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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89
한자 海南大興寺靈山會掛佛幀
영어공식명칭 Haenam Daeheungsa Youngsanhoe Hanging Painting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호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64년 -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3월 12일연표보기 -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제155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장처 대흥사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지도보기
성격 불교 회화
작가 색민(色旻), 금어(金魚) 등 26명
서체/기법 비단에 채색
소유자 대흥사
관리자 대흥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개설]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海南大興寺靈山會掛佛幀)」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대웅보전에 있다. 1764년 색민(色旻)을 비롯한 금어(金魚) 등 26명이 공동 제작하였다.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55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의 크기는 세로 960㎝, 가로 754㎝로, 비단 바탕에 채색[絹本彩色]하였다. 바탕천은 여러 폭의 비단을 하나로 연결하였고, 괘불탱 위아래 끝에는 둥그렇고 길쭉한 축(軸)[두루마리의 끝에 붙인 굴대]으로 감아 마구리하였다. 괘불축과 괘불궤는 모두 소나무이다. 승려 색민(色旻)이 으뜸 화원을 맡아 조성한 괘불이다.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여의를 든 문수보살을 두고, 오른쪽에는 연꽃을 든 보현보살을 화면 가득히 채웠다. 석가모니불의 두광 좌우로 다보여래와 관음보살을 작게 배치하였다. 석가여래는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면서 꺾은 채로 엄지와 중지를 서로 맞댔으며 가슴 중앙에는 卍자를 뒤집히게 그려 넣었다. 둥그런 원만상에 이목구비는 오밀조밀하며 나발의 머리에는 중간 계주와 보주형의 정상 계주를 표현하였다. 법의는 양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식이며 법의 끝단과 중간에 등장한 연화당초문과 구름 문양은 섬세하다. 좌우에 협시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여의와 연꽃을 든 체 화려한 보관을 쓰고 영락으로 장식된 천의를 걸쳤다. 상단 좌우에는 중앙 본존불을 향해 합장하는 다보여래와 검은색 정병을 든 관음보살의 상반신만 그려져 있다.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의 구도는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1700]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통영 안정사 영산회 괘불도[1702], 청곡사영산회괘불탱[1722], 운흥사괘불탱[1730], 다보사 괘불탱[1745] 등 18세기 호남 지역에서 성행한 의식집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근거한 도상을 간략화한 것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사이에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가 그려진 괘불도 형식은 천신(天信)이 그린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을 시작으로 광흠(廣欽)이 그린 안정사 영산회 괘불도로 이어졌으며 의겸(義謙)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작되었다.

색민은 의겸의 불화를 계승한 화승으로 1741년 전라남도 곡성 도림사 불화부터 1775년 장성 백양사 불화까지 34년 동안 21점의 불화를 전라도의 사찰에서 그렸다. 전라도에서 의겸 화맥(畵脈)을 이으며 1749년 구례 천은사 칠성도에서는 의겸 다음으로 화기에 이름이 올라 있다. 1764년 대흥사 불화부터는 수화승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 지역의 불화까지 두루 제작하였다. 색민은 턱, 눈썹, 어깨가 둥글어 스승인 의겸보다 상호가 부드럽고 본존불이 그림 상단에 앉아 성중들이 좌우와 아래에 자리 잡게 하거나 일부 성중들을 생략하여 간결한 구도를 보인다. 다홍색과 연녹색을 적절하게 사용한 정교한 색 배합을 통해 의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불화를 완성하였다. 연담유일(蓮潭有一)이 지은 「점안소(點眼疏)」에서 1764년에 영산탱일축, 삼존장육괘불일축, 아미타괘불일탱, 삼십삼조사탱각축, 법천제석대탱 각일축, 천룡탱기축(幾軸), 시왕탱각첩(各帖)을 점안하였다고 한다. 괘불궤의 묵서에는 영산탱, 무량수탱, 삼장탱, 좌우제석, 십왕각첩(十王各帖)을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색민이 수화승으로 참여한 1764년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의 화기에는 석가모니불도, 아미타불도, 삼장보살도를 괘불과 함께 그렸다는 내용이 있다. 화기는 괘불 전면 하단과 뒷면에 묵서되었고, 하단에는 세 구획으로 나누어 기록되었다. 앞면 화기는 제작 연대[건륭 이십구년 갑신(乾隆二十九年甲申)]와 괘불 종류[영산 괘불탱(靈山掛佛幀)], 조성 및 봉안 장소[해남현 대둔사(海南縣大芚寺)]를 밝히고 있다.

괘불 뒷면 묵서는 한지 11장을 가로로 이어 붙여 3열로 기록하였다. 대흥사 각 전각과 산내 암자에 주석하였던 모든 승려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대흥사의 사세와 승려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乾隆二十九年甲申三月日海南縣大芚寺靈山掛佛幀敬成奉安于本寺/緣化秩 …[중략]… 金魚 色旻 再日 道善 德行 華演 典宇 好英 就機 佑訔 來淑 允璣 祉恂 有心 最涉 戒眼 錦云 法演 妙彦 守平 釋閑 典日 佑心 奉日 樞峯 性平 守玉]. 괘불궤는 대웅보전 후불벽 뒤 공간에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 오른쪽 측면에는 괘불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이 마련되었다. 대웅보전 석축 아래 어칸 기둥과 일직선상에 좌우 각각 2점 1조씩 총 4점의 괘불지주가 세워져 있다. 괘불탱은 대흥사 중심 불전인 대웅보전 후불벽 뒤편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다.

[특징]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은 안정적인 구도 속에서 둥그런 원만상의 인물 표현이나 다양한 문양의 화려함 등에서 의겸 화풍의 영향이 잘 드러난다. 또한 전체적인 도상의 배치나 문양 표현에 있어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1749]을 기본으로 하였다.

[현황]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대흥사 대웅보전 건물 내부의 괘불궤에 담겨 보관되고 있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돕고 감시 장치[CCTV]를 대웅보전 내외부에 설치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관리 주체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이다.

[의의와 평가]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은 색민이 수화승으로 활약한 첫 번째 불화로 스승인 의겸의 화풍이 잘 드러난다. 보존 상태도 뛰어나고, 뒷면 화기에는 대흥사 각 전각과 산내 암자에 주석하였던 모든 승려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대흥사의 사세와 승려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매우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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