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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422
한자 梅月堂金時習說話
영어의미역 Tale of Kim Si-seup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장정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 등장인물 김시습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 전해오는 매월당 김시습에 대해 민중들이 구연한 설화적 모습.

[개설]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저자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설화상 모습은, 풍수를 이용하여 해를 끼친 부정적 인물로 형상화 되었던 다른 인물들과 달리 민중들의 편에서 그들에게 우호적이며 유익하고 민중들의 편에 서 있는 긍정적 인물로 인식된다.

기인 김시습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그를 가리켜 색은행괴(索隱行怪: 궁벽한 것을 캐내고 괴이한 일을 행함)한 인물로 평가하였고, 율곡(栗谷) 이이(李珥)도 왕명으로 지은 「김시습전」에서 매월당을 심유적불(心儒跡佛)한 인물로 보고 있다. 김시습은 시대에 이상하게 보일까 일부러 미친 짓을 함으로써 사실을 엄폐하려 하였다고 한다.

매월당은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자신의 화상을 그려놓고 스스로 말하기를 “너의 형상은 지극히 묘하고 너의 언동은 크게 지각이 없으니 마땅히 산 구렁텅이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내용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묘하다고 표현하였을 만큼 기인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모와는 달리, 언동이 지각없다고 한 것은 그가 세상과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품은 뜻과 세상일이 서로 어긋남에 따라 현실에서 소외된 자유인 또는 방외인으로 기인적 삶을 마칠 수밖에 없었던 고뇌를 엿볼 수 있게 된다.

[내용]

매월당 김시습은 어려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기인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으며, 불행하게도 부여 외삼면 만수리 홍산 무량사에서 쓸쓸히 59세의 삶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김시습의 본관인 강릉에서는 사후에 신화적 인물로 승화되고 신앙인물로 추앙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신동으로 기인의 삶과 한갓 풍수사로서 여러 사람들에 인식되기도 했으나, 신격으로 승화되어 한 많은 삶을 보상받은 것으로 보인다.

강원 지역 설화에 나타난 김시습의 모습은 초능력을 지닌 소극적인 풍수사에서부터 마을을 수호하는 차원 높은 신격으로 설정되는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전반적으로는 기인(奇人)으로 인정하면서도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에서 수용하고 있음이 전승설화에서 파악된다.

[모티브 분석]

매월당 김시습은 풍수지리에 밝은 술사로 나타나고 있다. 기인의 행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려 깊은 처세와 예언가, 풍수사로서 전승되는 김시습의 모습에 의문점이 있다. 단순히 보신을 위한 처세수단으로 행동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기인 또는 모반인의 모습과는 다른 일상적 변모가 주목된다.

김시습을 민중들의 편에서 긍정적인 인물로 수용하는 계기는 풍수에 밝은 인물로 형상화한 것에서 나타난다. 이는 당시의 위정자로 강원 일대를 다니면서 파묘와 산혈을 끊어 인재를 막았다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1508년(중종 3) 강릉부사였던 한급(韓汲)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민중들의 입장에서 조선조 관료 계층과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부정적 관념이 풍수설화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반면 이들 사건으로 인해 생육신으로 떠돌아 다녔던 김시습에 대한 동정감이 우호적인 인물로 형상화하였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매월당 김시습은 역사에 드문 신인술가(神人術家), 괴한기승(怪漢奇僧), 현실에의 모반인(謀叛人) 등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설화 상에는 신동에서 신격으로까지 폭넓은 수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민중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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