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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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朱有今 |
영어공식명칭 | Ju Yugeum |
이칭/별칭 | 주윤애(朱允愛)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903년 05월 15일 - 주유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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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1년 - 주유금 목포 정명여학교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11월 - 주유금 정명여학교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몰년 시기/일시 | 1995년 09월 14일 - 주유금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2년 - 주유금 대통령표창 수훈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 |
거주|이주지 | 전라남도 목포시 양동 |
학교|수학지 | 정명여학교 - 전라남도 목포시 삼일로 45[양동 86-1] |
활동지 | 전라남도 목포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주유금(朱有今)[1903~1995]은 1903년 5월 15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재학 중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주윤애(朱允愛)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정명여학교[현 정명여자고등학교]는 목포 양동교회 외국인 선교사들이 1903년에 개설한 전라남도 최초의 여학교이다. 1919년 4월 8일 펼쳐진 목포 독립 만세 운동에 정명여학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전통이 이어져 1921년 11월 개최될 예정이던 워싱턴회의에 조선 독립 문제 상정을 촉구하기 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워싱턴회의는 태평양 지역에서의 안전 보장 협정을 구체화하기 위해 미국의 주도로 개최되는 것이었는데,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이 회의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제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주유금을 비롯한 정명여학교 학생들은 신문을 통해 이러한 동향을 파악하고, “모두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선 독립 운동을 개시한다면 일반 조선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동(同) 회의에 참석하는 조선인 대표자에게 성원을 주며, 또한 일반 조선인의 독립 희망이 얼마나 절실한지 각국 전권위원에게 알릴 수 있으므로 그들의 호응을 얻어 조선 독립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 11월 13일 주유금을 비롯한 천귀례(千貴禮)·곽희주(郭喜主)·김나열(金羅烈)·이남순(李南順)·문복금(文卜今)·김연순(金蓮順)·김옥실(金玉實)·김귀남(金貴南)·김자현(金慈賢) 등은 기숙사에 모여 지역에서도 이를 지지하기 위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협의한 뒤 거사일을 14일로 정하였다.
주유금 등은 1921년 11월 14일 오전 수업 종료 후 정오를 알리는 오포(午砲)를 신호로 전날 기숙사에서 미리 만들어 두었던 태극기를 손에 들고 학교 정문을 나섰다.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학교 정문을 출발하여 목포 시내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 일로 주유금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주유금은 1995년 9월 1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2년 대한민국 정부는 주유금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