) 등이 있다.

[묘소]

김남주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산35]의 국립5·18민주묘지 내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남주는 1991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1991년 제6회 단재상 문학 부문과 1993년 제3회 윤상원문화상, 1994년 제4회 민족예술상, 2004년 제2회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해남군에서는 매년 10월 김남주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김남주문학제를 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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