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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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忠臣 觀瀾元先生 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372-23[무릉리 60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용건 |
건립 시기/일시 | 1979년 - 조선충신 관란원선생 신도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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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조선충신 관란원선생 신도비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372-23[무릉리 605-1]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원호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40㎝[높이]|45㎝[너비]|17㎝[두께] |
[정의]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있는 생육신 원호의 충절을 기리는 비.
[개설]
원호(元昊)는 원주 출신으로 자는 자허(子虛), 호는 관란(觀瀾)·무항(霧巷)이고 아버지는 별장 원헌(元憲)이다. 1423년(세종 5)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향리인 원주로 낙향하였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서강 서쪽인 송학면 장곡리에 집을 지어 이름을 관란정(觀瀾亭)이라 하였다. 강가에 나가서 시가를 읊기도 하고 혹은 집에서 글을 짓기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영월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단종이 변을 당하자 무릉리 토실에서 삼년상을 마친 뒤 고향인 원주에 돌아와 문밖을 나가지 않았다. 앉을 때 반드시 동쪽을 향하여 앉고 누울 때는 동쪽으로 머리를 두었는데, 단종의 장릉이 집의 동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원호는 평생 단종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1699년(숙종 25) 판부사 최석정의 건의로 고향에 정려가 세워지고, 1782년(정조 6) 김시습, 남효은, 성담수와 함께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건립 경위]
1979년 관란원호추모위원회에서 무릉도원면 무릉리 토실에 있는 모현사에 조선충신 관란원선생 신도비(朝鮮忠臣觀瀾元先生神道碑)를 세웠다.
[위치]
조선충신 관란원선생 신도비는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 605-1번지 모현사에 있다. 모현사는 원호를 추모하는 사당이다.
[형태]
조선충신 관란원선생 신도비는 높이 140㎝, 너비 45㎝, 두께 17㎝이다.
[금석문]
조선충신 관란원선생 신도비 앞면에는 ‘조선충신관란원선생신도비(朝鮮忠臣觀瀾元先生神道碑)’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원호의 생애와 충절을 추모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