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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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領議政 趙公寅永 萬世不忘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산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용건 |
건립 시기/일시 | 1843년 - 영의정 조공인영 만세불망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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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782년 - 조인영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850년 - 조인영 사망 |
현 소재지 | 영의정 조공인영 만세불망비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산11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조인영 |
재질 | 화강암|청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90㎝[높이]|47㎝[너비]|19㎝[두께]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의정 조인영의 공덕을 기리는 비.
[개설]
조인영(趙寅永)[1782~1850]은 자가 희경, 호는 운석, 본관은 풍양이다. 할아버지는 조엄,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진관, 형은 조만영이다. 조인영은 풍양조씨 세도가의 중심인물로 1819년(순조 19)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응교에 임명되었다. 1822년 함경도 암행어사 복명 후 대사헌에 특진되었다. 1826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뒤 이조참의, 대사성, 세손좌유선, 제학, 예조참판 등 요직을 거쳤다. 1834년 세손이 헌종으로 즉위하자 이조판서, 대제학, 호조판서,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훈련대장 등 군사권을 장악한 조만영과 함께 풍양조씨 세도의 기반을 구축한 인물이다. 1839년 기해박해를 주도하였으며 우의정에 올랐다. 1841년(헌종 7) 영의정이 되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억눌렀다. 1849년 철종 즉위 후 민심 수습의 일환으로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금석학에 관심이 있어 김정희와 함께 북한산순수비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위치]
영의정 조공인영 만세불망비는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산11번지에 있다.
[형태]
영의정 조공인영 만세불망비의 비신은 청석이고 비개와 비좌는 화강암이다. 높이 190㎝, 너비 47㎝, 두께 19㎝이다.
[금석문]
영의정 조공인영 만세불망비에는 ‘영의정조공인영만세불망비(領議政趙公寅永萬世不忘碑) 계묘십월일립(癸卯十月日 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영의정 조공인영 만세불망비는 풍양조씨 집안의 강원도관찰사 조병헌의 불망비와 건립 연대가 같은 것으로 보아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세도정치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