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20
한자 表忠祠
영어공식명칭 Pyochungsa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89년연표보기 - 표충사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9월 30일연표보기 - 표충사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표충사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대흥사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지도보기
성격 사우
양식 목조 건조물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대흥사
관리자 대흥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경내에 있는 1789년 건립된 사우.

[개설]

표충사(表忠祠)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1520~1604]을 기리기 위하여 정조의 명령으로 1789년에 건립한 사우이다. 사찰에서 보기 드문 솟을삼문을 갖추었다.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1544~1610]과 뇌묵당 처영의 진영도 함께 봉안하고 제향을 하고 있다.

[위치]

표충사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다. 해남읍에서 삼산면으로 가는 지방도 제806호선을 따라 대흥사 경내 무염지(無染池)를 지나 표충사가 있다.

[변천]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충절 삼승(忠節三僧)인 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영대사 진영을 모시고 제향을 하고자 1788년(정조 12) 7월 사우 건립 상소를 올렸고 1789년(정조 13) 사우를 건립하고 사액을 받았다. 예조정랑 정기환이 왕명으로 치제를 하였다. 1836년(헌종 2) 동남쪽으로 옮겼다가 1860년(철종 11) 현재 자리로 돌아왔다.

[형태]

표충사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어간 상부에는 1789년 정조대왕이 하사한 ‘표충사(表忠祠)’ 편액과 ‘어서각(御書閣)’이라는 편액 두 기가 있으며, 단조로운 채색의 단청으로 사우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어서각’이라는 편액은 ‘임금의 글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편액이 정조의 글씨임을 증명해 준다.

[현황]

표충사의 좌향은 정좌계향(丁坐癸向)이며 삼문과 같은 축선상의 중앙 안쪽에 사우[표충사]를 앉히고 전면 동서쪽으로는 조사전과 표충비각을 배치하였다. 표충사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내부는 우물마루[마룻귀틀을 짜서 세로 방향에 짧은 널을 깔고 가로 방향에 긴 널을 깔아서 ‘井’ 자 모양으로 짠 마루]를 깐 통간으로 되어 있다. 장대석으로 1벌대의 바른층쌓기한 기단 위에 막돌 주춧돌을 놓고 주춧돌 상부를 원형으로 가공하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주심포계의 2익공양식이다. 가구 구조는 전후방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위에 종도리를 얹힌 5량 구조이다. 천장은 종도리 위에만 우물천장이고 외에는 빗천장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다. 1976년 9월 3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서산대사는 입적하면서 제자들에게 의발(衣鉢)을 두륜산 대흥사에 전하여 제삿날에 재를 받게 하라고 하였다. 서산대사두륜산이 모퉁이에 치우쳐 있어 명산은 아니지만 기이한 화초가 언제나 아름답고, 옷감과 곡식이 넉넉한 곳이며, 왕의 교화가 제대로 미치기 힘든 먼 곳이지만 어리석고 아둔한 풍속을 깨우칠 수 있으며, 처영 등 여러 제자들이 남방에 있으므로 종통(宗統)이 돌아갈 곳이라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서산대사의 유물을 챙겨 대흥사로 모여들었다. 영잠(靈岑)대사가 1607년(선조 40) 서산대사의 유품인 금의(錦衣)와 벽옥발(碧玉鉢) 등을 가지고 와서 이듬해 기일에 유품을 놓고 재를 올렸다. 이어 진영을 모시는 영각을 지었고 1631년(인조 9) 장유(張維)가 지은 서산대사 비석을 세웠다. 1655년(효종 6)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의 발우와 신발, 가사 등을 대흥사로 가져왔다고 한다. 서산대사의 유품과 진영이 봉안되고 비석이 세워지면서 대흥사서산의 문도들이 모이는 중심 사찰이 되었다. ‘대흥사 표충사 향례’는 서산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치르는 제향 의식으로 1789년 4월 27일부터 거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표충사는 불교의 가치와 호국 정신 및 유교를 융합한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건물이다. 건물은 전반적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의 국가 의례와 불교 문화사를 알 수 있는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 ‘대흥사 표충사 향례’는 국가에서 제관을 파견하여 제를 올리는 국가 의례로 조선시대의 사액 제문, 향례 홀기, 제향 관련 국향친필교서 등 문헌이 전하고 있다. 전통 불교 유산과 전통 유교 의례의 습합 유산이라는 역사적 전통을 현재에도 이어 나가는 중요한 의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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