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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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聖化 |
영어공식명칭 | Kim Sunghw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김성화(金聖化)[1847~?]는 1847년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정미의병은 전기 의병인 을미의병과는 달리 해산 군인과 유생들을 비롯하여 평민들과 천민들도 의병에 참여하였고, 여성들도 의병 대열에 동참하였다.
당시 강원도 영춘군[현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출신인 원건상(元建常)도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합류하였다. 이때 김성화는 원건상 의진에 가담하여 십장(十長)에 임명되었고, 충청북도·경상북도·강원도의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의병 부대를 이끌고 유격전을 벌이며 항전하였다. 김성화는 1907년 9월 7일 영춘군 동면[현 단양군 영춘면] 동대리 일대에서 의병 30여 명과 함께 일제 헌병대와 교전하던 중 체포되었고, 1910년 5월 11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성화의 공적을 기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