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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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集勝亭- |
영어공식명칭 | Jipseungjeong Pavilion |
이칭/별칭 | 집승정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산2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유철 |
소재지 | 집승정 터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산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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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자 터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터.
[개설]
집승정(集勝亭)은 조선 시대 학자인 삼암(三巖) 박이겸(朴以謙)[1553~1613]의 아버지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해 지은 정자이다. 박이겸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후(德厚), 호는 의재(毅齋)·삼암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沃川) 지역에서 태어나 무주 지역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충좌위 부사직(忠佐衛副司直)을 지냈다. 동생 비암(秘巖) 박이항(朴以恒)과 함께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식과 덕망을 겸한 선비로 추앙받았다. 20세 되던 해에 영남을 주류하여 당시의 거유 조식(曹植)에게서는 출처(出處)의 의리를, 정구에게서는 성리설(性理說)과 예악형정설(禮樂刑政說) 등을 배우고 집에 돌아와 삼암에 정자를 짓고 후생을 가르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박이겸은 33세에 암행어사 목장흠(睦長欽)의 천거로 정릉 참봉(貞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중용과 대학에 특히 조예가 깊었으며, 덕업설(德業楔)을 창설하고 한글로 「입덕문가(入德門歌)」라는 가사(歌詞)로 옮겨 누구나 쉽게 학문을 터득하도록 하였다. 또 세속이 술을 너무 쉽게 마시는 것을 금지하려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이의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는 등 많은 일을 하여 이조 참판(吏曹參判)이 증직되었고, 무주군의 압계 서원(鴨溪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삼암 유고(三巖遺稿)』 2권이 있다.
[변천]
집승정은 본래 조선 시대의 학자로 이조 참판이 증직된 삼암 박이겸의 소요처였다. 당시 향로봉(香爐峰) 남쪽 기슭은 박이겸 선대의 선산(先山)이었는데, 박이겸의 아버지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해 집승정을 건립하였으며, 이후 여섯 명의 은사(隱士)들과 회동(會同)하였다고 한다. 1590년(선조 23)에 삼암 박이겸이 쓴 「집승정기(集勝亭記)」가 『적성지(赤城誌)』에 실려 있기도 하다.
[현황]
집승정은 원래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집승정이 있던 곳은 서면 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2㎞ 정도 떨어진 자리로, 최근에 세운 약천사라는 사찰 주변으로 보인다. 현재는 집승정의 터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조선 전기의 정자로서 현존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