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731
한자 高靜熙
영어공식명칭 Ko Junghee
이칭/별칭 고성애(高聖愛)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근대,현대
집필자 김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48년 01월 17일연표보기 - 고정희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79년 - 고정희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고정희 목포에서 ‘흑조’ 동인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74년 - 고정희 광주 YWCA 대학생부 간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5년 - 고정희 『현대시학』에 「부활 그 이후」, 「연가」 등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고정희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83년 - 고정희 고정희 시집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86년 - 고정희 시집 『눈물꽃』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87년 - 고정희 시집 『지리산의 봄』』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고정희 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90년 - 고정희 시집 『여성해방 출사표』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고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 시선집 『뱀사골에서 쓴 편지』 출간
몰년 시기/일시 1991년 06월 09일연표보기 - 고정희 사망
추모 시기/일시 매년 10월 - 고정희기념사업회에서 고정희문화제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고정희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수상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광주광역시
거주|이주지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현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활동지 전라남도 해남군
활동지 광주광역시
활동지 서울특별시
묘소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지도보기
성격 시인
성별
대표 경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정의]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시인.

[개설]

고정희(高靜熙)[1948~1991]는 시인이자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와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국문학사에서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활동 사항]

고정희는 1948년 1월 17일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아버지 고양동과 어머니 김은녀 사이의 5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고성애(高聖愛)이다. 삼산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해남을 떠나기 전까지 해남문학동호회와 『월간해남』 기자로 활동하며 홀로 문학 수업을 하였으며, 1967년에는 『새농민』지에 장만영 시인의 추천으로 시가 실리기도 하였다. 이즈음 고정희는 목포 지역의 젊은 문인들로 이루어진 ‘흑조’ 동인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고정희는 1970년부터 『새전남』, 『주간전남』, 월간 『백조』, 『소녀생활』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였으며 1974년 광주YWCA 대학생부 간사를 역임하였다. 1975년 박남수 시인에 의해 『현대시학』에 「부활 그 이후」, 「연가」 등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1979년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을 졸업하였다. 그해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허형만, 김준태, 장효문, 송수권, 국효문 등과 함께 『목요시』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광주YWCA에서 일했던 고정희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은 삶의 기본 자세였다고 할 수 있다. 첫 시집인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서문에서 “광주YWCA가 내게 생의 길을 열어 준 곳이라면 수유리의 한국신학대학은 생의 내용을 가르쳐 준 곳”이라고 적고 있다. 고정희의 기독교 지향 공동체 정신을 배태시켜 준 곳이 수유리의 한국신학대학이었고 할 수 있다.

고정희는 1980년 ‘광주의 5월’을 겪으면서 장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광주의 눈물비』를 통해 현실문제와 정치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또한 5·18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전통적인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려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무하는 장시들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그중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초혼제』는 고정희의 시 세계를 본격적인 수준에 오르게 한 장시집이다.

고정희는 1984년 『또 하나의 문화』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시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며 여성주의 문학에 대한 탐구와 여성해방의 시를 창작하게 된다. 『또 하나의 문화』는 기존의 문화를 남성중심주의 문화로 규정하고, 남녀가 평등하고 건강한 벗으로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며 대안적 문화운동을 표방한 단체였다. 고정희의 시에서 여성문제가 본격적인 주제로 표출된 것은 1989년 출간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부터지만, 1990년의 『여성해방 출사표』에 이르면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심화될 뿐 아니라 다양한 시적 방법론을 구사하게 된다. 『여성해방 출사표』를 던지면서 시작된 고정희의 여성해방운동과 글쓰기는 여성사에 관한 남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와 시의 새로운 결합을 꾀하고, 사람의 근본과 돌아갈 곳을 ‘어머니’의 모성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여성주의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88년에는 여성 문제를 대중매체를 통해 공론화하는 데 이바지한 여성 정론지 『여성신문』의 주간을 맡아 신문 창간의 산파 역할을 해냈다.

고정희는 1990년 필리핀 마닐라의 아시아종교음악연구소 초청으로 아시아 시인 및 작곡가들이 모여 1년 동안 벌인 ‘탈식민지 시와 음악 워크숍’에 참여하여, 체류 중 ‘밥과 자본주의’, ‘외경 읽기’ 등 연작시를 창작하였다. 1991년 귀국하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사』를 편집·제작하였다. 1991년 6월 8일 『또 하나의 문화』 월례논단에서 “여성주의 리얼리즘과 문체혁명”이란 주제로 발표를 마치고 지리산으로 갔다가 6월 9일 실족하여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고정희는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광주의 눈물비』[1990], 『여성해방 출사표』[1990], 『아름다운 사람하나』[1991]를 출간하였다. 시선집 『뱀사골에서 쓴 편지』[1991]와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 『고정희 시전집』[2010]이 있다.

[묘소]

고정희의 묘소는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고정희는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부터 매년 6월 고정희기념사업회에서는 고정희를 추모하고 여성주의 문화를 지향하는 ‘고정희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문화예술회관 광장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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