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89
한자 世居姓氏
영어공식명칭 Residi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윤섭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는 성씨.

[개설]

고려 건국 이전에 성씨(姓氏)는 왕족과 극히 일부의 중앙 귀족들만이 가지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940년(태조 23) 개국공신들에게 땅과 성씨를 하사하면서부터 출신지와 거주지를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世居姓氏)가 비롯되었다. 이후 과거제의 영향으로 관료 제도가 보편화되면서 성씨가 늘어났으며, 조선 말 노비 제도의 혁파와 1908년 호적법이 제정되면서 노비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성을 갖게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6세기 이전 해남 지역에는 32개가량의 토착 성씨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란이나 사화를 피해 해남으로 입향한 성씨 등으로 인하여 토착 성씨는 사라지고 이거 성씨가 해남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현재 해남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해남윤씨(海南尹氏)가 유일하다.

[지리지 속의 토착성씨]

해남 지역의 토착 성씨와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성씨 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토성의 분포를 지역별로 보면 고해남현(古海南縣) 지역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鄭·尹·車·金·全·葛·承, 『신증동국여지승람』에 鄭·尹·車·金·全·葛 등 6개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죽산현(竹山縣) 지역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尹·朴·宋·全·門[망성], 『신증동국여지승람』에 尹·朴·宋·全·門 등 5개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황원군(黃原郡) 지역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黃·尹·葛·宋, 『신증동국여지승람』에 黃·尹·宋·葛 등 4개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옥천현(玉泉縣)·냉소부곡 지역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金·尹·愼·安·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金·尹·愼·安·朴 등 5개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옥산현(玉山縣)·사라향(沙羅鄕) 지역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曹·宋·尹·吳·趙 등 5개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보면 16세기 이전 해남에는 각 현과 소, 부곡별로 4~6개의 토성이 있어서 해남 지역에는 32개가량의 토착 성씨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영암군으로 복귀한 옥천면의 5개 성씨와 해남현 편입에 반발해서 영암군으로 입주한 황원군 일부 성씨를 제외하면 27개 내외의 성씨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사화와 전란으로 입향한 성씨]

조선시대 사화와 전란 등을 피하거나 혼인 관계 등으로 해남에 입향한 성씨들은 해남윤씨, 선산임씨(善山林氏), 선산유씨(善山柳氏), 동복오씨(同福吳氏), 장흥임씨(長興任氏), 하동정씨(河東鄭氏), 원주이씨(原州李氏), 통천최씨(通川崔氏), 여흥민씨(驪興閔氏), 무안박씨(務安朴氏), 수원백씨(水原白氏), 연안이씨(延安李氏), 밀양박씨(密陽朴氏), 제주양씨(濟州梁氏), 광동진씨(廣東陳氏), 보은이씨(報恩李氏) 등이 있다.

해남 지역의 토착 성씨 가운데 하나인 해남정씨(海南鄭氏)해남윤씨 윤효정(尹孝貞)[1476~1543], 선산임씨 임수(林秀), 탐진최씨 최부(崔溥)[1454~1504], 선산유씨 유계린(柳桂鄰)[1478~1528] 등을 사위로 삼아 재지사족의 일원으로 성장시키지만 이후 여러 문중의 족보에 초계정씨(草溪鄭氏)로 기록될 정도로 쇠락하였다. 조선 전기 해남 지역은 해남정씨를 중심으로 여러 성씨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의 기틀을 다졌으며,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사화와 전란을 피해 입향한 가문들이 세거하면서 해남의 주요 성씨를 이루었다.

조선 초 보은이씨 이운은 제주목사가 되어 부임하다가 화산면에 아들을 남겨두었고, 후손들이 화산면계곡면에 거주하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가문을 일으켰다.

조선 초 장흥임씨 임서규(任瑞圭)는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계곡면 덕정리에 정착하였으며, 후손 중에서 선대왕의 위패를 짊어지고 선조를 호종한 임발영(任發英)[1539~1593]이 잘 알려져 있다.

연산군 때 해남에 낙향한 동복오씨 오빈(吳彬)은 계곡면 용지리에 정착하였고, 용지사(龍池祠)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학자 오달운(吳達運)[1700~1748]이 후손이다.

이어 계유정난을 피해 해남에 정착한 순천김씨 김효우(金孝友)·김효손이 계곡면 방춘리산이면 구성리에 거주하였고, 원주이씨 이영화(李英華)가 마산면 산막리에 터를 잡아 그 후손이 마산면 일대와 계곡면, 화산면, 황산면 등지에 거주하였다.

통천최씨 최윤온(崔閏溫)[1390~?]은 옥천면 흑천에 정착하여 후손이 황산면 등 각지로 나뉘었으며, 여흥민씨 민중건(閔仲騫)의 후손들은 마산면해남읍 등지에 살고 있다.

무안박씨 박백응(朴伯凝)[1525~?]의 후손은 마산면해남읍에, 밀양박씨 박관은 진도에서 화산면 월호리로 옮겨 후손이 살고 있다.

제주양씨 양산형(梁山逈)은 양팽손(梁彭孫)[1488~1545]의 손자로 기묘사화를 피해 옥천면으로 입향하였으며, 수원백씨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 옥천면 송산에 입향하여 살았다.

그 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연안이씨 이복길(李復吉)이 삼산면 송정에 세거하며 후손이 삼산면 충리, 원진, 금산에 살고 있다.

명나라 진린(陳璘)의 손자인 광동진씨 진영소(陳泳素)는 명나라가 망하자 우리나라에 건너와 산이면 황조리에 거주하여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현황]

2015년 현재 해남군의 성씨 분포를 보면 김씨 25%, 이씨 12.8%, 박씨 12.1%, 정씨 4.8%, 최씨 4.2% 등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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