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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69
한자 白虎里
영어공식명칭 Baekh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 개설
백호리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861㎢
가구수 171가구
인구[남/여] 299명[남자 144명|여자 155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백호(白虎)라는 이름은, 마을이 풍수상으로 원경산[뽀쭉산]의 오른쪽[백호]에 자리잡고 있기에 붙여졌다고 한다. 본래 망골, 양지물동, 새터를 합하여 백호동, 백오동이라 칭했는데, 망골은 백호의 큰마을로 고려시대에는 옥산현과 이웃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옥천면소재지였다.

[형성 및 변천]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성리, 용흥리, 청룡리, 남촌리, 화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백호마을, 청룡마을, 백운마을, 용심마을, 가성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백호마을의 입향조는 1470년쯤에 이주한 평산신씨라고 전한다. 이후 해남윤씨가 이주하면서, 평산신씨는 새터를, 해남윤씨는 양지동을 터전으로 삼았다 한다. 평산신씨는 원마을인 망골에서 옮겨 새로 터를 잡았으므로 새터라 불렀고, 해남윤씨는 마을 서쪽 양지바른 곳에 잡았기에 양지동이라 불렀다. 청룡마을은 하동정씨 정재은이 대산리에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향조를 여씨로 보기도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백운마을 입향조는 1546년 을사사화 때 파평윤씨가 서울에서 남으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용심마을에는 1860년 전주이씨가 입향한 후, 통천최씨, 김해김씨 순으로 입주하여 성씨 별로 분산, 정착하였다. 전주이씨가 사는 곳은 강정, 김해김씨가 사는 곳은 금동, 통천최씨가 사는 곳은 옥동이라 불렀다 한다. 가성마을에는 1480년경 제주양씨가 입향하였다고 하는데 그 내역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자연환경]

백호마을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집들이 밀집하여 있다. 청룡마을은 원경산[앵갱산] 자락에 형성된 집성촌이다. 백운마을은 평야에 있는 집성촌이다. 용심마을은 뽀쪽산 밑에 옥동, 용심, 숫골, 강정이라 불리는 동네가 모여 형성하고 있다. 가성마을은 가매박골 산 밑에 들어서 있다. 농업용수로는 백호제, 청룡제 물을 이용하고 있다.

[현황]

백호리(白虎里)는 북쪽으로 송산리, 동쪽으로 대산리, 남쪽으로 용동리, 서쪽으로 삼산면 상가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말 현재 면적은 5.861㎢이며, 백호리, 청룡리, 백운리, 용심리, 가성리의 5개 행정리에 171가구, 299명[남자 144명, 여자 155명]이 살고 있다. 주 소득원은 쌀이며, 마늘과 콩 등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특작물로는 단호박, 감, 양파, 버섯, 더덕 등이 있다. 규모가 큰 축산 농가도 있다. 비옥한 토질과 깨끗한 농업용수, 그리고 맛있는 미질을 상표화하여 ‘한눈에 반한 쌀’로 판매하고 있다.

2008년 3월 20일 가성마을의 수령 약 300년의 해송[지정 번호: 15-14-8-7], 백운마을의 수령 약 150년의 해송[지정 번호: 15-14-8-8], 수령 약 150년의 멀구슬나무[15-14-8-8], 수령 약 200년의 버드나무[15-14-8-8]가 해남군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정월대보름에는 백호마을과 화촌마을이 불싸움과 물싸움을 하였다. 물싸움은 상대 마을의 샘물을 떠서 자기 마을의 샘에 부으면 그해 물맛이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에 자기 마을의 샘물을 지키면서 상대 샘물을 퍼오는 싸움이다. 백호마을 고인돌떼를 상여바위라 부른다. 또 백호마을에는 400년 정도 되는 소나무 일곱 그루가 있다. 청룡제에는 8월이면 순백의 연꽃이 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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