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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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卜今 |
영어공식명칭 | Mun Boggeu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907년 12월 13일 - 문복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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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1년 11월 - 문복금 목포 정명여학교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11월 - 문복금 목포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몰년 시기/일시 | 1937년 05월 22일 - 문복금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문복금 건국포장 수훈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시면 흥촌리 -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
학교|수학지 | 정명여학교 - 전라남도 목포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 만세 운동 참가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문복금(文卜今)[1907~1937]은 1907년 12월 13일 지금의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전라남도 목포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8일 양동교회 신도들과 기독교 계열 학교인 정명여학교 및 영흥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발생하였다. 이후 1921년 11월에도 학생들이 다시 만세 시위를 벌였는데,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태평양 지역의 군축 문제를 다루는 회의가 열리게 된 것이 배경이 되었다.
1921년 11월 13일 정명여학교 기숙사에 문복금을 비롯하여 천귀례(千貴禮)·김연순(金蓮順)·박복술(朴福述)·곽선주·김정현·김나열(金羅烈)·박음전(朴陰田)·주유금(朱有今)·김옥실(金玉實) 등이 모였다. 이들은 신문을 통해 미국 워싱턴 회의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대표단을 파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국내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독립 만세를 외치며 목포 시가를 행진할 계획을 세우고, 11월 13일 밤 기숙사에서 대나무와 종이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다음날인 1921년 11월 14일 정오를 알리는 오포 소리와 함께 각자 태극기를 들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학교 정문을 벗어나 목포 남교동 방면으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남순과 이다애 등 몇몇 학생이 더 합류하였고, 일부 학생들은 학교 뒷문으로 나와서 행진하였다. 행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경찰이 출동하였고 문복금·천귀례·김나열·박음전·이남순·주유금 등 11명이 체포되었다.
문복금은 1921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문복금은 1937년 5월 2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한민국 정부는문복금의 공적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