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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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관두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봉수는 삼국시대 이래로 연안을 방호하는 관방 시스템의 하나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해남 지역에 설치된 봉수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확인된다. 조선시대 해남현에는 화산 관두산(館頭山)[177m]을 비롯하여 일성산(日星山), 금강산(金剛山)에 있었고, 강진현 좌곡산, 영암군의 갈두와 달마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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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군 금호도와 별암리를 연결하였던 조선 후기와 근대의 나루. 금호진(錦湖津)은 금호도에 있었던 작은 나루이다. 금호도에는 나루가 두 곳 있었는데, 금호도의 동쪽은 산이면 상공리, 서쪽은 별암리를 왕래할 때 이용하였다. 지금은 1993년 영암호 제방과 1995년 별암리 간 제방의 준공으로 소멸되었다. 금호진은 나루가 있던 산이면 금호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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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남리(南利)는 고려 때부터 남리(南里)로 칭하고, 압리(鴨里)[‘앞리’에서 파생된 말]라고도 불렀다. 남(南)은 따뜻하고 풍요로움을 일컬으며, 리(利)는 하늘이 지니고 있는 4가지 덕인 원형이정(元亨利貞)에서 의로움의 조화나 만물이 이루어지는 가을을 뜻한다. 그러므로 남리는 따뜻하고 풍요로움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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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해남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해남현(海南縣)」 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04~1866]가 1861년(철종 12) 22첩으로 나누어 만든 목판본 조선 지도 중 해남현 부분이다. 1864년에는 일부분을 수정하여 재판하였으며, 목판의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숭실대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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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이 1897년 합쳐져서 문내면(門內面)이 되었다. 문내면에는 조선시대 초부터 전라우수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라우수영 영문(營門)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호구총수』(1789)에 의하면 문내면(門內面)은 조선시대의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897년 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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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쌓은 조선시대 목장성. 송호리 목장성(松湖里牧場城)은 황원의 목마들을 방목하기 위하여 1454년 여러 곳의 수군들을 소집하여 축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해남읍지(海南邑誌)』 등에서 확인되며, 지적도에 흔적이 남아 있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연결된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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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인근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병선이나 수군이 머무르던 진지. 조선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건국 초기부터 어란과 달량 그리고 주량에 병선이 배치되었다. 1440년(세종 22)에는 전라수영이 목포의 당포에서 해남우수영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해남은 전라도 바다를 관장하는 수군진(水軍鎭)의 본영이 되었다. 1479(성종 10)년에는 전라좌수영이 여수로 분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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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갓을 씌운 모양의 바위가 있어 갓바우라 하였는데, 마을이 바위의 바깥에 해당한다고 하여 바깥갓바우 또는 외립(外笠)이라 불리게 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내립암(內笠巖)에 해당되는 마을은 부곡마을과 춘정마을이다. 본래 해남군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월리, 연당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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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해남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시대 해남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행정 편제, 교통·통신, 지방 군제와 임진왜란 그리고 유교문화·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아울러 해남의 목마장 운영에 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였다. 해남현(海南縣)은 1409년(태종 9)에 진도군과 합쳐 해진현(海珍縣)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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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명량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와 개항기 나루. 주량(周梁)은 조선시대의 포구이자 나루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여러 지리지 기록에서 확인되지만 나루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명량마을 주변에 있는 나루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주량에는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명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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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마산면·계곡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영암군의 속현인 죽산현(竹山縣)은 오늘날 해남군 산이면·마산면·계곡면 일대에 분포하였다. 죽산현 영내의 문화유산으로 죽산현고성, 금강산성, 장촌리 삼층석탑,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등이 확인된다. 죽산현 치소 일대에는 은적사가 있는 장촌리 뒷산인 금강산에 죽산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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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에 1454년 설치되었던 목장. 화원목장(花源牧場)은 1445년(세종 27) 무렵 해남군 화원면에 설치되었고 영암군사가 관리하였다. 성종 무렵에는 1500여 필을 방목하였으며, 중종 때는 노화도와 소안도에서 방목하던 말까지 옮겨 방목하였다. 1454년(단종 2) 6월에는 황산면 송호리에 목장성을 축성하였으며, 17세기에는 진도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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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을 비롯하여 황산면·산이면·문내면 등 화원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는 지방 행정구역. 6세기 백제가 해남 지방을 통치하면서 백제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양무군 조에 따르면 “황원현(黃原縣)은 원래 백제의 황술현(黃述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라고 한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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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 일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황원 봉수(黃原烽燧)는 조선 초기에 개설되어 1894년 폐지되었다. 고려 시기 황원군의 진산인 일성산(日星山) 정상에 있어 일성산 봉수라고도 하였다. 황원 봉수를 감싸고 서쪽으로 테뫼식 석축성[산 정상부를 둘러가며 바깥쪽만 성돌을 쌓고 안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이 조성되었으며, 남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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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통일신라 때까지 황원현(黃原縣)이던 고을이 고려에 들어와 황원군(黃原郡)으로 승격하였다. 이러한 고을의 읍격 변동은 왕건의 후삼국 통일전쟁에서 화원반도의 정치세력이 일정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백제 때에 황술현, 통일신라 때에 황원현 그리고 고려시대에 황원군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와서 현에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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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된 목장. 황원목장(黃原牧場)은 현재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황산면, 문내면, 화원면]에 설치된 목장이다. 1445년 건립되었다. 1445년(세종 27) 10월 9일에 하삼도순찰사 김종서가 각지의 목장 적임지에 대해 아뢸 때 “영암군의 황원곶[黃原串]은 4,000필을 놓을 수 있는데, 거민 400여 호가 바닷가에 흩어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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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을 비롯하여 황산면·산이면·문내면 등 화원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였던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통일신라 9주 가운데 무주[무진주, 지금의 광주광역시] 관할의 군현 수는 15군과 43현이었다. 당시 황원현은 양무군(陽武郡)의 영현(領縣)에 속하였다. 황원현(黃原縣)은 백제 때에 황술현(黃述縣)이었는데, 통일신라 757년(경덕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