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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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玉只事件 |
영어음역 | Park Ok-gi Sageon |
영어의미역 | Bak Ok-gi Inciden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1666년(현종 7)에 강릉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발단]
박옥지(朴玉只)의 아버지 박귀남(朴貴男)이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병에 걸리자, 박옥지의 남편 어말남(於末男)이 산골짜기에다 초막(草幕)을 짓고 그곳에 박귀남을 데려다 두었다. 그러나 그 병이 집안에 전염될까 두려워 한 박귀남의 처 난개(難介)가 박옥지와 어말남 및 박옥지의 아들 어둔금(於屯金)과 모의하여 박귀남을 결박한 다음 단지에 넣어 산골짜기에 묻어버렸다. 박옥지의 동생 박연화도 그의 남편 김기(金墍)와 함께 갔었다.
[경과]
향소(鄕所)에서 이 사건을 알게 되어 어말남과 박옥지에게 태형(笞刑)을 가했으나 조정에는 숨기고 보고하지 않았다. 사헌부에서 뒤늦게 그 소문을 듣고 사건 당시의 강릉부 관리를 추고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관찰사를 추관(推官)으로 하여 철저히 신문하게 하였으나 오래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결과]
난개·김기·박연화 등은 자백하지 않은 채 죽었고 어둔금 등은 오래되어서야 사건의 전말을 자백하였다. 이에 경차관(敬差官) 박증휘(朴增輝)를 보내어 신문한 뒤 왕옥(王獄)으로 잡아왔다. 다시 강상(綱常) 죄인을 임금의 특지(特旨)에 따라 의정부·사헌부·의금부의 관원이 합좌하여 죄인을 심문하는 삼성추국(三省推鞫)을 한 뒤 박옥지·어둔금을 처형하였다. 그리고 강릉대도호부를 강릉현으로 강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