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181
한자 今江里今江都祭
영어공식명칭 Geumgang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Geumgang-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금강마을 뒷산 제각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 지도보기
의례 장소 금강마을 길가 솔대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 지도보기
성격 민속 의례
의례 시기/일시 정월대보름
신당/신체 금강마을 뒷산 제각|마을 길가 솔대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 금강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무고와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 금강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무고와 풍년, 어른들의 무고, 객지로 나간 사람들의 무고를 기원하며 도제를 지낸다. 정월 열나흗날 자정 마을 뒷산의 제각에서 당할머니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을 입구의 솔대[솟대]에서 제사를 지내고, 마을회관 앞 삼거리에서 허수아비를 놓고 제사를 지낸 후 음식을 허수아비에 넣어 버린다.

[연원 및 변천]

금강리 금강 도제의 연원은 알 수 없으나 마을공동체 신앙으로 오랜 기간 지속해 온 민속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금강마을의 제사 장소는 세 곳이다. 먼저 도제의 주된 신격이 되는 당할머니는 마을 뒷산 제각에 모셔져 있다. 제각은 두 칸 맞배집에 겉면의 벽은 함석으로 둘러져 있다. 신당 안에는 제물 조리용 방 한 칸과 제사 지내는 방 한 칸이 있으며, 이 제사 지내는 방의 전면 상부에는 신주를 모셔 두는 장(欌)인 감실이 145㎝×70㎝로 설치되어 있다.

그다음 제사 장소는 마을 길가 두 곳에 세워져 있는 솔대[솟대] 앞이다. 금강마을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 오른쪽으로 북동쪽을 향해 높이 약 5m, 둘레 45㎝의 솔대 한 기가 서 있는데, 상단에 오리 모양의 나무조각이 설치되어 있고, 지면에서 약 1m쯤에 수직으로 길이 20㎝ 정도의 가로대가 박혀 있다. 가로대는 곧 남근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민들은 이 솔대를 남자로 인식한다. 또 하나의 솔대는 남자 솔대에서 약 300m 남쪽으로 내려오는 국도의 한쪽 길가에 있다. 형태와 크기는 남자 솔대와 거의 유사하다. 솔대 상단의 새는 ‘오리’라 하며, 부리에는 조릿대로 만든 수염이 세 가닥 늘어져 있다. 솔대는 한번 세우면 썩어 넘어질 때까지 그대로 두며, 새로 세울 때에는 주민 모두 마을 뒷산으로 가서 반듯하고 옹이가 없는 깨끗한 나무로 베어 와 주민 공동으로 제작한다.

마지막으로, 해마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마을회관 앞 삼거리에서 제사를 지낸다. 허수아비는 짚으로 사람 모양을 만든 것으로, 크기는 보통 성인 남성 정도이다. 얼굴에는 종이를 붙여 눈, 코, 입을 그리고, 성기를 크게 부풀린 모양으로 만든다. 허수아비는 도제 때 임시로 만들어서 제사가 끝나고 나서는 속에 음식을 넣어 버린다.

[절차]

금강리 금강 도제는 정월 초엿새에 동회에서 제를 모실 사람으로 화주와 집사를 한 명씩 선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제관은 집안에 우환이 없고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하되, 제일에 생기복덕[길일]이 닿는 자로 한다. 선정된 제관은 제사 이틀 전, 즉 12일까지 일단 집에서 근신하며 지내야 한다. 그러다가 12일 오후 신당으로 올라가 신당에서 제사가 끝날 때까지 거처한다. 제관은 이 기간에 신당에서 식사를 하여야 하며, 술과 담배는 일절 입에 댈 수 없고 대소변 시에도 목욕뿐 아니라 속옷까지도 갈아 입는다고 한다. 식사는 이장이 준비하여, 마을과 신당의 중간 지점에 갖다 놓으면 신당에 올라가 있는 제관이 나와 이를 운반하는데, 이는 제관 이외의 다른 이가 신당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금강마을 제관들이 지켜야 하는 금기는 제사 전부터 제사 후 1년까지 지켜야 할 정도로 매우 엄격하다.

제물은 제사를 지내기 이틀 전에 제관들이 사들이며, 아침 일찍 첫차로 마을 가까이에 있는 상정장으로 가서 깨끗해 보이는 상점을 택하여 장만한다. 이때 부정과의 접촉을 꺼려 제관은 반드시 입마개를 하며, 되도록 깨끗해 보이는 상점으로 들어가 상인이 달라는 대로 값을 쳐 주고 절대로 깎지 않는다고 한다. 제물로는 나물류와 어물류[조기·명태·뱅어·전어 등]와 과실류가 쓰이는데, 육고기는 절대로 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사들인 제물은 바로 제각으로 가지고 가서 조리하며, 제주(祭酒)와 백설기도 제각에서 준비한다.

제일인 정월 열나흗날에는 주민들로 조직된 군고패[풍물패]가 오후 한 시쯤부터 풍물을 치기 시작하면서 제사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군고는 마을 주민 중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와서 볼 수 있으나 초상이나 출산이 있는 자는 참석할 수 없다. 마을에서 군고를 치는 동안 깨끗한 주민이 솔대 앞에 제사상을 차려 갖다 놓는다. 솔대 앞의 제사상은 제관들이 소지를 올릴 때까지 그대로 둔다.

제사의 시작은 오후 여덟 시부터이다. 한복으로 갈아입은 제관들이 제각에 제물을 차려 놓고 할아버지신과 할머니신을 대상으로 절을 하고 축원한다. 제각에서 모시는 주신격은 당할머니이지만 실제 제사 때에는 당할머니와 할아버지신 부부를 위해 메를 준비한다. 축원을 마치면 바로 소지에 들어가는데, 소지는 먼저 당할머니와 할아버지신을 위한 소지를 올리고 나서 노인들의 만수무강을 위해 노인 소지를 올려 준다. 이어 마을의 단합과 화목을 위한 동중 소지를 올리고, 가축들을 위한 우마 소지를 올리면 일단 도제가 끝나게 된다.

제사를 마치고 제물 약간씩을 모아 신당 주변에 헌식(獻食)으로 남겨 두고 신당을 내려와 남자 솔대로 향한다. 솔대 앞에서 제관들이 간단하게 축원하고 “일 년 열두 달 무병하고 풍년 들어 달라.”라고 솔대를 위한 소지를 올린다. 그러고 나서 다시 여자 솔대로 가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축원과 소지를 한다. 그리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허수아비 앞에 헌식상을 놓고 가가호호 소지를 올려 준다. 헌식상은 가정별로 준비하고, 소지를 마치고 나서는 헌식상의 음식을 조금씩 떼어 허수아비에 담고 금강교 앞으로 이동하여 허수아비를 버린다. 허수아비까지 버리면 도제를 완전히 마치게 된다. 도제를 마치고 나면 이후 쇳소리를 일절 낼 수 없다고 하며 주민들은 조용히 음복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부대 행사]

제사를 마치고 이튿날 마을 총회를 개최하여 제사 비용 결산을 진행하고, 제물을 조금씩 나누어 가가호호로 보내 준다. 과거에는 도제를 마치고 군고를 치며 인근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풍물로 걸궁[걸립(乞粒)]을 한 것인데, 이때 상대 마을에서 군고패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영기(令旗)로 땅을 긋고 나온다. 그러면 그 마을은 한 해 동안 운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황]

금강리 금강 도제는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로 전승력이 약화되기는 하였으나 2018년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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