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38
한자 海南龍頭里古墳
영어공식명칭 Haenam Yongduri Ancient Tomb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창리 578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재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6세기 중반 - 해남 용두리 고분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10월 7일~11월 25일 - 해남 용두리 고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88년 12월 21일연표보기 - 해남 용두리 고분 전라남도 기념물 제121호 지정
소재지 해남 용두리 고분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창리 578 지도보기
성격 고분
양식 전방후원분
크기(높이,지름) 15.2m[전방부 길이]|17m[전방부 너비]|3.5m[전방부 높이]|23.8m[후원부 길이]|20.5m[후원부 너비]|4.5m[후원부 높이]|38.2.m[전체 동쪽 길이]|41.5m[전체 서쪽 길이]|14m[전체 가운데 너비]|343㎝[돌방 길이]|217~238㎝[돌방 너비]|180㎝[돌방 높이]
관리자 전라남도 해남군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121호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마을에 있는 6세기 중반에 조성된 고분.

[개설]

해남 용두리 고분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마을에 있는 6세기 중반의 고분이다. 전방후원분으로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해남군 해남읍에서 대흥사로 가다 보면 용두마을이 나온다. 용두마을 입구에는 삼산시온교회가 있으며, 교회의 왼쪽에 해남 용두리 고분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 용두리 고분은 19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사팀에 의해 전방후원분으로 추정되었다.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분은 점점 훼손되어 갔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고분의 축조 과정 및 성격을 규명하고 향후 정비 복원의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08년 10월 7일부터 11월 25일까지 발굴 조사를 하였다. 발굴 결과 6세기 중순에 조성된 무덤으로 밝혀졌으며, 최소 3번 이상 도굴된 것도 알려졌다.

[형태]

해남 용두리 고분은 전형적인 전방후원분으로 규모는 전방부 길이가 15.2m, 너비가 17m, 높이가 3.5m이며, 후원부 길이가 23.8m, 너비 20.5m, 높이 4.5m이다. 전체 길이는 동쪽 38.2.m, 서쪽 41.5m, 가운데 잘록한 부분의 너비는 14m에 이른다. 봉분 중앙에는 무덤 주인공을 안치한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이 자리하고 있다. 돌방[石室]은 지상 1m까지 흙을 쌓고 위에 만들었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3.43m 너비 2.17~2.38m, 높이 1.80m이다.

[출토 유물]

해남 용두리 고분은 발굴 조사 결과 3차례 이상의 도굴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다. 유물은 발형기대, 개배(蓋杯)[뚜껑이 있는 접시], 대호, 유공광구소호(有孔廣口小壺)[구멍 있는 작은 항아리] 등의 토기류와 곡옥, 환옥, 금박유리옥 등의 옥류와 대도편, 철촉, 쇠손칼, 화살통부속구[盛矢具附屬具], 대금구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해남 용두리 고분은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해남 용두리 고분은 영산강 유역에서 발굴된 전방후원분으로 해남 방산리 장고봉 고분과 비교 연구에 유용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9.28 내용수정 고고학사전에 근거하여, 철도자 → 쇠손칼[鐵刀子] 화살통부속구 → 화살통부속구[盛矢具附屬具] 로 수정함
이용자 의견
고고학자 철도자 → 쇠손칼[鐵刀子]
화살통부속구 → 화살통부속구[盛矢具附屬具]
대금구 → 띠꾸미개[帶金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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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