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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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春日 |
영어공식명칭 | Um Chun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 - 엄춘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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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11월 - 엄춘일 단양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12월 - 엄춘일 영월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6월 10일 - 엄춘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10년형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2017년 - 엄춘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남면 - 강원도 영월군 남면 |
활동지 | 영월 - 강원도 영월군 |
활동지 | 단양 - 충청북도 단양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엄춘일(嚴春日)[1875~?]은 1875년 강원도 영월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이 시기 엄춘일도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엄춘일은 1908년 11월 동료 의병 3명과 함께 충청북도 영춘군 차의곡면[현 단양군 영춘면] 장발리 허장성의 집에서 군자금 5원과 군수품으로 마포 1필을 거두었다. 또한 사지원리에서는 안순서에게서 군자금 5원을 거두었다. 12월에는 영월군 남면 용주원리의 김사천에게서 군자금 10원을 거두는 등 항일투쟁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엄춘일은 의병 활동을 이어 가다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으며, 1910년 6월 10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엄춘일의 공적을 기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