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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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安沼 |
영어음역 | Choe Ans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 시호는 문충(文忠). 최입지(崔立之)의 아들이다.
[생애]
최안소(崔安沼)는 충숙왕 때 경상도존무사(慶尙道存撫使)에 임명되었고, 1347년(충목왕 3)에 통정대부 안동판관(安東判官)에 임명되었다. 벼슬이 삼중대광 문하시중 동중서평장사 예부사(三重大匡門下侍中同中書平章事禮部事)에 올라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고, 공민왕 때에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에 책봉되어 다시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다.
[활동사항]
최안소는 정사(政事)에 오직 청백(淸白)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생활을 넉넉하게 해 주었고 굶주림을 덜어 주었다. 영호(映湖) 나루에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게 하고 이듬해에 교체되었다. 충정왕 때 음죽별감(陰竹別監)이 되었을 때 관직에 나가 근실하고 검소하여 부정하게 재물을 모은 자들의 재산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녹사(錄事) 김용기(金龍起)가 음죽별감(陰竹別監)으로 있으면서 백성의 재산을 많이 빼앗고 국가 재산을 훔쳤던 일이 발각되어 헌사에서 신문을 받았는데, 김용기는 지평 최안소에게 말하기를 “옛날에 너는 음죽(陰竹)에 있을 때 백성의 재산을 빼앗기를 더욱 심하게 하였다. 어찌 도적이 도적을 심문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김용기를 석방하라고 하였다. 이때 최안소는 “김용기는 나라의 좀도둑이니 지금 그를 석방하면 사람들에게 도적질하도록 장려하는 것으로 됩니다.”라고 하며 듣지 않았다.
1361년(공민왕 10) 11월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과 공주가 태후(太后)를 모시고 남으로 피난할 때 최안소를 양광도순문사(楊廣道巡問使)에 임명하였다. 1374년(공민왕 23) 봄에 사직하고자 청하였으나 왕이 이를 듣지 않고 이르기를 “최평장(崔平章)은 시종일관 청렴한 신하인데, 어찌하여 나를 등지고 은거하려 하는가?” 하며 특별히 허락하고 궤장(几杖)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