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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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亨雨 |
영어공식명칭 | Lee Hyungwoo |
이칭/별칭 | 이춘우(李春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일제강점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형우(李亨雨)[1890~1958]는 1890년 2월 16일 영월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춘우(李春雨)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형우는 1919년 전성륜(全聖倫)의 권유로 김성극(金星極)과 전성륜이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한 광복단에 가입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의사원(議事員)으로 활동하였다. 광복단은 이범윤(李範允)을 단장으로, 중국 왕청현(汪淸縣) 춘명향(春明鄕)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10월 22일에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 산하 부대로 편성되어 청산리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형우는 1920년 3월경 광복단 중대장 조동식(趙東植)과 함께 약 100여 명의 단원을 인솔하여 러시아 니콜리스크에 가서 총 100자루, 권총 약 30자루 및 탄환 등을 구입하여 광복단원을 무장시켰다. 9월경에는 간도 화룡현(和龍縣) 일대에서 단원을 모집하고 군자금 3,000원을 모금하였다.
이형우는 활동을 이어 가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2년 2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출소한 뒤에도 최정국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1927년 9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형우는 1958년 7월 2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형우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