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리 송호 짐대·장승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177
한자 松湖里松湖-長丞祭
영어공식명칭 Songho Religious Ritual for the Jimdae·Jangseung in Songho-ri
이칭/별칭 송호리 송호 거리제,송호리 송호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 송호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짐대거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 송호마을 지도보기
성격 마을 제사|민속 의례
의례 시기/일시 매년 음력 2월 초하루
신당/신체 짐대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 송호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마을의 평안과 재액 방지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 송호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짐대 모신다.”라고 하여 짐대[솟대]와 벅수[장승]가 서 있는 짐대거리에서 마을 제사인 송호리 송호 짐대·장승제를 지낸다. 짐대거리에는 오리를 물고 있는 짐대 한 기와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이라 쓰여 있는 장승 두 기가 서 있다. 짐대가 마을의 주 신격이며, 장승은 마을 어귀에서 잡귀와 질병의 침입을 방지하고 짐대를 보호하는 신격이다. 과거에는 짐대 두 기와 장승 네 기가 서 있었고 제사도 ‘거리제’라는 이름으로 거행하였으나, 현재는 장승 앞에 제단을 마련해 놓고 ‘짐대·장승제’라는 이름으로 제사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송호리 송호 짐대·장승제의 역사는 알 수 없으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거리제 또는 당산제 등으로 불렸던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에도 짐대를 주된 신격으로 중요시하였으나 제사 명칭은 거리제나 당산제 등으로 표현하였고, 현재도 여러가지 명칭을 혼용하여 부르고 있다. 그리고 제사 날짜도 현재는 음력 2월 초하루인데, 1990년대에 잠시 정월대보름으로 변경된 적이 있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짐대는 짐대거리라 불리는 곳에 있는 당산나무에 기대어 세워져 있고, 장승은 짐대거리 입구에 두 기가 세워져 있다. 1986년 조사 자료에는 짐대 두 기, 장승 네 기로 기록되어 있는데, 1990년대 이후 조사 자료에는 짐대 한 기, 장승 두 기로 기록되어 있다. 장승의 경우 1990년대까지 동방적제장군(東方赤帝將軍)·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 등으로 방향과 관련된 이름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암·수로 구분하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짐대와 장승은 3년에 한 번씩 새로 만들기 때문에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대개 짐대는 7~10m 길이의 장대 끝에 길이 40㎝ 정도의 해오라기[또는 오리] 모양의 나무조각을 꽂아 놓은 형태다. 나무로 깎은 해오라기는 머리가 남쪽을 향한다. 장승은 높이 120㎝~150㎝, 둘레 40㎝~50㎝ 정도의 크기다.

[절차]

제사는 제관을 선정하는 것으로 제의 준비가 시작된다. 제관은 주민 중 생기복덕[길일]을 가려 남자로 선정하는데, 최근에는 이농 현상으로 마을 인구가 줄어들자 부인의 생기복덕도 보아 합당하면 그 남편이 제관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제관으로는 헌관 두 사람, 축관과 유사 각각 한 사람 등 모두 네 명이 선정되며, 유사의 경우 그 부인이 제물 조리를 담당한다. 제관 선정은 보통 제를 지내기 7일 전에 하며, 선정된 제관은 제를 지내기 전 적당한 시기에 목욕탕에 가서 찬물로 목욕재계한다.

제를 지내기 전날에는 짐대와 장승을 제작한다. 짐대와 장승은 모두 나무로 깎은 것이기 때문에 썩으면 새로 만드는데, 대개 3년에 한 번씩 교체한다. 장승과 짐대를 만들 나무는 제관이 미리 2~3일 전 산에 가 선정해 놓은 나무를 제사 지내기 하루 전에 주민들이 산으로 가서 장승과 짐대로 만든다. 이때 산 주인도 장승과 짐대로 사용할 나무라면 베어 가도 탓하지 않는다. 나무를 베기 전 그 앞에 삼색과실 약간과 술을 붓고 나서 나무를 베겠다고 고하고 나서 제관이 한 번 절하고 톱을 이용하여 베어 낸다. 베어 낸 나무는 자귀[나무 깎는 도구의 하나]를 이용하여 가지를 모두 쳐서 경운기에 싣고 와서 장승과 짐대를 제작한다. 장승은 겉껍질을 낫으로 모두 벗기고 먹으로 얼굴과 명문을 그린다. 짐대는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해오라기 모양은 따로 만들어 장대 상단에 꽂아 놓는 것으로 전 과정이 끝난다.

제사를 지내는 제일이 되면, 일단 장승과 짐대를 제사 장소에 세워 놓고 미리 꼬아 놓은 왼새끼 금줄을 장승과 짐대에 걸쳐 놓은 뒤, 마을 전체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보내며 특별히 지켜야 하는 금기 등은 없다. 단, 마을에서는 정초 차례에 이어 이날 저녁 무렵 다시 선영께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제물은 이장이 구매하여 유사의 집에 갖다 놓으면, 유사의 집에서 조리를 담당한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백설기, 나물류, 삼색과실 등을 올린다.

2월 초하루 밤이 되면 제관과 이장이 유사의 집으로 가서 각자 제물을 나누어 가지고 짐대거리로 향한다. 제사 장소에 도착하면 제물을 차리고 한편에서는 시루에 촛불을 밝힌다. 이어 현관이 헌작과 재배를 한 후 축관이 독축을 한다. 독축이 끝나면 다시 헌관이 헌작과 재배를 한 후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많이 올릴수록 좋다고 하여 집마다 가장의 소지를 모두 올려 준다. 소지 올리기를 마치면 제관들이 간단히 음복하고 나서, 제사 장소 주변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제물 약간을 놓아둔다. 이를 헌식(獻食)이라 한다. 헌식을 마치고 제관 일행은 다시 유사의 집으로 돌아와 올해의 당산제를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서로 축하하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축문]

1994년 음력 정월대보름에 진행한 제사의 축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학(幼學) ◯◯◯/ 유(維)/ 세차갑술정묘삭십오일신사 감소고우(歲次甲戌丁卯朔十五日辛巳 敢昭告于)/ 우방신장 국업민안 시화연풍(牛方神將 國業民安 時和年豊)/ 축하독축 인념여흥 동중독축(祝賀讀祝 認念餘興 洞中讀祝)/ 영심초심 근이주과 용신(榮心焦心 謹以酒果 用伸)/ 경고 근고(庚告 謹告).”

[부대 행사]

제사를 마치고 이튿날 2월 2일에는 마을 사람들이 유사의 집에 모여 한 해의 농사일을 의논하고, “메구 친다.”라고 하여 가가호호를 돌며 군고[풍물]를 치고 마당밟이를 한다. 근래에는 풍물을 연행하기 어려워 회관에서 조촐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현황]

송호리 송호 짐대·장승제는 현재도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지낸다. 마을 인구의 노령화로 제의 절차는 간소화되었지만 방식은 예전과 같다. 다만 마을 제사를 지내고 나서 군고를 치던 풍습은 군고패의 전통이 끊겨 현재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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