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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148
한자 住生活
영어공식명칭 Housing Lif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지민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 영위하는 삶의 특징.

[개설]

조선시대 살림집은 거주자의 신분과 경제력에 의해 그 규모와 형식이 거의 결정되었다. 즉 주로 농업에 종사했던 일반 백성의 집과 주로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부를 누린 상류층 집으로 크게 양분되어 나타난다. 두 유형은 대체로 볏짚과 기와라는 지붕 재료가 우선 눈에 띄기 때문에 일반인도 쉽게 구별할 수 있고 건물 수나 규모 면에서도 월등히 차이가 있다. 현재 전라남도의 전통 가옥은 주로 상류층 중심으로 비교적 많이 남아 있고 일반 백성의 민가는 그 수가 극히 적다. 전라남도 해남군도 마찬가지이다.

[해남 지역 주생활 특징]

상류 주택은 주로 특정 성씨들의 활약으로 번창한 동족 마을에 종가와 함께 건립되었다. 전라남도의 돋보이는 문중 가옥을 보면 해남 지역을 근거로 한 해남윤씨(海南尹氏) 가옥, 나주시 도래마을의 풍산홍씨 문중 가옥, 장흥군 방촌의 장흥위씨 문중 가옥, 보성군 강골마을의 광주이씨 가옥 등이 있다. 상류 주택들의 가옥구조를 보면 각각의 주택이 다소 개별성은 있으나 건물 구성이나 배치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는 지배층 계급이라 할 수 있는 사대부들이 유교적 예제에 생활의 근거를 두었고 이에 맞추어 정주 공간을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별동 형식의 사랑채와 안채의 분리, 안채의 넓은 대청 구성, 신분 계급에 의한 철저한 생활영역 분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안채는 상류 주택의 골격을 세울 때 우선시되는 건물이다. 이는 조상숭배를 중시하였던 사대부들이 제례 공간으로 안채의 대청을 활용하였고 또한 생활의 모(母)공간으로도 의미를 부여했다. 안채의 기본 형태는 시기가 다소 빠를수록 ‘경(冂) 자형’의 외형을 갖추었다. 이 유형은 공통적으로 공간이 집약적이고 폐쇄적이다. 즉, 작고 아담한 중정을 중심으로 각 실들이 모아진다. 경 자형의 대표적 예로는 해남윤씨 녹우당 안채, 해남 공재 고택 안채 등이 있다. 그러나 시기가 지나면서 19~20세기에 지어진 안채는 완전한 ‘일(ㅡ)자형’ 평면으로 일관된다. 이 경우 사랑채가 문간 가까이에 건립되어 전체적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일축선(一軸線)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일자형 안채의 평면 구성은 대개 측면의 정지[부엌]로부터 안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꾸며지고 전면에는 툇마루가 놓인다. 전면이 모두 넓은 안마당 쪽으로 개방되어 있어 경 자형과 큰 대조를 보인다.

사랑채는 조선 후기에서도 좀 늦은 시기에 건립된 경우는 완전히 안채와 분리되어 보통 대문간 가까이에 건립되었고 그 이전에 지어진 경우는 안채와 가능한 한 가까이에, 또는 연결된 상태로 지어졌다. 실 구성은 다른 지역과 유사하게 누마루 형식의 개방된 대청이 있고 이에 침실 공간 등이 갖추어져 있다. 한편, 사당은 조상숭배의 실천적 공간으로 상류 가옥, 특히 사대부 가옥에서는 빠짐없이 건립되었다. 보통 정면·측면 단칸으로 건립하였지만 종가 사당의 경우는 정면 세 칸으로 규모와 함께 격이 있게 건립하였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에는 안쪽 사당 외에 두 채의 사당이 더 있다.

일반 백성이 살았던 집은 그 규모가 극히 한정되어 있고 치장도 없다. 건물로는 안채와 부속채[행랑채] 정도가 전부였다. 안채는 일자형 정면 네 칸 정도가 주로 나타나는 유형이며. 평면은 정지, 안방, 마루방, 건너방 순으로 꾸며져 있고 전면으로는 반칸 폭으로 툇마루가 설치됐다. 행랑채는 주로 헛간 용도로 주로 쓰였으나 가옥에 따라 방과 외양간 정도가 추가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일반 백성의 집은 근대화 이전까지 해남 지역에 널리 지속하여 건립되었고 새로운 유형의 벽돌집은 1970년대 이후부터 농촌 마을에 서서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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