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83
한자 海南邑誌 [1791]
영어공식명칭 Haenameupji 1791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91년연표보기 - 『해남읍지』 발간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리지
저자 해남현
편자 해남현
권책 1책 84장
규격 20㎝[가로]|22㎝[세로]

[정의]

1791년 해남 지역과 관련된 지리 정보들을 모아 발간한 읍지.

[개설]

『해남읍지(海南邑誌)』[1791]는 1791년(정조 15) 편찬된 해남현(海南縣), 옥과현(玉果縣), 남평현(南平縣), 화순현(和順縣), 창평현(昌平縣) 읍지의 합본이다.

[저자]

『해남읍지(海南邑誌)』[1791]는 해남현에서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해남읍지』[1791]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정확한 편찬 및 간행 경위는 알 수 없다. 1791년 정조가 해남현감 이응복(李膺福)에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내용이 소략하니 읍지를 새롭게 편찬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내용으로 보아 당시 『해남읍지』를 새롭게 편찬하면서 해남 주변 현의 내용이 부가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해남읍지』[1791]는 총 1책 84장의 필사본이며 크기는 가로 20㎝, 세로 22㎝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해남읍지』[1791]의 구성은 건치 연혁, 현명, 관직, 방리, 도로, 성지, 산천, 성씨, 풍속, 학교, 사우, 단묘, 공해, 관액, 봉수, 제언, 장시, 교량, 역원, 목장, 사찰, 누정, 형승, 도서, 물산, 진공, 호구, 전총, 전세, 대동, 균세, 봉름, 요역, 군기, 군액, 노비, 선생안, 인물, 과환, 고적, 책판 순이다.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면, 「방리」에는 현내면·비곡면·청계면·마포면·산포일도면·산포이도면·황원면·장내면·녹산면·화산면·현산면·은소면 등 12개 면이 기록되어 있다. 「산천」에서는 각지의 송전(松田)을 함께 정리하였으며‚ 각 포(浦)에는 상선(商船)과 수세(收稅)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서 주목된다. 「풍속」에는 “다질근원무농근학(多質謹愿務農勤學)”이라고 적혀 있어 해남 사람들이 농사에 힘쓰고 학문을 장려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우」에는 충무사·오현사·충정사·예양사·삼상사 등 관내 사우와 각각의 배향 인물이 기록되어 있다. 「진공」에는 각 월령과 정조(正朝), 단오, 동지, 각종 탄신일에 상납하는 물품을 정리하였다. 상납 물품으로는 전복·김·미역·다시마·숭어·숭어 어란·홍합·해삼·석류·표고버섯·잣·꿩·동백기름 등이 보인다. 「공해」에는 객사, 동헌, 향사당, 대동청, 토사(土司), 작청, 장관청, 군관청, 훈련청, 소성청(小星廳), 연빈청(延賓廳), 서청(書廳) 등이 보인다. 토사는 호장이 근무하는 현사(縣司)를, 소성청은 통인(通引)이 근무하는 통인청을 말한다. 「제언」은 모두 9개소로서 방축(防築)이라고 하였으며, 둘레와 몽리답(蒙利畓)의 결수를 병기하였다.

『해남읍지』[1791]에는 당시의 경제적 정보를 중시하는 경향과 함께 해남의 독특한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사찬 읍지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사우와 배향 인물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해남읍지』[1791]는 당시 해남 지역의 인문지리적 내용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서 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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