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177 |
---|---|
한자 | 度支大臣 沈公相薰 淸德善政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영흥리 78]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용건 |
건립 시기/일시 | 1897년 - 탁지대신 심공상훈 청덕선정비 건립 |
---|---|
현 소재지 | 탁지대신 심공상훈 청덕선정비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영흥리 78]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심상훈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13㎝[높이]|46.5㎝[너비]|15㎝[두께]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개항기 탁지부대신 심상훈을 기리는 선정비.
[개설]
심상훈(沈相薰)[1854~?]은 1874년(고종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판서, 선혜청 당상 등을 역임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장호원에 피신하여 있던 명성황후에게 왕궁의 근황과 청나라와 일본의 출병 사실 등을 전달하여 신임을 얻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경기도관찰사로 경우궁에 들어와 왕에게 정변의 기밀과 개화당의 진상 등을 알렸다. 사대당 인물들과 모의하여 청나라의 위안스카이 등을 움직여 독립당의 혁신 정권을 무너뜨렸다. 또한 충청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동학교도의 탄압에 앞장섰다. 1895년 삼국간섭 이후 친러적 경향을 띠던 수구당 내에서 궁내부특진관의 직책을 맡았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탁지부대신으로 재직하였으나 악화(惡貨)인 백동화를 주조하여 유통 질서를 망가뜨려 1898년 체직 처분을 받았다. 1906년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어 4개월간 재임하였다.
[건립 경위]
탁지대신 심공상훈 청덕선정비(度支大臣沈公相薰淸德善政碑)는 1897년(광무 1) 심상훈이 탁지부대신으로 있을 때 영월 지역에 세워졌다.
[위치]
탁지대신 심공상훈 청덕선정비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78번지[금강공원길 136] 금강공원 내에 있다.
[형태]
탁지대신 심공상훈 청덕선정비는 높이 113㎝, 너비 46.5㎝, 두께 15㎝이다. 비문은 해서체이며 비개는 없고 비신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석문]
탁지대신 심공상훈 청덕선정비에는 ‘탁지대신심공상훈청덕선정비(度支大臣沈公相薰淸德善政碑) 정사십월 일립(丁四十月 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