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임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94
한자 善山林氏
영어공식명칭 Seonsan L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선산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입향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임양저(林良貯)
입향 시조 임수(林秀)

[정의]

임양저를 시조로 하고 임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개설]

선산임씨(善山林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해남읍옥천면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

[연원]

선산임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주사위인 태사공(太師公) 임양저(林良貯)를 시조로 하고 있다.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려고 하자 반대하였다가 노여움을 사서 선산(善山)[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유배되어 여생을 보내며 뿌리를 내림으로써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임양저 이후의 세계는 전하지 않으며, 고려 공민왕 때 태어나 조선 태조 때 이조좌랑을 지낸 임만(林蔓)[1370~?]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선산임씨는 경상북도의 선산을 본관으로 두고 있지만 정작 뿌리는 전라남도에 있다. 중시조인 임만이 외가가 있던 영암군에 입향한 이래 해남을 비롯한 영암·강진·무안 등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살면서 지역의 명문가로 꼽혀 왔다.

선산임씨는 임만의 아들 임진이 제주목사, 손자 임간이 동복현감을 지낸 데 이어 증손자인 임득무(林得茂)가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해 이조판서의 고위직에 오르면서 가문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임득무는 두 아들 임종과 임수(林秀)를 두었는데 후손들이 이로부터 크게 번창하였다.

[입향 경위]

선산임씨가 해남에 입향한 것은 조선 성종 때 임수가 당시 해남읍에서 호장직으로 강력한 향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해남정씨(海南鄭氏)의 사위가 되어 해남읍 해리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임수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큰아들 어모장군 임우원이 해남군 옥천면에 자리 잡았으며, 손자 대에 임천령(林千齡)·임억령(林億齡)·임백령(林百齡)·임구령(林九齡) 형제가 관직에 진출하는 등 명문가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현황]

해남의 선산임씨는 2015년 현재 황산면, 계곡면, 옥천면, 삼산면 등에 200여 호가 살고 있다.

[관련 유적]

해남 선산임씨 관련 유적으로는 해남읍 해리해촌서원(海村書院)이 있다. 해촌서원에는 해남 육현 중 한 사람인 임억령이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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