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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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지역이 수록되어 있는 1872년에 제작된 지방지도. 『1872년 지방지도(1872年 地方地圖)』는 1871년(고종 8) ‘열읍지도 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에 따라 이듬해 전라도 해남현, 영암군 이진진, 영암군, 영암 어란진에서 발급한 현 해남군 일원의 지도이다. 『1872년 지방지도』는 필사 채색본 낱장으로 되어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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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년·1552년·1555년 세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달량진에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하였던 사건. 달량진은 현재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수군진이다.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古達島)라 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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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에서 일본 왜선을 크게 격파한 해전. 임진왜란 전쟁 중 일본은 1597년 정유년에 우리나라를 다시 침입한다. 이때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에 의해 조정에서 탄핵을 당하였다. 1597년 4월 이순신은 한 달 가까이 투옥된 상태에서 혹독한 문초를 받았고, 5월 16일에야 풀려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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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에서 일본 왜선을 크게 격파한 해전. 임진왜란 전쟁 중 일본은 1597년 정유년에 우리나라를 다시 침입한다. 이때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에 의해 조정에서 탄핵을 당하였다. 1597년 4월 이순신은 한 달 가까이 투옥된 상태에서 혹독한 문초를 받았고, 5월 16일에야 풀려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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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현감을 역임한 무신. 변협(邊協)[1528~1590]은 해남현감 재임 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군민들과 함께 해남읍성을 사수하였으며, 이후 전라우방어사(全羅右防禦使)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하였다. 변협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화중(和中), 호는 남호(南湖)이다. 아버지는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변계윤(邊季胤)이며, 어머니는 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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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관방 시설인 성터 유적. 성곽은 행정 시설물이면서 관방 시설물이다. 방어나 주둔이 목적인 성도 있겠지만 주둔하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 행정성이 되기도 한다. 해남 지역의 성은 우선 읍성이나 치소성 등 행정 기능이 주가 되는 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영진보(營鎭堡) 등 군사 목적의 성도 있다. 산성의 경우는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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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인근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병선이나 수군이 머무르던 진지. 조선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건국 초기부터 어란과 달량 그리고 주량에 병선이 배치되었다. 1440년(세종 22)에는 전라수영이 목포의 당포에서 해남우수영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해남은 전라도 바다를 관장하는 수군진(水軍鎭)의 본영이 되었다. 1479(성종 10)년에는 전라좌수영이 여수로 분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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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어란리(於蘭里)는 지형이 바다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것이 마치 난(蘭)처럼 생겼다 하여 어란(於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있어 어란진이라고도 부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장리, 동현리, 내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로 개설되었다. 1921년 완도군 군외면의 어불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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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란만호 김성익, 최성륜, 김종희, 김종석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5기의 비. 어란포진(於蘭浦鎭)은 조선시대 수군을 지휘하던 만호가 머물던 곳이며, 조선시대 전라도 지역에 출몰하던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으로 세워졌다. 어란포진의 위치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어란진항 일대이다. 송지면은 한반도 최남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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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 소속 어촌계. 어란어촌계는 「수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 조직으로,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다. 어란어촌계는 마을 어장을 생활 근거지로 삼아 마을 공동 어장의 이용과 개발을 통하여 개별 어가와 어촌 마을 주민의 소득 증대에 이바지하고 하며 수산업협동조합의 일부 기능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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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어란진(於蘭鎭)은 조선 건국 초기에 해남반도 해진군의 방어를 위하여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병선을 배치한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삼촌포의 어란 병선은 남쪽 바다의 섬으로 이동하였다가 지금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진성을 쌓고 수군진으로 정착하였다. 왜구의 침탈을 벗어나기 위한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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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었던 포구. 어란(於蘭) 지명은 2차례 이동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어란이 있었으며, 어란에 배치된 병선이 어란도 섬을 거쳐 지금의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만호진이 정착하면서 어란 지명도 현재로 고정되었다. 조선 전기 어란은 병선이 배치된 수군진이면서 제주를 오가는 입출항지이기도 하였다. 이에 제주도 관승의 자제를 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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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과 관련된 역사. 해남군의 역사는 구석기로 올라간다. 고대에는 고대 연안 해로와 관련하여 신미제국의 중심인 침미다례(忱彌多禮), 지미(止迷), 침명현(浸溟縣)으로 이어진다. 고려에 들어와 해남현(海南縣)이 등장하고 지금의 산이면 진산리 청자 가마터[사적 제310호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海南珍山里靑磁窯址)]와 화원면 신덕리 청자 가마터[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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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배를 타고 내리는 포구였다. 전라우수영에 속한 수군진으로 달량진왜변 직후에 종9품 권관진이었다가 1627년(인조 5)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머문 곳으로 동학농민전쟁 이후 1895년에 폐진되었다. 이진리는 지형이 배 모양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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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석축성. 해남 북평 달량진성(海南北平達梁鎭城)은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성종 대 왜구의 해안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 만호가 배치되었던 우수영 관할의 진성이다. 해남군 북평면은 제주도로 향하는 해상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해남 북평 달량진성과 관련하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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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해남군 관할 치안 행정 기관. 해남경찰서는 해남군 지역을 중심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치안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1월 목포경찰서 해남분주소가 설치되었고, 1909년 1월 해남경찰서로 승격되었다. 1946년 1월 16일 미 군정청이 전라도 경찰청 산하에 해남경찰서를 설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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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해남군 관할 치안 행정 기관. 해남경찰서는 해남군 지역을 중심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치안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1월 목포경찰서 해남분주소가 설치되었고, 1909년 1월 해남경찰서로 승격되었다. 1946년 1월 16일 미 군정청이 전라도 경찰청 산하에 해남경찰서를 설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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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해원리(海元里)라고 하였다. 해원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영암군 송지종면의 개현(介峴)으로 나와 있는데, 갯골 또는 가연이라 불렀다. 개현이 어떤 연유로 해원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암군 송지시면과 송지종면의 개현(介峴), 삼마동(三馬洞)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