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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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在善 |
영어공식명칭 | Lee Jaes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이재선(李在善)[1875~?]은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구래리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이 시기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였던 변학기(邊鶴基) 또한 해산 군인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 영남창의대장이 되었다. 변학기는 부장 홍병팔(洪秉八)·박원도(朴元道) 등과 함께 의병 400여 명을 이끌고 이강년(李康秊) 의진과 합세하여 경상북도 봉화와 울진,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재선은 변학기 의진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는 동시에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4월 12일에는 변학기의 지시에 따라 김도여(金道汝)·김순여(金順汝) 등과 함께 각각 총기로 무장하고, 삼척군 상장면 장성동[현 태백시 장성동]에서 화승총 2정과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이재선은 이후 의병 항쟁을 이어 가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고, 1911년 2월 25일 함흥지방재판소 원산지부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재선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4월 14일 경성공소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재선의 공적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